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캐릭터 메이킹북 - 캐릭터 설정에서 일러스트까지
메멘치 지음, 김건용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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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네이버 책카페 #책책책책을읽읍시다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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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하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만화그리기도 깔짝거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캐릭터 일러스트를 보다보면 - 만화를 포함해서 - 분명히 잘 그린 것 같은데 그렇게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좀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뭔가가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만 하고 그랬는데, 이런 제목의 책을 찾았습니다.

생각으로만 했던 막연한 매력을 표정, 포즈, 의상, 색, 구도, 배경처럼 구체적인 그림의 요소로 나누어 설명하는 책입니다. 그냥 기법으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으로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더군요.


작가 이름은 메멘치... 아마 필명이겠죠 당연히?


책을 볼 때 즐거운 점은 이런 다양한 일러스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완성작들이 이렇게 많이 있어서 보는 즐거움을 준 다음에, 이런 그림들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방식을 차근차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물의 표정과 자세뿐 아니라 의상의 실루엣, 장식의 크기와 밀도, 화면 안의 여백까지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 다룹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왜 이 부분은 복잡하고, 저 부분은 비워 두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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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상 디자인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무늬와 장식이 많은 부분과 적은 부분, 큰 요소와 작은 요소를 대비시키면 강조하고 싶은 지점을 더 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장식을 많이 넣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어디에 시선을 모을지 결정하고 나머지 부분과 차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상이라도 패턴의 양과 여백의 비율에 따라 화려하거나 차분한 인상이 달라지는 예시를 보면서 캐릭터 디자인도 결국 선택과 균형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에 광내는(?) 이런 과정도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눈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눈머리와 눈꼬리의 명암, 눈썹 주변의 색 변화, 동공과 하이라이트까지 여러 단계로 나누어 보여 줍니다. 완성된 그림에서는 작은 부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얇은 색을 겹치고 밝기와 대비를 조정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이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캐릭터의 인상은 특별한 한 번의 터치보다 작은 조정들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 눈이나 피부를 채색할 때 결과가 밋밋하다고 느꼈다면 바로 적용해 볼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실제 작업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으로 바꾸어 준다는 점입니다. 포즈를 어떻게 정할지, 의상에서 어느 부분을 강조할지, 장식의 밀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얼굴의 작은 부분에 어떤 색을 더할지, 배경을 어느 정도까지 그릴지 하나씩 생각하게 합니다. 그림이 어딘가 어색하거나 부족해 보여도 막연히 감각 탓으로 돌리기보다 구체적으로 점검할 항목을 찾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젠 정확하게 어딜 지적할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되니까 조금 슬픈 감도 있긴 하네요.


캐릭터 뿐만이 아니라, 이런 구도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을 잡고 여러 보조선을 연결해 반사 위치를 계산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완성 그림만 보았을 때는 자연스럽게 지나쳤던 장면 뒤에 꽤 논리적인 설계가 있다는 점이 저같은 초보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이었습니다. 캐릭터 일러스트도 인물만 잘 그린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배경의 관계를 이해하고 시선이 움직일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건 전공 수업에서 배우는 걸까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완성작과 제작 과정이 함께 실려 있어 그대로 따라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원리를 사용하더라도 캐릭터의 분위기와 의상, 색, 배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 줍니다. 저자의 방식은 정답이라기보다 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고법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예시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어떤 원리를 가져올지 생각하며 읽는 편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뭔가 잘 짜여진 강의를 본 것 같았습니다.



