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에도 수십번 번뇌에 휩싸인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극단에 이르렀다가 문득 몸서리치며 다시 물러서기를 여러번. 그토록 고상했던 자존감도 시간의 바람 속에 모래처럼 흩어지고, 그 빈터에는 추접한 자기연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책을 읽는 이유야 사람마다 제 각각이겠지만 나로 말하자면 살기 위한 방편이다. 책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고나 있을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딱 두권의 책만 가질 수 있다는 선택에 직면한다면 그중 한 권은 이 책일 것이다. 삶의 의지가 최저수준까지 고갈되어 왔을 때면 이 책을 펼쳤었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주위에서 그어놓은 선은 이러저러한데, 나만 유독 비틀거리면서 엉뚱한 곳에 와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많이 늦은 것 같고 힘도 고갈되었다. 인생이란 원래가 이따위 밖에 안된다고도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그 판단 자체도 나의 약해진 정신의 투영(증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면서 더 쓰라릴 뿐이다.

˝삶에 대한 판단, 즉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그것이 삶을 긍정하든 부정하는 것이든 궁극적으로 켤코 참일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증후로서만 가치를 지닐 뿐이며 증후로서만 고려될 수 있다.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서는 삶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논의의 당사자이자 심지어 논의의 대상이지 논의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또다른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하다˝(31쪽)

예전처럼 남을 탓할 수도 없다. 혹 잠시라면 모르겠으나 일관되게 이탈되어 왔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되었거나 다른 모두가 이상하거나일텐데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볼만한 일말의 논리도 궁색하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보듬어주었으면, 아니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과한 욕심인가?

˝개개인을 향해서 ‘그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말할 경우에조차 그는 여전히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각 개인은 미래와 과거로부터의 운명이며, 다가올 것과 존재할 모든 것에 대한 하나의 법칙, 하나의 필연성이다. 그러한 개인에게 ‘달라져라‘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해서, 심지어는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조차도 달라지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232쪽)

그래도 이 정도야 지나간 일이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요사이 정말로 두려운 것은 앞날에도 과연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두렵다. 이 정도도 버거워하는 나인데....

˝나는 내가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며, 나의 진정한 사명에 비추어볼 때 나의 삶 전체가 얼마나 보람이 없었는지를 갑자기, 무자비할 정도로 명료하게 알아차렸다. 나는 정신적 양식이 중단되었던 내 인생의 10년을 뒤로하고 있다. 바로 이때, 아주 알맞은 때에, 아주 경탄할 만한 방식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결국 젊어서 죽게 되어 있는 체질인 불길한 유전이 나를 돕게 되었다. 병은 서서히 나를 주변 환경으로부터 끌어냈다. 그것은 나에게 모든 단절, 격렬하고 위험한 모든 행동을 면하게 해주었다. 병은 습관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내가 망각에 빠지도록 허용하고 명령했다. 그것은 나에게 누워있고,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내하라는 의무를 나에게 부과했던 것이다. (240쪽)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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