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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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원래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책 내용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중, 그리고 주말에 걸쳐 2회독 했던 것은 이책을 추천해 준 사람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장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본인도 이 책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읽었고 슬럼프를 많이 극복했노라며 나에게 적극 추천을 했던 것이다. 정작 그렇게 추천했던 그 동기는 몇일전부터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고, 반대로 나는 의기소침 상태에서 점차 회복되었다. 그러니 이 책의 효과는 그리 크지 못한 셈이다.

몇달간 나는 무력감, 비애감, 우울증 등 온갖 좋지 못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비몽사몽 하루 하루 버텨야 했고, 나도 모르게 갑자기 세상, 주위 사람들에게 분노가 자주 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비록 나 스스로 그리 자존감이 높은 편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아무리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기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고, 완전한 회복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느끼고 있다. 이 책의 문구를 인용해 비유하자면 나는 건전한 나의 초자아를 언제나 믿고 있다.

˝우리 마음에 아름다움만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구나 내면에 문제가 있다. 남들이 알면 놀랄 욕망도 있고, 욕심도, 질투와 시기도 숨어 있다. 자신감이 결여돼 있기도 하고, 기대고 싶은 의존 욕구도 있다. 다만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이드(id)라 부른다. 모든 사람들에겐 자아가 있고, 그것을 통제하는 선량한 나 즉 초자아가 있다.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이 초자아라면, 그 반대편에는 이드가 숨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사랑받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드가 있다. 그러니 자기한테 이드가 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69~70쪽)

이처럼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두달여간 내가 썼던 글을 읽고 나서였다. 지난주 일요일 사무실에 출근해, 대기하고 있는 와중에 심심해서 끄적거렸던 글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 보았고 내가 어떤 점에서 힘들어하고 있는지, 나의 감정상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어느날 책꽃이에 놓인 책이 과연 읽었던 것인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쓰기 시작했던 것인데, 지금에와서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여하튼 내가 쓴 글들을 읽고나서 반성도 했고, 그리고 주위 환경과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읽어보면 뭔가 내용이 있는 것도 같고 그럴 듯도 하지만 실제 나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려고 하면 전혀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책의 성격이 그렇듯 감동적이지도 않아 나의 정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회사에서 나를 비난하는 상사에게 저자는 ˝죄송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제가 너무 시간을 지체해서 곤란해지셨지요.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262쪽)˝라는 고차원적(?) 스킬로 대하라고 충고한다. 개인적으로 참 웃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왠만해서는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만일 실제 비난했다면 그건 매우 중대한 실책인 것이다. 그런 모든 분위기를 아는 부하직원이 그렇게 고차원적인 스킬을 이용할 수 있겠는가. 죽을상을 하고 있어도 못마땅한데, 당돌하게 그렇게 말하라는 것은 그 사람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실상 모든 회사가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지는 않다.

사실 이보다 더 이 책에서 그럴듯 하다고 느꼈다가 한참 후에 참 불편한 감정이 솟구친 부분이 있다. 직장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저자는 ˝직장은 일을 끊임없이 시키고 그 대가를 쥐꼬리만큼 쥐여주고 생색이나 내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직장에서 자존감을 시험하지 말 일이다˝, ˝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직장과 직업, 꿈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으면 한다(89쪽).˝ 라고 충고하고 있다. 말 자체는 얼마나 옳은가.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매우 불쾌하다. 직장은 하루중 깨어 있는 시간기준으로, 출퇴근 시간까지 더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사랑하는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의 희로애락이 이곳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더 높은 곳이다. 뇌를 가지고 있고, 감정을 품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중요하고 긴 생활터전에서 얻은 결과에 초연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싶다는 소망, 따듯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 등등을 가지면 안되는 것인가. 만약 가져도 된다면 그런 소망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초연하게 머리를 비울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저자가 다녔던 회사 생활이나 내담자가 말했던 직장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회사가 자기의 경험과 상담했던 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직장을 떠나서 머리를 완전히 비울 수 있을만큼 내 능력이 그리 우수하지도, 마음이 그리 냉정하지도 못하다.