책 이름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캐릭터 한 명을 예쁘게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예쁜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화를 알려주는 올인원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캐릭터는 자신이 있는데 전체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어렵다, 하고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책인 것 같고, 자신의 그림에 좀 더 분명한 개성과 시선을 끄는 포인트를 만들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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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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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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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는 나름 꾸준히(?)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눈으로 보거나, 듣거나 그런식입니다. 이렇게 정제된 문장을 쓰거나 하는 경우는 잘 없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먹는 것만큼 꾸준히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단어장을 펴면 외워야 할 것이 많아 보이고, 문법책을 펼치면 공부를 시작한 기분부터 납니다. 그런 거 솔직히 힘듭니다.. 일하고, 집에와서 또 공부하고...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것이 필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네카. 세네카는 네로의 스승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제의 스승이었던 만큼 문학자, 정치인으로서의 업적을 남기고, 이렇게 좋은 글들도 남겼습니다. 그런 세네카의 문장을 영어로 써 보는 것.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라고 하기엔 머리가 아프지 않고, 그냥 또 철학책이라서 머리가 아프기엔 부담이 덜합니다. 그저 쓰는 거니까요. 그래서 적당히 중간점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루 한 장, 100일의 필사 여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100일 꾸준히 하면 됩니다. 이런 100일이 물론 굉장히 힘들겠지요. 첫 삽을 뜨는 것이 제일 힘든데, 그래서 바로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원문 아래에는 우리말 해석이 있고,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핵심 단어와 표현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QR을 연결했더니 원어민의 영어 낭독이 있더군요. 그럼 무려 100개의 영어 낭독 파일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상당한 듣기 공부(공부 안한다고 했는데 공부하는군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책의 명언들은 후루룩 읽고 넘어가기 쉬운데, 옆에 필사를 하다보니 강제로 슬로우리딩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옆에 써보고, 저는 해석도 천천히 적어보았습니다. 악필인 점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분들은 예쁜 글씨로 잘 쓰실 것이라 믿습니다.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첫날 문장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분명히 알지 못하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열심히 갈수록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영어 문장 자체는 아주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접 적다 보니 ‘나는 뭘 향해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그냥 영어 문장을 베껴 쓰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 줄을 쓰고 뜻을 확인하고, 다시 다음 줄로 넘어가는 사이에 문장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습니다. 약간 현자의 시간 같은 느낌을 잠깐 가지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100일간 천천히 읽어보는 부분이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서 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좋은 사람은 운명에 끌려가기보다 스스로 따라가며 보조를 맞춘다는 내용입니다. 운명을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는 말보다 현실적으로 들렸습니다. 갑자기 안되면 되게하라, 하는 어떤 군대의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살다 보면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보다 바꿀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포기인지, 받아들임인지, 아니면 방향을 조금 수정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토아 철학이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요즘 생활과 꽤 잘 맞는 이유가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는 ‘마음을 위한 휴식’처럼 바로 이해되는 문장도 있습니다. 계속 긴장한 채 버티면 마음의 활력이 꺾이니 잠깐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로 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필사를 하다 보면 당연한 말을 굳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바쁜 날에는 열 문장을 읽는 것보다 이런 문장 하나를 천천히 쓰는 편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간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요.


마지막까지 가니 이렇게 명문들을 필기체로 연습해보는 공간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필기체는 있어보이는데 있어보이게 쓰는 게 참 어렵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정해진 글씨로 천천히 따라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쓰는 것보다 일정한 속도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예쁜 노트를 만들겠다는 부담을 갖기보다, 하루 한 장을 채우는 쪽이 이 책에는 더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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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문장은 행복, 운명, 판단, 휴식, 불안처럼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문제를 다룹니다. 그 오래전에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책의 장점으로는 거창한 철학 공부를 시작할 필요도 없고, 영어를 완벽하게 해석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필사가 목적이니만큼 그냥 읽고, 뜻을 확인하고, 손으로 적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면 100일을 채우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 과연 저는 100일을 채울 것인가? 하면서 오기도 생기네요.

