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전작(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 너무 좋았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그의 음악이 너무도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기대와 호기심, 책을 읽기에 이보다 좋은 동기는 없겠다 생각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반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책을 반드시 두 번 읽게 하는 데 천부적 소질이 있다. 짧은 분량만으로도 자신의 말에 깊이 귀 기울이게 하는 점, 탁월한 능력이라 생각된다. 다만 이번에는 내용 자체의 폭이 매우 좁았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침잠한 예술가들의 삶이 그리 폭넓었겠는가, 그리고 그 시대가 순정한 역사를 많이 남겼겠느냐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쇼스타코비치 음악의 난해함과 모호함의 배경을 다소나마 이해하게되었고, 그런 점에서 내 귀만 막귀가 아니였다는 위안도 함께 받게 되었다. 가족 앞에서 비밀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매일 밤 두려움과 싸우며 승강기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작곡가, 더욱이 그 죄목이라는 것도 단순히 권력자가 자신의 음악을 ˝혼돈˝이라 느낀 느낀 것이였다는, 그런 부조리함에 직면해서 그가 반항할 수 있는 방식이란 ˝아이러니로 진실을 위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조지오웰의 ‘1984‘의 시대에서 영위되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듯 싶다. 시대는 예술인의 절망과 비극에 관한 감수성을 낙관으로 개조하길 원했고, 엄혹한 공포를 이겨낸 사람에게 종래에는 영혼까지 바치길 바랬으니.

한 인간의 정서와 생각을 제도의 틀로 얽어매는 사회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 그 정서와 생각이 옳은가 그른가는 결국 그 사람만의 양심과 그 양심에 진실히 따랐느냐라는 성실성 측면에서 판단되어 질 몫이다. 니체의 말마따나 그에 관한 책임은 그 자신이 짊어지는 것이다. 책의 종결부 문구가 가슴에 많이 와닿는다.

˝그가 바랐던 것은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 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음악은 결국 음악의 것이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 말,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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