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 재원 아트북 46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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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의 경우에 있어서 눈동자에 조금만 빛을 추가하는 캐츠 아이는, 그림에 있어서 화룡정점과 같다. 이 개츠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진다. 앵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고전주의를 대표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앵그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회화에 있어서 누구보다 더 선명한 캐츠아이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인물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더불이 이러한 기법은 그야말로 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라. 그리고 눈동자의 캐츠아이를 찾아보자. 한편, 그는 초상화 중에서도 귀부인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음모론에 항상 등장하는 '로스차일드가의 공작부인 베티Baroness Betty de Rothschild' 라는 여성도 그중 한명이다. 당시 귀족여인들의 풍만한 몸체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러자 정작 자신은 이런 초상화를 그려내는 것을 그리 탐탁치않게 여겼다고 한다. ㅎㅎ.


몇년전에 터키 정부에서 우리나라에 항의를 하여, 터키탕 이라는 간판을 전부 없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터키탕이라는 단어는 매춘과 연결된 곳이므로, 터어키 정부의 이런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와전된 것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터키(오스만 투르크 제국)가 크게 세력을 확장했던 당시에는, 여러 나라에서 잡혀온 여인들을 모아놓고 황제(술탄)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고 한다. 이런 장소를 할렘이라고 하였다. 말년에 이른 앵그르는 터키주재 영국대사의 부인이 남긴 '터키탕 견문기' 를 참고로해서 '터키 목욕탕(The Turkish Bath)' 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이런 유럽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팝그룹 런던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 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한때 라디오를 틀면 이 노래가 거의 매일 흘러나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할렘과 이 할렘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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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 창해ABC북 1
뱅상 포마레드 외 지음, 임호경 옮김 / 창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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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의 역사에 있어서 딮 퍼플과 레드 제플린은 영원한 라이벌이었다. 미술사에도 이와같이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들라크루아와 앵그르다. 전자가 낭만주의를 대표한다면 후자는 고전주의 화풍을 선택했다. 또한 들르크루아의 그림이 강렬한 색채가 주는 시각적인 쾌감을 추구했다면, 후자는 정밀한 표현에 치중을 했다. 그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면, 필자의 이러한 감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그림은 잔다르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이 그림은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때 프랑스와 영국은 원수 관계였다.  특히나 백년전쟁을 통한 양국간의 증오심과 적대감이 매우 컸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때 영국의 식민지배를 벗어던지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에게 프랑스인들은 호감을 갖게 되고 --여기에 프랑스의 대혁명이나 계몽사상등의 사조가 결합되어-- 미국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미국으로 보낸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뉴욕 여행을 가면 한번쯤을 들러는 곳이 되어버렸다. ㅎㅎㅎ

외젠 들라크루아는 성격이 다고 편협하고 괴퍅해서 대중과는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교류하던 인물이 소수였는데, 쇼팽도 그 중 한명이었다. 교유관계가 적으면 깊이 사귀게 되고, 반대로 넓으면 아무래도 분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쇼팽과 들라크루아가 그랬다.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서로를 인정해 주었던 진정한 친구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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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25
오광수 엮음 / 서문당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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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수화의 역사에 있어서 겸재 정선은, 그때까지 조선의 화풍을 지배하고 있었던 관념산수화를 배격하고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진경산수화를 개척하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구스타프 쿠르베도 그와 같은 인물인데, 당시에 프랑스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낭만주의 화파에 안녕을 고하고 리얼리즘이라는 새 미술사조를 열었다. 그러나 그의 초기작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자신 또한 그러한 작품들의 모방을 통해서 미술표현의 기교를 익혔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기반을 모조리 뒤엎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인구에 회자되는 그의 유명한 말이 있는데 바로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소. 왜냐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이다. 과연 사실주의를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 답다.


그의 사실주의가 어떠한지 잠깐 소개를 해보자.
'파도속의 여인(The Woman in the Waves)' 에서는 겨드랑이 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풍만한 여성이 물속에서 상반신들 드러내고 있다. 머리를 양손으로 틀어쥐어 올리고 있는데,  약간 붉은기가 도는 머리색깔에 맞춰서 갈색의 겨털이 자연스럽게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요즘의 현대여성들이 느끼는 어떤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필자가 남자라서 그럴까? 이 정도는 약과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세계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 이라는 작품을 살펴보기 바란다. 친구의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그린 것이라 하는데, 화폭 가득히 여성의 음모와 생식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그림이 1866에 그려진 것인데,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 볼때, 자신의 아내를 선뜻 모델로 등장시킨 친구도 그렇고, 거기에 동참한 여인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쿠르베 이전까지 이렇게 사실적으로 여성의 몸을 그려낸 작가는 없었다. 작금의 한국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털이면 걸리고 헤어면 심의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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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빛의 자코메티 (케이스 포함)
최종태 지음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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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애들 낙서인가?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 그린 것을 보게되면 대개는 얼굴은 동그랗고 눈코입이 있는데, 몸은 그냥 단순하게 직선으로 뽑아낸 것들이 많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의 그림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조각품을 남긴 사람이 바로 알레르토 자코메티다. 그런데 그는 두상마저도 있는듯 없는듯 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발은 무척이나 크게 만들어서 언밸런스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조각에서는 토르소적으로 빚어낸 것도 있다. 즉, 얼굴같지도 않은 둥그런 머리모양에 길쭉한 선만으로 몸을 빚어내고 팔은 없다. 그것도 외다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필자가 그의 조각에서 느끼는 감정은 쓸쓸함과 고독이다. 현대인이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외로움과 을씨년 스러움, 그것이 자코메티의 예술세계다.


앗, 을씨년 얘끼나 나와서 말인데, 원래 이 단어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다. 즉, 일본놈들이 우리를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게 만든 그 때처럼, 스산하고 싸늘하다는 뜻이다. 이말이 을싸년에서 을씨년으로 바뀐 것이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 이렇게 먹힌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부강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예술이란 의식주가 해결되고 나서야 찾게 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과거 대부분의 걸작들이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특히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본이 예술가를 만드는 경우가 유독 심한 것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예술 무전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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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모딜리아니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5
도리스 크리스토프 지음, 양영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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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또는 관표지교.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를 말할 때는 헌신적인 그의 아내 잔느 에뷔테른느와 재정적인 후원자인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전형적인 이태리 미남인 모딜리아니에게는 --당시로서는 불치병인 폐결핵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아마도 중성적인 매력이 있었나 보다. 고작 3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데, 이 두 인물의 도움으로 죽기전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걸작이 [검은 스카프를 한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딜리아니가 죽고 난 다음날, 그의 아내마저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만삭의 몸으로 말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개가 길다. 그리하여 뭔가 처연한 슬픔이 배어나온다. 또한 모델의 눈주위는 병자의 그것처럼 시푸르등등하게 다크서클이 표현이되어 있어서, 한눈에 봐도 환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고 퀭한 모습으로 그려놓고는 했다. 이런 스타일은 그의 조각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코도 길고 얼굴도 길고 목도 길다. 그리고 눈동자도 없이 눈두둥이처럼 만들어놨다. 이런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조각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서평을 작성할 것이니 이름만 알고 넘어가자. 아뭏든 그는 잔느와 만나 3년간에 걸쳐 수작들을 창조해 냈는데, 유일하게도 잔느의 초상화에서는 선명하게 검은색 눈동자르 그려넣었다. 그리하여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화룡정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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