저는 이 책의 장점이 ‘공부한다’는 기분을 조금 덜어준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영어 한 문장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세네카의 말을 한 번 생각해보고, 그날의 내 상태도 잠깐 돌아보게 됩니다. 첫날 문장이 바로 그런 걸 느꼈습니다. (필사는 첫날만 하긴 했네요) 거기에다 하루 10분 정도라면 큰 부담도 없습니다. 100일 뒤 영어가 얼마나 늘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100개의 문장을 손으로 직접 써본 시간만큼은 분명히 남겠지요. 영어도 다시 가까이하고 싶고, 하루에 잠깐이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분이라면 꾸준히 펼쳐볼 만한 필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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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역사 - 중동의 3천년 역사를 이해한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토미 유조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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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중동, 요즘 매우 핫합니다. 3월부터 시작된 이슈가 끝이 나질 않고 있지요. 어떻게 되려는지 궁금합니다. 직접적인 생활에도 타격이 크니까요. 그렇게 다들 관심을 갖고 있는 중동에 대해서, 정작 역사는 그다지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중동에 이란, 사우디라아비아, 이라크가 있다, 정도??를 알고 있는게 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번에 아라비아 역사, 총 3천 년에 걸친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 있다고 하여, 냉큼 서평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생각보다 어렵다’였습니다. 이름도 낯설고 왕조와 부족이 계속 바뀝니다. 중동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었던가? 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3천 년이면 사실 굉장히 긴 편이긴 합니다. 한 국가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방식보다는 오아시스 도시와 교역로를 중심으로 여러 세력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연표와 지도를 자꾸 확인하게 됩니다.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 틀을 잘 알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너무 단순하게 알고 있었던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생각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는 무함마드나 이슬람 제국 정도로 얕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사바 왕국부터 남아라비아의 여러 왕국, 그리고 그런 왕국들의 무역(주로 낙타 교역이네요)이나 로마와 페르시아의 세력 다툼까지 언급합니다. 시바 여왕의 이야기로 정말 얕게 알고 있던 사바 왕국이 남아라비아의 중요한 왕국이었다, 는 것도 하나의 지식으로 잘 얻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허구에 가까운 전승과, 사실의 역사 기록이 어디어디가 실제로 겹치는지 구분해주는 설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역사가 꽤 복잡한 이유는 이 지도만 봐도 느낌이 좀 옵니다. 물론 넓은 땅덩어리긴 하지만 많은 민족들과 나라가 존재합니다. 북쪽에는 비잔틴, 사산조 페르시아, 서쪽에서는 홍해에 이르고 남쪽에는 인도양, 동쪽은 페르시아만까지 넓게 퍼져 있는 것이 중동입니다. 사막이라고 하면 언뜻 고립되고 황폐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는 어떻게 보면 여러 문명이 만나는 길목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향신료와 유향이 오가고, 많은 교역이 일어났던 곳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3세기의 남아라비아 기록에서는 후대의 문헌과 당시 비문 기록이 다르게 전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또 흥미롭습니다. 투바 왕조처럼 후대 전승에서는 크게 보이는 존재가 실제 사료를 놓고 보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대목입니다. 역사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이야기를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남은 기록이 적을수록 연구자들이 비문과 여러 전승을 맞춰가며 복원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수천 년 전 일을 안다는 것이 결국 기록을 읽고 서로 비교하는 작업이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래서 역사가 재밌는 겁니다. 역사학자들은 머리가 깨지겠지만요.


이슬람이 등장하고 이후로는 좀 더 친숙한(?)이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뒤에는 정통 칼리파가 성립이 되었고, 이후로는 우마이야조와 압바스조로 연결이 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면서도 이 책은 그냥 이슬람 제국만의 역사에 대해서만 언급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입지와 파워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 재미있게 서술합니다. 정치의 중심이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옮겨가면서 아라비아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시기도 있고, 향신료무역이 흥함과 동시에 성지순례의 붐으로 다시 중요한 곳으로 발전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아랍'이라는 말의 어원도 재미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시리아 사막의 낙타 유목민을 가리키는 말로 등장하고 나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냥 아랍, 아라비아, 중동을 비슷한 말로 뭉뚱그려서 섞어 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름 하나에도 시대에 따라 다른 뜻이 들어갈텐데, 이런 표현들도 제대로 구분해서 써야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근세에 관련된 아라비아 역사는 더 흥미롭습니다. 포르투갈과 오스만 제국, 영국의 아라비아 진출, 사우드 왕조의 성장 등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석유의 역할과 현대 국가의 형성까지도 역사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확실히 석유 이전의 아라비아가 더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원체 부유한 산유국이 그득한 곳이었다보니, 그 전의 역사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냥 훌훌 재미로만 보기에는 상당히 학술적인 내용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왕국과 많은 부족들이 등장하고, 시대도 무척이나 길어서 읽다가 까먹고 읽다가 까먹고 그랬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렇게 읽어봤더니 지금의 중동이 좀 다르게 보이는 거 같습니다. 이슬람만 생각나던 중동이 이렇게 다양하고도 복잡한 역사가 있었다니,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게 사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전쟁이나 석유, 종교 갈등으로만 보이던 '사막' 지역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이미지가 되네요. 수많은 왕국과 부족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교역로를 따라 다른 문명과 연결되면서 지금의 중동이 된 것입니다. 현재의 중동을 이해하려면 그보다 훨씬 오래된 아라비아부터 봐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그런 해답을 제시한 역사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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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트로닉스 응용편 - 반도체를 넘어, 전자의 스핀으로 여는 차세대 정보기술
스즈키 요시시게 외 지음, 일본자기학회 엮음, 원운재 외 옮김 / 광문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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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반도체를 넘어... 라는 문구에 너무 혹해버렸습니다. 반도체도 잘 모르면서 벌써 그 너머를 궁금해하다니, 조금 앞서갔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문과인 저는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말에는 익숙해도 작동 원리를 설명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낯선 분야라고 계속 넘겨두기보다는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공부해서 알아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반도체가 무척이나 핫하지요. AI 구성에 없어서는 안되는 메모리들, 그것들을 구성하는 반도체말입니다. 그 다음 시대를 노리고 있는 스핀트로닉스라니, 궁금하지 않습니까?


