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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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원 없는 세상을 향한 무자비한 숙청이 시작된다.

 

 

- 태양빛은 세상 모든 곳에 골고루 비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곳은 일년 내내 습지고 그늘이다. 어떤 곳이라기보다 일부를 제외한 세상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신문 속을 누비게 된다. 한쪽에서 살인이 벌어지고, 한쪽에선 폭력의 핏방울이 튀고, 한쪽에선 교통사고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위태롭게 눈앞을 휙휙 지나가고, 수많은 일그러진 삶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놀라운 사건들이 일상의 풍경인듯 무심하게 세상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남의 일'에 불과하다면 신문 귀퉁이에 실린 삽화만큼이나 대수롭지 않은 풍경이 될 것이다. '나의 일'이 되는 순간 비로소 썩은 악취가 맡아지고, 일그러진 풍경들에 대한 분노가 발생한다. 세상과의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뉴스들이란 세상의 풍경 가운데 카메라로 담아 내고, 기자들의 발품이 닿는 곳까지의 작디 작은 조각 모음에 불과하다. 진짜 세상의 이야기는 매스컴의 보도 너머에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진짜 이야기를 보려면 수면 아래로 들어가야만 한다. 태양이 비치는 곳이 아닌 그늘 속 밑바닥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세상의 그늘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무수한 벌레들이 들끓고 있다.

눈앞에서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활보하는 인간들의 발자국들로 더렵혀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감한다. 신문를 덮어서 멀리 던져버리듯, 세상의 풍경과 담을 쌓고 멀리 동떨어져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하늘로까지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21세기는  아래로 긴 그늘을 만들어 낸다. 그곳은 태양빛이 닿지 않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벌레들의 세상이다. 바로 우리들의 세상인 것이다. 우리라는 '우리'에 갇혀 버린 대다수의 인간들이 '인생'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무대다. 잡초가 무성하고 벌레들이 들끓는 음습한 세상의 밑바닥.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고, 그곳에 들러붙어 치사하고, 야비하고, 비겁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곳에 있다. 높디 높은 저 허공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곤도 아야코 선생은 경찰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학교를 모른다고. 아이들이 어떤 모습인지를 모른다고.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이야기만으로는 그들을 알 수 없다. 한 반짝 떨어져서 관망하는 태도로는 진실을 알 수 없는 법이다. 학생들의 실상을 알고 싶으면, 학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으로, 깊숙한 그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줄 알아야 한다. 벌레처럼, 잡초처럼 어둠 속에서 기거하는 대다수 인간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선 그들의 숨소리가 들릴 수 있는만큼의 거리까지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21세의 학생들. 10대라는 나이, 깔끔한 교복과 앳된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된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나 전국구 조직 폭력배 보스가 저지르는 비리와 횡포, 폭력에 맞먹는 강력한 '흉포함'이 그들 속에 도사리고 있다. 21세기의 그늘이 만들어낸 우리들의 몬스터. 괴물은 비단 학생들만이 아니다.

나는 지하철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 장소에서 추태를 부리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과연 어떤 유년기를 보내면서 뇌구조가 어떤 꼴이 되어야만 저런 인간이, 저런 어른이 되는 것일까.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그저 분노만 느낄 뿐이다. 분노한다. 물론 그것을 내부에서 밖으로 표출하기까지는 다시 막대한 용기와 책임을 필요로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어떤 수단을 써도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이미 태양 없는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아버린 족속들이라 이제와서 태양 빛에 노출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환한 태양 아래서 몬스터가 온전히 존재할 수 없듯.

상황이 이러니 선택은 두 가지 뿐이다. 세상이라는 신문을 펼쳐 들고 분노하거나, 접고 외면하거나...