이런 불만이 있었음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2회독한 것은 책의 내용을 자세히 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여러번 읽은 내 사랑하는 동기의 마음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왜 그렇게 힘이 없어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책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 그 사람 생각에 가슴이 조금 아파왔다. 그런 사람에게 요즘에 내 고민을 많이 이야기 했으니 정말 미안할 뿐이다. 그러지 않을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의지하다보니 내 삶의 짐을 일부분 그 동기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나 걱정도 된다. 끝으로 그나마 이책이 그 동기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하니 후하게 별 세개는 주고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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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ain 2017-09-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의 심리학은 통속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자기가 현재 살아가는 구조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아니면 버티어낼 수 있도록, 그 틀에 끼워맞춰질 수 있도록 합리성을 가장한 협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사회에서 주는 당근 같기도 합니다. 밖에서 채찍질을 이만큼 맞았으니 이런 책을 읽고 내면을 평안히 한 뒤 좀 더 열심히 해보라고 하는. 근본적인 사태가 해결되지 못하니 잠시 나아졌다가 도로 이런 책을 찾게되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듯 보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17-09-23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선영 2021-07-0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건강한 리뷰 감사합니다
저는 비판없이 아 그렇구나 하고 읽고 흘려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자기생각이 있는 글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하게 되네요

서아름 2022-08-3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괜스레 눈물이 맺히는 리뷰였어요 감사합니다
 
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현문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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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가 반나절 먼저 시작된다. 일요일 오후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바람에 매주 휴일 아침 카페에서 맞이하던 평화에 균열이 생겼다. 다만 장소만 달라졌을 뿐 책과 함께 하는 하루는 여전히 유효한 점에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갈매기의 꿈은 예전에 원서로 대충 훑어 보았었다. 분량이 적어서 영어 공부할겸해서 책장을 뒤적거렸을 뿐 그 당시에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주 침대 옆 책꽃이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이 책을 다시 펼쳐보기 시작했고 오늘 재차 읽어본 것은 한 지인의 뜻이 고맙고 또 그립기 때문이었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올초 회사를 그만둔 팀장이 이별의 정으로 나에게 건내준, 말하자면 이별선물이었다. 점점 자신감도 희망도 없어지고 매일 매일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점에 속지 첫장에 손수 쓰신,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자 했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과장님, 책의 주인공 조나단 처럼 꿈을 찾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행복한 회사 생활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분의 눈에는 내가 꿈을 잃고 방황하던 영혼으로 비춰졌던 것일까? 아니면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마지 못해 살아가는 빈궁한 처지로 보였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세번째 생각이 가장 나를 잘 표현하는 것이리라. 정말이지 꿈도 바래다 못해 잃어버렸고,삶 자체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한 마디로 무기력. 계속 무기력만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삶에 매우 긴 시간, 즐거움과 고뇌의 적지 않은 원천인 이 회사생활에서 어느 사이 돈벌레로 화(化)해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삶은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는 것이지. 다만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36쪽)

그러면서도 나라는 사람은 남들만큼의 평범함에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다시금 좌절을 반복한다. 남들은 같은 일이라도 몹시 수월하게 해내며, 비슷한 어려움이라도 잘 버텨내는 것 같은데, 왜 유독 나만 전전긍긍하며 의기저상해있는 것인가.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직시한다면 세상사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힘들고, 자신만의 삶의 무게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나의 삶의 무게는 유독 무거운 것 같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다.

˝왜 그러니 존. 왜 그래. 여느 새들처럼 사는 게 왜 그리 어려운 게냐.˝ (15쪽)
˝실패의 무게가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 무게가 몸을 바다 밑바닥으로 끌어 내릴 만큼 무거워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 나는 한계를 많이 가지고 태어났어. (...) 이대로 만족하면서 살아야 해˝ (17, 22쪽)

최근 에리히 프롬의 책(나는 왜 무기력을 반복하는가)을 읽고 나서부터 정말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기 시작했다. 그 답을 찾기만 한다면 열과 성을 다 할 수 있을 듯도 싶은데, 조나단처럼 그것에 전력하고 완벽을 추구해볼 수도 있을 성 싶은데, 문제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대상이 팀장이 남겼던 말처럼 회사에서 찾아질 수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그 말씀의 따듯함과 그 답을 얻었을 때 취해야 하는 방향과 방식만을 이 책에서 취하기로 한다.

˝각자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노력해서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55쪽)

˝천국은 장소가 아니고, 시간도 아니라네. 완벽한 것이 곧 천국이지˝ (...) 장소와 시간은 너무도 무의미하기 때문이야.˝(58, 70쪽)

˝그의 진정한 본성은 기록하지 않은 숫자처럼 완벽하게, 시공을 초월해 어디에서나 살고 있음을 아는 게 비법이었다.˝ (71쪽)

