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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평점 :
이 서평은 네이버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영어 공부는 나름 꾸준히(?)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눈으로 보거나, 듣거나 그런식입니다. 이렇게 정제된 문장을 쓰거나 하는 경우는 잘 없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먹는 것만큼 꾸준히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단어장을 펴면 외워야 할 것이 많아 보이고, 문법책을 펼치면 공부를 시작한 기분부터 납니다. 그런 거 솔직히 힘듭니다.. 일하고, 집에와서 또 공부하고...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것이 필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네카. 세네카는 네로의 스승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제의 스승이었던 만큼 문학자, 정치인으로서의 업적을 남기고, 이렇게 좋은 글들도 남겼습니다. 그런 세네카의 문장을 영어로 써 보는 것.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라고 하기엔 머리가 아프지 않고, 그냥 또 철학책이라서 머리가 아프기엔 부담이 덜합니다. 그저 쓰는 거니까요. 그래서 적당히 중간점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루 한 장, 100일의 필사 여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100일 꾸준히 하면 됩니다. 이런 100일이 물론 굉장히 힘들겠지요. 첫 삽을 뜨는 것이 제일 힘든데, 그래서 바로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원문 아래에는 우리말 해석이 있고,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핵심 단어와 표현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QR을 연결했더니 원어민의 영어 낭독이 있더군요. 그럼 무려 100개의 영어 낭독 파일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상당한 듣기 공부(공부 안한다고 했는데 공부하는군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책의 명언들은 후루룩 읽고 넘어가기 쉬운데, 옆에 필사를 하다보니 강제로 슬로우리딩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옆에 써보고, 저는 해석도 천천히 적어보았습니다. 악필인 점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분들은 예쁜 글씨로 잘 쓰실 것이라 믿습니다.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첫날 문장은 행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분명히 알지 못하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열심히 갈수록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영어 문장 자체는 아주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직접 적다 보니 ‘나는 뭘 향해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그냥 영어 문장을 베껴 쓰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 줄을 쓰고 뜻을 확인하고, 다시 다음 줄로 넘어가는 사이에 문장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습니다. 약간 현자의 시간 같은 느낌을 잠깐 가지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100일간 천천히 읽어보는 부분이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서 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좋은 사람은 운명에 끌려가기보다 스스로 따라가며 보조를 맞춘다는 내용입니다. 운명을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는 말보다 현실적으로 들렸습니다. 갑자기 안되면 되게하라, 하는 어떤 군대의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살다 보면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보다 바꿀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포기인지, 받아들임인지, 아니면 방향을 조금 수정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스토아 철학이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요즘 생활과 꽤 잘 맞는 이유가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는 ‘마음을 위한 휴식’처럼 바로 이해되는 문장도 있습니다. 계속 긴장한 채 버티면 마음의 활력이 꺾이니 잠깐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말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로 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필사를 하다 보면 당연한 말을 굳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바쁜 날에는 열 문장을 읽는 것보다 이런 문장 하나를 천천히 쓰는 편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간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요.

마지막까지 가니 이렇게 명문들을 필기체로 연습해보는 공간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필기체는 있어보이는데 있어보이게 쓰는 게 참 어렵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정해진 글씨로 천천히 따라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쓰는 것보다 일정한 속도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예쁜 노트를 만들겠다는 부담을 갖기보다, 하루 한 장을 채우는 쪽이 이 책에는 더 어울립니다.
세네카의 문장은 행복, 운명, 판단, 휴식, 불안처럼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문제를 다룹니다. 그 오래전에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책의 장점으로는 거창한 철학 공부를 시작할 필요도 없고, 영어를 완벽하게 해석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필사가 목적이니만큼 그냥 읽고, 뜻을 확인하고, 손으로 적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면 100일을 채우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 과연 저는 100일을 채울 것인가? 하면서 오기도 생기네요.
저는 이 책의 장점이 ‘공부한다’는 기분을 조금 덜어준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영어 한 문장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세네카의 말을 한 번 생각해보고, 그날의 내 상태도 잠깐 돌아보게 됩니다. 첫날 문장이 바로 그런 걸 느꼈습니다. (필사는 첫날만 하긴 했네요) 거기에다 하루 10분 정도라면 큰 부담도 없습니다. 100일 뒤 영어가 얼마나 늘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100개의 문장을 손으로 직접 써본 시간만큼은 분명히 남겠지요. 영어도 다시 가까이하고 싶고, 하루에 잠깐이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분이라면 꾸준히 펼쳐볼 만한 필사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