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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ㅣ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이 서평은 네이버북카페 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어느덧 이 시리즈도 많이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낸 소설가와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킨 화가의 조합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 번에 세 번째 책입니다.
톨스토이와 르누아르,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더 적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작가지요. 르누아르도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톨스토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부터 시작해서 장편도 다 읽었고 짧은 작품들도 거의 다 읽었습니다. 다만 십수년이 지났기에, 다시 읽기에도 좋을 것 같아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 작품에 르누아르의 조합이라,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습니다.

뒤표지를 펼쳐보면 이 책의 구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과 삽화, 르누아르의 유화와 평전,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함께 실려 있고, 작품과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도 추천합니다. 소설만 읽거나 그림만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학·미술·음악을 천천히 오가도록 만든 점이 좀 특이하고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음악까지 넣어주다니요. 처음에는 톨스토이와 르누아르의 연결이 다소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족과 사랑, 욕망과 행복을 평생 작품 속에서 되묻고 있었다는 사실을 따라가다 보니, 서로 다른 방면의 예술가라기 보다는 인생의 기록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 정도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주인과 일꾼』, 『악마』,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톨스토이 작품을 꽤 많이 읽었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내용을 다시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부분도 있고, ‘이런 내용이었나?’ 싶은 부분도 있더군요. 역시 책은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10대 때의 나, 20대 때의 나, 30대 때의 나, 다 다른 느낌으로 읽힙니다. 상황에 따라도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네요.
톨스토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결국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그토록 따뜻하게 써 내려간 작가이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그런 톨스토이가 자신의 사생아 아들에게 보였던 모습을 함께 꺼내놓습니다.
톨스토이에게는 결혼 전에 농민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훗날 톨스토이가 살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마부로 일했다고 합니다. 거대한 문학작품 안에서는 인간애와 사랑, 양심과 구원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사람이었기에 이런 개인사는 더욱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티모페이는... 톨스토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계속해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그의 실제 삶까지 함께 놓고 보니 그 질문이 단순히 독자에게 던지는 말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가장 끈질기게 던졌던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말이죠.

그리고 이 책에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음악입니다. 쿠프랭의 《클라브생 모음곡》- 사실 이건 잘 몰랐던 곡이었는데 찾아보니까 참 멋진 곡이었습니다- 부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쇼팽과 차이콥스키, 바그너까지 총 8곡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 읽으면서 음악을 따로 찾아 듣는 편은 아닌데, 이렇게 작품과 연관된 곡을 정리해주니 한 번씩 찾아보게 됩니다. 특히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읽으면서 베토벤의 곡까지 같이 접할 수 있다는 건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단순히 톨스토이의 소설을 한 편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시의 문화와 분위기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문화예술은 다 이렇게 접점이 있는 거 같은데, 이 책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소개를 받았네요.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절반은 역시 르누아르입니다. 톨스토이 반, 르누아르 반이지요.

책에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여러 점 수록되어 있는데,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한 페이지 가득 그림이 등장하는 구성이 참 좋았습니다. 그중 '산책' 부분이 좋아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옷을 입은 여성이 숲속에서 걸음을 옮기는 장면인데, 어두운 배경 속에서 인물이 유난히 밝게 보입니다. 르누아르 하면 밝고 부드러운 색감,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왜 그런 이미지가 생겼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르누아르의 개인사를 알고 그림을 다시 보면 여기에서도 묘한 간극이 생깁니다.
르누아르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모델이었던 리즈 트레오와 가까운 관계였고, 두 사람 사이에서 잔이라는 딸이 태어났습니다. 잔은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랐고, 르누아르는 그녀를 공개적으로 자신의 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평생 비밀리에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에서는 평생 행복한 얼굴을 수없이 그렸던 르누아르가 정작 자신의 사생아 딸은 그림에 담지 않았다는 점을 상당히 강하게 대비시킵니다.

'화가의 가족'도 처음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림 속에는 아내 알린과 아이들, 가족과 가까웠던 가브리엘 등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평온하고 따뜻한 가족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이 가족의 바깥에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한 톨스토이도 자신의 삶에서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고, 행복한 얼굴을 그렇게 많이 그린 르누아르 역시 모든 가족에게 똑같은 모습의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작품만 보면 성인이나 천재처럼 느껴지던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처럼 욕망하고 실수하고 때로는 외면하면서 살아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 제목이 참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유명인의 숨겨진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작품과 실제 삶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고, 그 간격까지 알고 난 뒤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 작품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이런 개인사를 알고 다시 책을읽으니 분명 예전과 다른 부분이 보였습니다. 르누아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빛과 색을 먼저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림 안에 있는 가족과, 반대로 그림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세 번째 책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순히 톨스토이의 소설 몇 편과 르누아르의 그림을 함께 수록한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작품과 작가의 삶을 서로 비춰보게 만들고, 그 사이에 음악까지 넣어놓았다는 것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클래식 교양도 좀 늘었네요.
벌써 세 번째 책까지 챙겨보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또 어떤 소설가와 화가가 한 권에서 만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아마... 또 새로운 조합이 나오겠지요?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번 책 덕분에 오래전에 읽었던 톨스토이 작품들을 다시 한 권씩 꺼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톨스토이의 세계로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죄와 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컴퓨터의 배경화면으로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고전명작의 힘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렇게 조화롭게 구성된 문학과 미술의 힘으로 구성된 책을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