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간간히 내리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한 이백여미터 되는 거리지만 이 빗속을 뚫고 집까지 갈 일이 아득하다. 그래도 날씨와 다르게 매우 오랜만에 느껴보는 쨍한 정신에 무척 기쁘고 행복하다. 비록 약의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간만에 숙면을 취하고 나니 이리 좋을 수 없다. 비몽사몽 한 달 이상을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몸도 견뎌내기 버거워하는 것 같았다. 특히 어제는 회사에서 커서만 바라보고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쥐어짜려 했을 때는 내 자신 너무 민망했었다. 오늘 눈을 떴을 때 5시가 넘어있다는 사실, 잠을 더 자고 싶은 느낌도 남았다는 점, 이처럼 작은 사실과 느낌에 사람의 기분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의 의미를 새삼 다시 깨닫는다.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 ...... /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201쪽,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 재인용)

잠을 제대로 못자는 날이 여러날 이어지다보니, 곰곰히 그 원인에 대해, 나의 심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이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가 일정 부분 기여했을 성 싶기도 하고, 내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애감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십사년 가까이 그럴듯한 회사를 다녔으나 남는 것이란 나라는 존재는 결국 하나의 부속품, 그것도 대체가 매우 용이한 부품이었다는 느낌뿐이었다. 자아실현은 물론이고, 인정받고 싶다는 의욕은 커녕, 매일매일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사는 피동적인 존재. 다정다감한 성격도 아니어서 가정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그닥 필요치 않아 보인다는 느낌. 이제보니 마치 장영희 교수가 카프카의 ˝변신˝을 평한 그런 상황에 내가 놓여있지 않나 싶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에는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간은 물론, 하물며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6쪽)

내가 품고 있는 한가지 지론은 모든 이는 자기만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 눈에 보이는 신체적 결핍 뿐만이 아니다. 되돌아보기 싫은 과거, 마음의 상처, 자신만이 느끼는 약점 등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을 위장하려고 노력하며,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왜곡이 발생하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때 불우했던 가정환경을 꼭꼭 숨기려하다보니 그것이 이제와서는 다소 비사교적인 행동이며 얼굴의 그늘로 드리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최근 부쩍 강해진 여러 번뇌들도 그로부터 연유하리라 싶다.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제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 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아무리 권력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8쪽)

어제 오늘 고 장영희 교수의 글을 통해 다시 나를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한편 진솔한 말과 글의 힘을 다시 실감한다. 장교수님의 글은 여러 책을 통해 읽었지만 매번 울컥하고 찡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 후 툭 던져내는 솔직한 말들. 몇해전 장시간의 수술을 마친 어머니 병상 옆에서 <내 생에 단 한 번>을 읽다가 한참 눈물을 쏟았는데, 오늘 아침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견 불행해 보인 모든 조건에서도 항상 삶, 사랑, 희망, 배려를 노래하기에 그 어떤 사람이 하는 말보다 힘이 서려있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히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난 확신한다˝ (316쪽)

˝하느님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올해는 저보다 조금 더 낮고,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과 그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망을 먼저 들어 주소서.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면, 누구나의 마음속에 별처럼 총총 새겨진 이 모든 소망들에 가까워지게 하소서˝ (314쪽)

책을 읽다보니 내가 많이 부끄러워진다.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서 어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내가 권태를 느끼는 이 생활이 다른 사람에게는 여러해 소망해 왔던 꿈일 수 있지 않겠나.

˝모든 삶의 과정은 영원하지 않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고통, 기쁨,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회생하는 봄에 새삼 생명을 생각해 본다. 생명이 있는 한, 이 고달픈 질곡의 삶 속에도 희망은 있다.˝ (267쪽)

책을 덮으며 장교수님이 말한 내 삶의 축복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장교수님이 천국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길 기원해 보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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