전자의 스핀으로 정보 저장과 연산에 활용하는 것, 스핀, 스핀, 스핀트로닉스. 회전의 방식을 활용한다는 말인데, 어떤 방식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과연 제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내용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원자의 크기와 오비탈을 설명하는 대목을 지나면 스핀의 표현과 연산자가 나옵니다. 그림을 보며 따라가다가도 수식에서는 막혔습니다. 기초 개념부터 다룬다고 해서 배경지식 없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수식을 따라 풀기보다, 반복해서 나오는 용어부터 익히기로 했습니다. 삼각함수는 알겠는데 벡터나 이런 것은 좀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림이 나오니 도식적인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전자를 활용하는 방식부터 새롭게 알았습니다. 스핀트로닉스는 전자의 전하뿐 아니라 자기적 성질과 연결되는 스핀도 이용합니다. 특히 자기 메모리인 MRAM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자성층의 자화 방향이 같거나 반대일 때 저항이 달라지고, 그 차이로 0과 1을 읽어냅니다. 010101 이렇게 기계어, 8비트, 뭐 그런 것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세세한 지식도 알게 되니 나름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실험 기술을 다룬 장에서는 자기장 제어 장치와 증폭기, 컴퓨터를 연결한 측정 회로를 한참 봤습니다. 이론 속 성질을 실제로 확인할 때 어떤 장비와 방법을 쓰는지 궁금했습니다. 개념 설명뿐 아니라 실험과 소자까지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응용편’이라는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응용편인가 하니...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네요.... 얇은 막을 만들고 미세하게 가공한 뒤 특성을 측정하는 과정도 흥미로우면서도 신선하고도... 어렵습니다. 측정 회로의 자기장 제어 장치와 증폭기를 살펴보니, 스핀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를 실제 소자로 구현하려면 재료와 측정 기술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괜히 이런 것을 전공으로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그림들이 들어가니 이해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네요,


온도와 자벽의 이동 속도를 나타낸 그래프도 같은 관점에서 봤습니다. 특정 온도 구간에서 속도가 크게 높아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재료를 쓰느냐만큼 어떤 조건에서 작동시키느냐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과적 관점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설명들이 친절하게 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또한 연습문제에서는 이런 성질과 활용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알아봅니다. 다양한 연습문제들이 있는데 특징이나 이점 이런 서술형의 경우는 공부하면서 답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긴 합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이 답이겠지요.



반도체 기술이 현대 전자산업을 이끌어 왔고, 사실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향후 수십년 간은 계속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반도체에 이어지는 스핀트로닉스라는 존재, 중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초 개념부터 책에서 익혀, 미래 먹거리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대응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류, 전압, 저항 등의 성질과 자석에 대해서도 조금씩 지식을 쌓아나가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네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상당히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재미로 보거나 훑어 보고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인 것 같습니다. 스핀트로닉스, 그리고 반도체 관련 지식을 쌓고자 하는 분이라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첨단과학에 흥미가 있는 분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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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남자
앨프리드 베스터 지음, 해도연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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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소설이 끌리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진득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SF소설 작가 중에 앨프리드 베스터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이거! 타이거! 라는 작품과 함께 '파괴된 남자' 라는 제목의 책으로 유명한 작가더군요. 마침 서평을 할 기회가 있어 후다닥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 당첨이 되어 읽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와, 이런 빠른 전개로 숨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다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의 내용부터 이야기하자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겁니다. 그런데 내 생각까지 들킨다면 이야기는 완전 달라집니다. 잠깐 욱해서 떠올린 말까지 남이 알아버리면 조용히 산다는 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앨프리드 베스터의 소설은 그런 세상에서 완전범죄를 시도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좀 이해가 안되는 논리이긴 합니다. 마음을 들키는데, 범죄를 시도하다니요.


