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세계문학의 숲 20
알베르 카뮈 지음, 최수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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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전철, 일, 전철 그리고 취침. 매일 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그러다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왜?,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 더 나아가서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진리와 맞대면 그리고 두려움. 나를 포함한 누군들 이런 생각 한 번 안해봤을까? ‘시지프 신화‘에 이어서 ‘이방인‘에서 다시 한 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대학 때 두어 번, 몇년 전 서너 번, 그리고 영문으로도 두어 번. 읽어도 깊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글이 결국 세월의 힘 덕분에 친숙하게 느껴지게 된다. 심지어는 이른 아침부터 카페에 앉아 궁상맞게 훌쩍이기도 했으니. 최근 어떤이는 이방인이 어려운 것은 한 저명한 번역가(김화영 교수)의 오역 탓이라 주장하던데, 그런 그분이 정작 이방인을 쉽게 이해했다면, 짐작컨데, 아니 확신컨데 덜 읽었고 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책의 역자인 최수철씨도 수려한 번역과 달리 해설은 얼토당토하지 않지 않은 점에 미루어 봤을 때 말이다.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실존 그 자체의 고통과 행복을 받아들이며 우주의 진실에 다가설 때, 우주는 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온다(190쪽)˝라니. 부조리에 대한 개념적 정리도 되지 않고도 - 103쪽 주석: 카뮈는 자신의 적품 세계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며 그 첫째로 부정을 들고- 이 정도의 번역이 가능한 점에서 원작의 훌륭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카뮈는 사람을 옥죄는 조건, 이를테면 제도, 습관 및 관념 등등,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숙명을 마주할 때 진정 성실한 인간(부조리의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그 조건과 태도의 전형을 뫼르소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사실 ‘시지프 신화‘에서 시종일관 언급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리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 그렇다, 출구는 어디에도 없고, 감옥 안에서의 저녁나절이 어떠한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105쪽)

˝지금 내 관심사는 나를 옥죄고 있는 이 기계장치에서 벗어나는 것,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탈출구가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다˝ (137쪽)

부조리한 조건과 마주칠 때 인간은 맞서거나 회피하게 될터인데 그중 회피(물리적 또는 정신적 자살, 위락)하는 인간이란 부조리가 존재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만으로 자위하는 꼴을 보이게 된다. 실상 그러한 조건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반면 성실한 인간은 그 부조리를 부둥켜잡고 끝까지 드잡이를 하는 존재이다.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오히려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고 끝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소진해나가는 정열. 요컨대 경멸로써 숙명을 극복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부조리한 조건들을 끝까지 직시하는 것이며 절대 타협(부정을 포함해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점이 역자가 이해 못하는 결정적 부분이다)

˝지금까지 내내 이 부조리한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어두컴컴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아직 오지도 않은 세월을 가로질러 내게로 불어오고 있었고, 그 바람이 내가 살아온 더 실감난다고 할 수 없는 그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지요˝ (153쪽)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얻었는지, 왜 새로이 시작하려고 마음을 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죽음에 임박하여 엄마는 해방감에 젖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게 분명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운명을 슬퍼할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154쪽)

˝모든 게 완성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덜 외롭다고 느끼기 위해 내게 남은 소원은 단 하나, 내가 처형당하는 날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받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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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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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번 번뇌에 휩싸인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극단에 이르렀다가 문득 몸서리치며 다시 물러서기를 여러번. 그토록 고상했던 자존감도 시간의 바람 속에 모래처럼 흩어지고, 그 빈터에는 추접한 자기연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책을 읽는 이유야 사람마다 제 각각이겠지만 나로 말하자면 살기 위한 방편이다. 책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고나 있을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딱 두권의 책만 가질 수 있다는 선택에 직면한다면 그중 한 권은 이 책일 것이다. 삶의 의지가 최저수준까지 고갈되어 왔을 때면 이 책을 펼쳤었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주위에서 그어놓은 선은 이러저러한데, 나만 유독 비틀거리면서 엉뚱한 곳에 와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많이 늦은 것 같고 힘도 고갈되었다. 인생이란 원래가 이따위 밖에 안된다고도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그 판단 자체도 나의 약해진 정신의 투영(증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면서 더 쓰라릴 뿐이다.

˝삶에 대한 판단, 즉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것이 삶을 긍정하든 부정하는 것이든 궁극적으로 켤코 참일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증후로서만 가치를 지닐 뿐이며 증후로서만 고려될 수 있다.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서는 삶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논의의 당사자이자 심지어 논의의 대상이지 논의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또다른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하다˝(31쪽)

예전처럼 남을 탓할 수도 없다. 혹 잠시라면 모르겠으나 일관되게 이탈되어 왔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되었거나 다른 모두가 이상하거나일텐데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볼만한 일말의 논리도 궁색하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보듬어주었으면, 아니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과한 욕심인가?

˝개개인을 향해서 ‘그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할 경우에조차 그는 여전히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각 개인은 미래와 과거로부터의 운명이며, 다가올 것과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법칙, 하나의 필연성이다. 그러한 개인에게 ‘달라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해서, 심지어는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조차도 달라지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232쪽)

그래도 이 정도야 지나간 일이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요사이 정말로 두려운 것은 앞날에도 과연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두렵다. 이 정도도 버거워하는 나인데....