˝갈매기가 비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 자유가 존재의 본성이라는 것. 그 자유를 막아서는 것은 무엇이든 무시해야 한다는 것. 그게 의식이든 미신이든 어떤 행태의 제약이든.˝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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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0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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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의 쌀쌀하고 까칠해진 대기, 높고 푸른 하늘.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여름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새로운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봄에 작은 터에 뿌리고 심었던 몇가지 작물들을 거두면서 오늘 나도 나의 가을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내 가슴속에 무성히 자라난 분노와 욕구와 후회도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독일인의 사랑˝은 순전히 번역가만 보고 선택한 책이었다. 안톤 슈낙의 번역글을 보고 감명 받은 바 많았기에 이 책을 포함해 두권을 구매했던 것이다. 사실 이번주 정말로 수면이 부족했고 일이 많았으며 분노도 많이 일었기에 주중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일독을 하면서도 책 내용 자체에 큰 느낌이 없었다. 다만 목요일경 책 말미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고나서 내가 잘못 읽었던 것은 아닌지 어렴풋이 생각을 했었고, 주말 아침 상쾌한 정신으로 재독하면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역자의 해설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뻔한 19세기 감성적 연애소설 정도로 치부하고 책장에 던져놓았을 뻔 했다.

작은 시골에서 19년을 살다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이해와 적응이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서울 사람들의 남을 대하는 태도였던 것 같다. 파전 하나 생겨도 이웃과 나눠먹던 그런 삶을 살다가 이해타산적인 관계 방식을 접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시 생활 2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나를 되돌아보면 나 역시 이제는 그런 관계 형성에 너무 익숙해져있었던 것 같다. 다른 어떤 사람도 나 때문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되고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마 저자인 막스 뮐러도 산업화, 도시화, 개인주의화를 향해 치닫는 시대에서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향수가 더 커졌고, 그래서 이 책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책을 덮고 온 종일 좀 많이 반성했다. 내가 그간 정말 많이 타락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망상을 하고 지냈단 말인가. 많이 부끄러웠고 숨고 싶었다. 정말이지 사람되기 쉽지 않다.

˝낯선 타인의 존재를 배우면서부터 어린이는 이미 어린이임과 고별한다. (...) 사랑의 샘에는 단지 몇 방울 물밖에 남아 있지 않다. (...) 하지만 그것은 이미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에 충만한 어린이의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궁핍이 섞인 사랑 - 작열하는 불꽃이요, 타오르는 정열일 뿐이다. 달아오른 모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스스로를 소모하는 사랑 - 갈망하는 사랑이지 헌신하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지 너의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본위의, 의혹이 뒤섞은 사랑이다! (...) 우리는 이렇게 모두 한때는 이 같은 불꽃놀이를 영원한 사랑의 햇빛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불꽃이 환하면 환할수록 뒤따르는 어둠의 농도는 더욱 짙은 법이다.˝ (26~27쪽)

˝천사의 품에 포근히 안겨 있어도 좋을 그녀가 왜 굳이 이 세상에 보내졌을까, 수많은 성화들에 그려져 있듯이 천사의 부드러운 날개에 실려 공중을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면 나는 그녀의 고통 일부를 떼어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홀로 고통을 겪지 않고, 우리 모두가 그녀와 고통을 나누기 위하여.˝ (37~38쪽)

˝<언제고 내가 너희를 떠나더라도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 그래서 너희들 모두에게 반지를 하나씩 가져왔어.> (...) 그러면서 그녀는 남동생에게처럼 내게 키스를 하고 반지를 주었다. (...) 온갖 쓰라린 고통이 내 가슴으로부터 씻은 듯 사라졌다. 이미 나는 혼자가 아니며, 타인이나 제외된 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 곁에, 그녀와 더불어, 그녀의 마음속에 있음을 느꼈다. (...) <이 반지를 내게 선사하고 싶으면 그냥 네가 갖고 있어. 너의 것은 곧 내것이니까>˝ (38~41쪽)

˝그녀가 켜는 감정의 현치고 이미 나의 영혼 속에서 울리지 않은 음이 없었고, 내가 입 밖에 낸 생각치고 그녀가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응해오지 않은 생각은 없었다. (...) 흔히 5월에는 이제 곧 장미가 시들 거란 생각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그 계절에는 매일 저녁 꽃잎이 하나씩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의 소리가 들려왔다˝ (62~63쪽)

˝<그렇지만 저 소란스런 바깥세상에는 괘념하지 말고, 두 마음이 순수한 마음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우리만의 성전을 지킵시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마리아,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최선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기울고,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겁니다. 당신 안에 살아 있는 말을 그대로 하십시오. 당신은 나의 것이라고. 당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신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주셨지만 그 고통을 당신과 나누도록 나를 당신에게 보내신 겁니다.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150~153쪽)

