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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 우리였던 기억으로 써 내려간 남겨진 사랑의 조각들
박형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이 책에는 모두 열다섯 편의 영화들이 등장합니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주인공들은 “우리 헤어지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다가 이별을 말하고 “감기 들겠다, 얼른 들어가.”라고 말하며 군더더기 없는 짧은 이별을 합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를 이야기하면서는 ‘네 이름이 내겐 노래였어’라는 제목으로 누군가를 내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얘기라고 말합니다. 즉 그 사람과 나 사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얘기고 그 사람과 나를 하나라고 여긴다는 얘기죠. 말하자면, ‘내가 너였고, 네가 나였던 날들.’입니다.
슬픔과 이별은 아무 예고도 없이 ‘따끔’거리면서 다가온다고 하죠. 지은이의 그리움 역시 준비하지 못했던 ‘우리’였던 날의 상실에서 시작됩니다. 끝난 사랑보다 더욱 아린 건 끝나가는 사랑을 지켜보는 일. 그럼에도 사랑이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에서처럼 이전처럼 타오르기를 바란다면 소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쓰라림은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차라리 이별을 결심하면, 그래서 이 사랑의 마지막을 각오한다면 사랑의 냉각을 비교적 더 작은 파동으로 겪을 수 있지 않을까 고뇌는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던 인생인데, 다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몰라 아주 오랜 시간 침잠하고 한참을 울며 이런 인사를 건네야 했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나오는 “잘 가요, 내 삶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당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처럼 문득 외로움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외로움은 어디서 왔는지, 왜 생긴 건지.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면서 지난 사랑이 가엽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다.’고 스스로 위로하게 되죠.
이 책은 200여 페이지의 얇고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책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영화와 풍부한 감성이 담긴 담담하면서 화려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1994년 생으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젊은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두 권의 책을 냈을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면서 영화 속 인물에 투영한 자신의 이야기를 이 책에 펼쳐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