책 속의 세상에는 사람의 생각을 읽는 ‘에스퍼’가 있습니다. 무려 79년 동안 살인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회인데, 거대 기업의 총수 벤 라이히는 경쟁자인 드코트니를 없앨 생각을 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감추고 맞추게 하는 그런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범죄를 저지를지가 궁금해집니다. 꽤나 독특한 발상이지요. 그래서 재밌었습니다.

첫 장에서는 자신을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믿는 인간의 오만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범죄 이야기 앞에 왜 이런 말이 나올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라이히를 보면 조금 알겠습니다. 남들은 못 해도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사람이니까요. 자신감이 이 정도면 무섭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이히가 드코트니를 찾아가는 장면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대한 난초 속처럼 꾸며진 방인데, 황금빛 장식은 낡고 바닥은 갈라져 있습니다. 화려한 곳인데도 전혀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라이히를 보니, 미래 사회라고 욕심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더군요. 상당히 과거에 쓴 책에서 미래(지금 시점도 미래긴 합니다)를 보는 관점도 흥미로웠네요.


주인공을 쫓는 사람은 에스퍼 경찰 링컨 파월입니다. 남의 생각을 읽는 경찰이면 수사가 금방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누가 범인인지 알아차리는 것과 증거로 입증하는 일은 별개니까요. 라이히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면 파월은 다시 그 틈을 좁힙니다. 범인을 알고 읽어도 재미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언제 잡히려나? 하고 읽게 됩니다.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가고 있는 범죄자를 내려다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에스퍼들이 전부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의사 샘 @킨스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하고, 텔레파시 능력을 일깨우는 교육도 돕습니다. 남의 마음을 읽는 힘이 누군가에게는 수사 도구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돕는 수단인 겁니다. 이런 장면 덕분에 에스퍼가 그저 범인을 잡기 위해 등장한 초능력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텔레파시를 글로 보여주는 방식도 재미있습니다. 이름에 @ 같은 기호가 들어가고, 생각이 오가는 대목에서는 글자의 크기와 배열도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어디부터 읽어야 하나 싶다가도,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끼어드는 모습을 글자로 옮기려 했구나 싶었습니다. 조용한 대화인데 눈으로 읽기는 꽤 바쁩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전개, 라는 느낌을 받는 게 이런 부분에서도 있었습니다.

책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짧은 노래도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는데 도움이 됩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데도 같은 문구가 다시 나오니 자꾸 머리 속에서 재생되는 느낌입니다. 저자의 독특한 서술 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런 장치가 더해져서 단순히 사건의 순서만 따라 읽는 게 아니고 . 라이히가 호감 가는 사람은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무슨 수를 쓸지 궁금해서 그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읽어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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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완전범죄가 가능한 것일까요? 아니면 불가능한 걸까요? 쫓고 쫓기는 관계의 묘사가 맛깔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금 옛날 문체라고 할만한 표현들이 보입니다만, 그래서 더 SF의 맛이 납니다. 다른 시대의 말투도 느껴지구요.


라이히를 응원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금방 잡혀버리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수를 쓸까, 파월은 그걸 어떻게 알아챌까 하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범인을 처음부터 알고도 이렇게 따라 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저자의 필력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제목의 ‘파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됩니다. 저에게는 유명한 SF 고전을 읽었다는 뿌듯함보다, 재미있는 작가 한 명을 새로 알게 됐다는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처음 작가를 찾아볼 때 함께 눈에 들어왔던 타이거! 타이거!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정도로 이야기를 몰아가는 작가라면 다른 책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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