˝그녀에 대한 사랑은 이제 살아 있는 인류의 대양 속에 합류하며, 몇백만 - 어린 시절부터 내가 사랑했던 몇백만 ‘타인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을 포옹하고 있다. 다만 오늘처럼 고요한 여름날, 홀로 푸른 숲 속에서 자연의 품에 안겨 저 바깥에 인간들이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외톨이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기억의 묘지에서는 소생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죽어버린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엄청난 사랑의 힘이 마음속으로 되돌아와, 지금까지도 그윽하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저 아름다운 존재를 향해 흘러간다. 그러면 몇백만을 향한 사랑이 이 사랑 안으로 - 나의 수호천사를 향한 이 사랑 안으로 수렴되는 것만 같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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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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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내렸다. 간밤에는 꿈자리가 좋지 못해서 잠에서 깨어 시계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새벽 두시. 아무리 휴일이라지만, 딱히 해야 될 일도 없었지만 내 처지가 너무 서글펐다. 아니라 다를까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는 그간 계속 염두에 두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뭐 맘 같으면 한 한달 정도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서 아무말 없이 독서와 산책을 하면서, 배고프면 먹고, 잠오면 자는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자신 매인 처지가 있는 만큼 3일 정도 만이라고 그렇게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곳이 어디에 있는지가 먼저 막막해졌다. 그래 휴대폰 검색창에 ˝인적 드문˝이라는 키워드를 써넣다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미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인적드문 장소가 정말 그런 곳 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소로우 처럼 내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떼어내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싶었는데, 나라는 사람은 막상 생각은 있어도 그 구체적 방법에서 막막해하는 그런 형편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사려 깊게 살고,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만을 직면해보고, 인생의 가르침을 내가 터득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으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산 게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피하다면 모를까 나는 체념을 실천하고 싶지도 않았다.˝ (118-119쪽)

매일 매일이 잡념이 떠오르고 물리치는 연속이다. 심지어 꿈속에서 까지 시달리다보니 수면부족으로 정신적 탈진 상태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중2병에 걸렸냐고 비웃던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 나이 또래가 겪는 비슷한 조건과 상황에 내가 처해있는 것이다. 다만 사춘기는 성적 충동과 사회제도간의 갈등이라면, 내가 겪고 있는 사십기는 내가 바라는 삶과 처해있는 현실간의 충돌과 괴리에서 비롯된다는 차이만 있는 것이다. 공자는 ‘마흔 살에는 (여러 가지 지식을 익혀서) 미혹되지 않았다(四十而不惑)‘ 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떤 지식을 익혀야 미혹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오늘 보니 소로우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도대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정신이 어떻게 신체의 모든 부분과 기능에 파고들며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시급하게 찾았던 것은 구체적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노력에서 지혜와 순수성이 온다. 나태에서는 무지와 관능적 욕망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적 욕망은 게으른 정신 습관이다.˝ (295쪽)

˝정욕을 억제하고 육신의 외부적 감각을 억제하는 통제력과 선행은 인간의 마음이 신에게 접근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건이다. 정신은 당분간이나마 신체의 모든 부분과 기능에 파고들어 지배함으로써 겉보기에 천박하기 그지 없는 육체적 욕망을 순결과 헌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294쪽)

그래 나도 그럴 수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훌훌털어버리고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안빈낙도하며 살고 싶다. 소로우가 2년 2개월 2일동안 살아왔던 방식은 시골 태생인 나에게 그리 낯설지 않으니.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혼자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니. 수타니파타에서 부처가 설파한 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것도 이제까지 내가 진정 원해 왔던 삶의 방식이므로.

˝숲 속에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초원을 찾아 거닐 듯, 현명한 자라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 없이, 속임 없이, 갈망 없이, 위선 없이, 혼탁과 미혹을 태워버리고, 세상의 온갖 바램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타니파타, ‘무소의 뿔의 경‘ 중)

하지만, 이런 모든 것도 내 몸 하나일 때 가능한 것이다. 이제와서 내가 나 하나 편하자고 내 가족들을 모두 버려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혼자였던 소로우 자신도 그런 삶을 살다보니 외로움에 시달렸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애써 외면하려고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은 아니었는가.

˝목장에 핀 우단현삼,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밀브룩 강이나 지붕 위의 풍향계, 북극성, 남풍, 4월의 봄비, 정월의 해동, 그리고 새로 지은 집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미... 이런 모든 것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181쪽)

이러한 모든 말들이 사실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은 재력과 사회적 지위 등등의 절대적 또는 시점간 수준의 변화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즉 횡단면적으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더 크게 힘들어 하는 법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홀로 훌훌털어버리고 산속에 숨으면 상당부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숨는 것을 용감하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용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군들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살고 싶지 않겠는가.

