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뢰겔 ㅣ 재원 아트북 5
박서보 지음 / 재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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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6세기는 뒤를 이어 프랑스와 영국이 발호하기전 네덜란드의 황금기였다. 동방무역을 독점하여 국력이 쎄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세워진 나라다. 이 시기에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피테르 브뢰겔은 농민화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초기작은 신화나 미신에서 모티브를 얻어 매우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남겼는데, 후에는 농민들을 주제로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나 당시의 하층계급인 농민들의 희로애락을 통해 매우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나 그는 화폭에 많은 사람을 담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각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기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만큼이나 큰 개구리가 등장하는데 배가 갈라져서 내장이 보인다거나, 중세갑옷을 입은 천사가 등장하여 그로테스크한 생물들을 처단하고 있거나, 게다리가 달린 물고기, 하반신이 없이 상반신만 남은 마녀같은 얼굴을 한 여성, 머리는 새인데 몸뚱이는 개구리 그리고 거기에 시꺼먼 날개가 달린 괴물등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그림이 하나의 작품인데, 바로 '타락 천사들의 멸망' 이다. ㅎㅎㅎ 그리고 상당히 재미난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 이라는 회화가 있다. 여섯명의 맹인이 나오는데 제일 먼저 앞서가던 사람이 땅바닥을 구르고 그 뒤의 맹인은 휘청거리면서 넘어질려고 하고, 세번째의 봉사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것 같고, 네번째는 하늘을 향해 의미없는 몸짓을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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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 & 컨스터블 ㅣ 재원 아트북 48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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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왕을 도와 중국의 고대 주나라를 세웠던 태공망 강자아는, 인생의 황혼기에 가서야 그의 뜻을 펼쳤다. 예술계에서도 이렇게 늦깍이로 명성을 얻은 화가가 있으니 바로 영국 태생의 존 컨스터블이다. 또한 그는 당시의 관념적이고 상상속의 풍경화법을 거부하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현실의 농촌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사조인 낭만주의에 --테오도르 제리코와 외젠 들라크루아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윌리엄 터너와 함께 그는 영국인의 예술성을 전 유럽에 보여주었다. 앗, 여기서 뭔가 데자뷰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진경산수화를 통해 예술사조의 흐름을 바꿔버린 겸재 정선 말이다. 그는 그때까지 중국을 사모하면서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산수화를 배격하고, 조선의 실제 산하를 화폭에 담았으니 이것이 곧 진경산수화다.


한편, 그의 스타일은 요즘의 사진관련 용어로 풀어보자면 광각렌즈를 사용하여 장대한 풍경을 담아내었다고 할 수 있다. 광대한 푸르른 하늘과 눈이 부시도록 하얀 구름, 그리고 아스라한 지평선위에서 시나브로 변하는 자연의 색상을 가감없이 그려내었다. 그리해서 그의 그림을 볼때마다 시원시원한 기분이 든다. 이런 풍경속으로 빠져들어가면 이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로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 특히나 작금의 퇴보하고 있는 한국사회로는 더더욱 회귀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향이 아니라 바로 영국에 존재하는 실제 풍경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있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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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마르셀 파케 지음, 김영선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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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라고 번역되는 쉬르레알리즘의 화가 중에서,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의 작품은 어떤 것이든지 한번 만 보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하여 현대의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며, 광고나 영화,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영향력이 드러난다. 가령 [천공의 성, 라퓨타]는, 마그리트의 명작 [피레네의 성]을 모티브로 한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사랑의 노래]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맑 인어부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하반신은 사람이고 상반신은 물고기로 되어 있는 인어다. ㅎㅎㅎ 이런 예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가령 새의 긴 부리를 기타같은 악기로 그려내었다든가, 백조의 수려한 목과 부리를 색소폰으로 표현했다든가, 검은색의 말이 힘차게 다리를 들어올리는데 하반신은 달팽이와 결합이 되었다든가, 발을 그렸는데, 발가락까지는 분명 사람인데 발등에서부터는 끈이 달린 신발로 모핑이 되었거나, 풍만한 여성의 반신이 마치 문신을 한 것처럼 나무물결모양으로 대치되었거나, 얼굴이 목에서 분리되어 따로 공중중 둥둥 떠있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기묘한 상상력과 보는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발함, 이질적인 요소들을 뒤섞어 놓았지만 전혀 이상하거나 혐오감은 들지 않는 스타일. 이러한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은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상상할 수 없는 지적, 시각적 충격을 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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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 ㅣ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28
최쌍중 지음 / 서문당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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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 또한 달리, 피카소, 미로등등의 예술가처럼 스페인 태생이다. 어렸을 적의 사고로 150cm가 조금 넘는 단신의 앙리 툴루즈 로트렉은, 어떠한 화파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을 사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후기 인상파로 분류한다. 이정도의 키면 난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아마도 그는 선천적인 유전질환을 앓지 않았나 하는 것이 최근의 평가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가 사촌지간이며 조모와 외조모가 자매지간 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체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물랭루즈를 주변으로 해서 수많은 여인들의 품에 묻혀 살았다고 한다.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으니, 이런 생활끝에 37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는 물랭루즈라는 유명한 캬바레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많은 유화작품을 남겼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서 그가 고흐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두 사람은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절친한 친구로 지냈으며 같이 2인전을 열기도 했었다. 그러나 로트렉의 주된 작업은 석판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물랭루즈의 광고전단지나 삽화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이 후대의 포스터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앤디 워홀의 작품도 상당부분 이에 기인한다. 한편, 로트렉은 물랭루즈의 댄서들을 포스터로 많이 남겼는데, 대부분이 검은색을 강조하여 표현했으며, 여기에 노란색과 빨간색을 가미하여 매우 간략하고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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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으로 쇠라읽기
윤정윤 지음 / 애플트리태일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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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의 날개 반쪽은 빨강색으로 칠하고 나머지 절반은 파랑색으로 칠해보자. 그리고 바람을 향해서 돌리면 보라색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과학적인 그림을 그린 이가 바로 조르주 쇠라이며, 우리에게는 점묘법으로 알려져있다. 말그대로 물감을 점처럼 수없이 많이 찍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까이서 보면 형체가 약간은 불분명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어떤 작품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아니 이것은?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적성검사를 하면서 색맹 테스트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ㅎㅎ 아뭏든 이러한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다.

필자는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때, 아니 왜? 여자들의 엉덩이가 저렇게 툭 튀어나왔을까? 속에다가 무슨 장식품 같은 것을 넣고 다니던 풍습이 있었나? 마치 일본의 기모노 뒤에 붙은 그 천조각과 비슷하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유럽인들의 둔부는 정말 그것과 똑같이 생겼음을 이제는 안다. 일종의 조금은 약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뭏든, 조르주 쇠라가 처음부터 점묘화를 그린것은 아니었다. 초기작은 인상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마네나 모네등의 작품과 스타일이 아주 유사하다. 그래서 후대의 평론가들은  쇠라를 점묘화를 탄생시킨 신인상파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의 문명을 관통하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즉 대상을 쪼개고 쪼개고 --분자수준을 넘어서 원자로 다시 쿼크 단위로-- 들어가서 나누고 해체하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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