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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구조인류학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8
에드먼드 리치 지음 / 한길사 / 1996년 1월
평점 :
퀴즈를 하나 풀어 보자.
Q) <성서>는 역사일까 신화일까?
A) 정답은......
맞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정답이다.
우리의 마음은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고, 어지간한 말빨로는 그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리숙하지 않은 당신은 이미 이 문제는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성서>가 종교 경전이라는데 있다. 이 논의는 층위가 서로 다른 곳에서 그 전제를 깔고 논리를 펼쳐가기 때문에 적절한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자료와 증거들을 가져오더라도, 역사라고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역사라는 증거들로만 보일 것이고 신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는 모든 것이 신화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철로처럼 영원히 서로가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에 어중간한 타협 따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서>는 읽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역사, 신화, 문학, 문화 인류학(고고학)적 방법 등 여러 각도로 접근 가능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성서>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는 종교의 경전으로서, 다음으로는 신화로서 이해하는 태도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에드먼드 리치는 성서를 역사로서가 아니라 신화로서 취급하고 있다.
저자는 성서의 이야기들이 역사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 인정하면 성서의 이야기들이 종교적 의미를 나타내기 시작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성서에 쓰여 있는 이야기들을 역사라는 틀에 짜 맞추는 작업만 하지 않는다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성서의 이야기들도 종교적 의미를 나타내 보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세의 기독교는 성서를 이해함에 있어서 성서의 한 이야기를 성서의 다른 이야기와 연관 지어 이해했을 뿐, 성서의 연대기적 의문이나 사실주의적 기술과 관련지어 이해하고자 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이렇게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6개의 논문을 모아 편집한 저작이다. 표지에는 표기가 안 되어있는데, 사실 이 책은 엘런 에이콕과의 공저이다. 에이콕은 이 책에 두 개의 논문을 수록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모세에게 왜 누이가 있었는가>, <멜기세덱과 황제>, <롯의 아내의 운명>, <카인의 징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롯의 아내의 운명>과 <카인의 징표> 가 에이콕의 논문이다. 6개의 논문 중 <카인의 징표>가 그나마 가장 흥미로웠는데 주된 내용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구조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이콕은 예수와 카인이 서로 정확한 구조적 변형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주인공들로 밝혀진다고 주장한다. 변형의 관계라는 것은 예수와 카인이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카인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사는 도시를 건설한다. 반면 예수는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교회의 기반을 구축한다. 죄 많은 카인은 아벨이라는 제물을 통해 하나님과 맺어진다. 반면 예수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맺어져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유형화해서 보면 예수는 아벨의 등가물이 된다.
이처럼 신화적으로 해석되는 내용이 새롭거나 흥미로운 부분들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초판 번역된 지 20여 년이 넘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이 책을 10여 년 만에 다시 읽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에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별 감흥이 없어서 뭐가 달라진 것인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책은 신학적 방식이 아닌 신화적 방식으로 <성서>를 해석하고자 할 때 한 번쯤은 참고할 만한 저서이다. 이 구절을 이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으로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의 주된 해석이라는 것들이 결국 현재의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를 재창출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기에 전체적으로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가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의 기원과 질서를 설명하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성서>는 이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현상에 대해 답해 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성서>는 방대한 내용에 걸맞게 다양한 저자와 여러 겹으로 덧대어온 시간, 오랜 기간의 필사와 번역의 과정을 겪어왔다. 2500여 년의 역사를 관통해 온 인류의 유산이 21세기에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놀라운 책이다.
2500년 전의 지식과 문화와 멘탈리티로 기록된 지침서를 현대에 적용하고자 하면 반드시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마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오설, 문자 주의, 세대주의 등 텍스트 신봉자들이 정말 많이 득세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종교든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자들이 존재하기에 그렇게 놀란 척할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새 술(현시대)을 헌 가죽 부대(전통교리)에 욱여넣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러한 의문들이 별 의미는 없겠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특정 종교의 교리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모쪼록 반지성적이고 극단적인 세력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자정(自淨)효과가 압도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