˝나는 내가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며, 나의 진정한 사명에 비추어볼 때 나의 삶 전체가 얼마나 보람이 없었는지를 갑자기, 무자비할 정도로 명료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정신적 양식이 중단되었던 내 인생의 10년을 뒤로하고 있다. 바로 이때, 아주 알맞은 때에, 아주 경탄할 만한 방식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결국 젊어서 죽게 되어 있는 체질인 불길한 유전이 나를 돕게 되었다. 병은 서서히 나를 주변 환경으로부터 끌어냈다. 그것은 나에게 모든 단절, 격렬하고 위험한 모든 행동을 면하게 해주었다. 병은 습관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내가 망각에 빠지도록 허용하고 명령했다. 그것은 나에게 누워있고,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내하라는 의무를 나에게 부과했던 것이다. (240쪽)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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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일부터 읽기 시작한다. 책이 들고 다니기엔 너무 무겁다는 점, 경제경영 서적은 그 학문이 그러하듯 과학의 탈을 뒤집어 쓴 허구에 불과하여 결국 위선이라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라는 점에서 과연 끝까지 읽을지, 그렇다면 언제쯤 다 읽을지 자신은 없다. 여하튼 시작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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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형 2024-04-2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학은 위선이다.. 통찰력있으시네요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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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 너무 좋았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그의 음악이 너무도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기대와 호기심, 책을 읽기에 이보다 좋은 동기는 없겠다 생각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반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책을 반드시 두 번 읽게 하는 데 천부적 소질이 있다. 짧은 분량만으로도 자신의 말에 깊이 귀 기울이게 하는 점, 탁월한 능력이라 생각된다. 다만 이번에는 내용 자체의 폭이 매우 좁았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침잠한 예술가들의 삶이 그리 폭넓었겠는가, 그리고 그 시대가 순정한 역사를 많이 남겼겠느냐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난해함과 모호함의 배경을 다소나마 이해하게되었고, 그런 점에서 내 귀만 막귀가 아니였다는 위안도 함께 받게 되었다. 가족 앞에서 비밀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매일 밤 두려움과 싸우며 승강기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작곡가, 더욱이 그 죄목이라는 것도 단순히 권력자가 자신의 음악을 ˝혼돈˝이라 느낀 느낀 것이였다는, 그런 부조리함에 직면해서 그가 반항할 수 있는 방식이란 ˝아이러니로 진실을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조지오웰의 ‘1984‘의 시대에서 영위되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듯 싶다. 시대는 예술인의 절망과 비극에 관한 감수성을 낙관으로 개조하길 원했고, 엄혹한 공포를 이겨낸 사람에게 종래에는 영혼까지 바치길 바랬으니.

한 인간의 정서와 생각을 제도의 틀로 얽어매는 사회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 그 정서와 생각이 옳은가 그른가는 결국 그 사람만의 양심과 그 양심에 진실히 따랐느냐라는 성실성 측면에서 판단되어 질 몫이다. 니체의 말마따나 그에 관한 책임은 그 자신이 짊어지는 것이다. 책의 종결부 문구가 가슴에 많이 와닿는다.

˝그가 바랐던 것은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 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음악은 결국 음악의 것이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말,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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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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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인지, 습해서인지 아침 잠이 줄었다. 이번주도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책 한권을 들고 카페로 갔다.

시지프 신화를 읽고, 여운이 많이 남아 역자인 김화영 교수의 번역서를 또 한 권 샀다. 제목이 맘에 들었고 표지 사진도 역시 좋은 이 책으로.

간결한 문장, 빠른 호흡, 짧은 분량.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후기로 볼 수 있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까지 단 번에 읽어 내려갔다. 후자는 보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여운을 크게 줄여버렸으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의 생각과 너무 닮아 있었기에. 지역명과 구체적 사건의 전개양상이 다를 뿐 내 삶과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아침나절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래는 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얼마 후 아버지의 생일인 어느 일요일, 아버지는 종부성사를 받겠다고 했다. 나는 복사 노릇을 하던 시절, 써늘한 신새벽에 교구장 신부를 따라 이미 사람이 죽어있는 농가로 하느님을 모셔다드리려고 궁벽한 길을 걸어가던 일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그게 우리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건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우겼다. 아버지가 신부를 만나서 영성체를 갖고 싶어 하는 것뿐 별게 아니라고 말이다.˝(88쪽)

˝여기 파리에서 나는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내 길에서 비켜나 엉뚱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너무나도 딴 세상이고 딴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브르타뉴로 돌아와 나무들, 그들의 말씨, 그들의 몸짓과 다시 만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내 삶은 파리에 있다. 삶의 소용돌이가. ˝ (137쪽)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모르탱의 집은 허물어졌다. 루 테이뢸의 집은 허물어졌다. 트랑의 집은 팔려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이가 죽었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하롭게 지내고 싶다˝(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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