60년이나 된 사과나무 식탁에서 어느 날 알이 부화되어 벌레가 나왔다는 마지막 일화에서는 한편으로는 ‘조르바‘를 읽었을 때와 같은 두근거림이 잠시 일어나기도 했지만, 내 현실을 되돌아보고 나선 씁쓸함만 더 커졌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부화하여 나갈 때 나의 가족은 어둠의 껍질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할 신세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의 눈에 그런 나는 카프카의 ˝변신˝에서와 같이 정말 ‘벌레‘로 느껴질테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푸른 생나무의 백목질 속에 알로 태어났지만 그 나무가 차츰 잘 마른 관처럼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죽은 듯 메마른 사회생활 속에서 목질의 동심원을 이루는 나이테 속에 묻혀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가족이 즐겁게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밖으로 나오려고 이놈의 벌레가 갉는 소리를 냈으니 모두는 여러 번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벌레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값싸고 흔한 가구 속에서 튀어나오 마침내 찬란한 여름 생활을 즐기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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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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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내리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한 이백여미터 되는 거리지만 이 빗속을 뚫고 집까지 갈 일이 아득하다. 그래도 날씨와 다르게 매우 오랜만에 느껴보는 쨍한 정신에 무척 기쁘고 행복하다. 비록 약의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간만에 숙면을 취하고 나니 이리 좋을 수 없다. 비몽사몽 한 달 이상을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몸도 견뎌내기 버거워하는 것 같았다. 특히 어제는 회사에서 커서만 바라보고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쥐어짜려 했을 때는 내 자신 너무 민망했었다. 오늘 눈을 떴을 때 5시가 넘어있다는 사실, 잠을 더 자고 싶은 느낌도 남았다는 점, 이처럼 작은 사실과 느낌에 사람의 기분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의 의미를 새삼 다시 깨닫는다.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 ...... /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201쪽,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 재인용)

잠을 제대로 못자는 날이 여러날 이어지다보니, 곰곰히 그 원인에 대해, 나의 심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이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가 일정 부분 기여했을 성 싶기도 하고, 내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애감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십사년 가까이 그럴듯한 회사를 다녔으나 남는 것이란 나라는 존재는 결국 하나의 부속품, 그것도 대체가 매우 용이한 부품이었다는 느낌뿐이었다. 자아실현은 물론이고, 인정받고 싶다는 의욕은 커녕, 매일매일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사는 피동적인 존재. 다정다감한 성격도 아니어서 가정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그닥 필요치 않아 보인다는 느낌. 이제보니 마치 장영희 교수가 카프카의 ˝변신˝을 평한 그런 상황에 내가 놓여있지 않나 싶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에는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간은 물론, 하물며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6쪽)

내가 품고 있는 한가지 지론은 모든 이는 자기만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 눈에 보이는 신체적 결핍 뿐만이 아니다. 되돌아보기 싫은 과거, 마음의 상처, 자신만이 느끼는 약점 등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을 위장하려고 노력하며,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왜곡이 발생하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때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꼭꼭 숨기려하다보니 그것이 이제와서는 다소 비사교적인 행동이며 얼굴의 그늘로 드리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최근 부쩍 강해진 여러 번뇌들도 그로부터 연유하리라 싶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제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 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아무리 권력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8쪽)

어제 오늘 고 장영희 교수의 글을 통해 다시 나를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한편 진솔한 말과 글의 힘을 다시 실감한다. 장교수님의 글은 여러 책을 통해 읽었지만 매번 울컥하고 찡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 후 툭 던져내는 솔직한 말들. 몇해전 장시간의 수술을 마친 어머니 병상 옆에서 <내 생에 단 한 번>을 읽다가 한참 눈물을 쏟았는데, 오늘 아침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견 불행해 보인 모든 조건에서도 항상 삶, 사랑, 희망, 배려를 노래하기에 그 어떤 사람이 하는 말보다 힘이 서려있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히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316쪽)

˝하느님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올해는 저보다 조금 더 낮고,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과 그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망을 먼저 들어 주소서.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면, 누구나의 마음속에 별처럼 총총 새겨진 이 모든 소망들에 가까워지게 하소서˝ (314쪽)

책을 읽다보니 내가 많이 부끄러워진다.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서 어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내가 권태를 느끼는 이 생활이 다른 사람에게는 여러해 소망해 왔던 꿈일 수 있지 않겠나.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267쪽)

책을 덮으며 장교수님이 말한 내 삶의 축복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장교수님이 천국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길 기원해 보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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