분노의 표출로까지 이어지는 선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말했다시피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잡초 몇 개가 뽑혔다고 잡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금방 빈자리를 채우며 더욱 무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10대 폭주족들에게 딸을 잃은 아야코는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른다. 아니 그것은 분노라기 보다는 차라리 새끼를 잃은 어미의 본능적인 광기다.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일'이 되는 순간 어미는 미쳐버리는 것이다. 만일 딸이 죽지 않았다면 그러한 광기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의 아야코는 썩은 세상의 신문을 들추지 않고 '외면'하는 쪽이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해가 오지만 않았다면,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까지 몬스터의 더러운 마수가 뻗어오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외면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딸을 잃은 아야코는 광기에 휩싸인채 폭주한다. 무언가 바뀌길 기대하며 저지른 일이 아니다. 그녀도 알고 있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분노이며, 광기이며, 세상을 향한 '폭력'일 뿐이라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받기만 했던 '폭력'을 다만 조금 되갚아 줄 뿐인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비극'을 담보해야만 하는 일이다. 스스로 폭탄이 되어 세상의 일부분을 파괴시키는 행동이다. 아야코의 폭주가, 광기가 그래서 외롭고 쓸쓸해 보였던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아야코의 행동에 눈곱만큼도 비난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바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딸을 성폭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10대 소년들을 하나씩 찾아가 처형시키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가족사냥'에서 질서와 윤리가 무너진 타락한 일가족을 차례차례 박멸시켜나가던 해충구제요원을 보면서도 나는 그 끔찍한 살인들에 화가 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들을 그렇게 광기에 휩싸이게 만든 원인제공자들에게 화가 나고 분노할 뿐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그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분노할 수 있고, 외면할 수도 있고, 숙청을 감행할 수도 있지만 구원할 순 없는 것이다. 구원은 없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거리의 곳곳에서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고, 21세기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진절머리나는 저 거리, 저 세상은 신마저도 일찌감치 외면해 버린 저주의 땅이다. 태양빛이 닿지 않는 썩은 땅 위엔 희망도, 구원도, 해결책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소설을 접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기분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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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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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조직의 정치학

 

 

쇼와 64년. 쇼와 시대를 7일 남겨두고 D현경 관할 지구에서 소녀가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든 경찰력이 총동원되어 유괴범을 검거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유괴범은 돈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지고, 며칠 후 소녀는 차디찬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천왕의 붕어와 함께 쇼와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관계자들의 가슴 속에서 쇼와 64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녀 유괴 살해사건은 D현경에서 풀지 못한 단 하나의 미제 사건이었고, 때문에 '64' 사건은 담당자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는다.

사건 후 14년이 흐르고 당시 64 사건의 수사 담당자였던 미카미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D현경 경무부 홍보과에서 근무하는 신세가 된다. 경무부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카미는 형사부로의 복귀를 갈망하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가 않다. 당장 무릎까지 산적해 있는 문제들부터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홍보과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은 물밀듯 밀려드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현장에서 흉악범을 검거하는 쪽이 차라리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경찰청장 방문이라는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한다. 기자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경찰청장 방문까지 감당해야 하는 미카미에게 형사부로의 복직은 요원한 일만 같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카미는 가장 큰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여고생 딸이 외모를 비관하여 가출한 후 행방불명된 것이다. 미카미는 과중된 경찰 업무와 조직의 부조리에 시달리는 한편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도 혈안이다. 이런 와중에 쓰라린 상흔으로 남은 64 사건을 다시금 헤집고 다녀야 하는 처참한 상황까지 닥친다. 공소시효를 1년 남겨둔 지금 시점에서 다시금 64의 악몽이 되살아나 미카미를 비롯 많은 D현경의 경찰들을 괴롭힌다. 

 

이 소설의 장점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전작들에서 보여진 장점들과 거의 일치한다.

그것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현장감'이 되겠다.

숨막히는 현장감.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숨막히는 '현장' 한 가운데 서 있게 된다. 그곳은 경찰들의 세상이다. 좋은 소설은 특정 분야를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일련의 경찰 소설들이 그렇다. 그것이 작품의 장점이며 작가만의 강점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64'에서도 작가는 6밀리 카메라로 밀착 다큐를 찍듯 D현경의 수많은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삶의 그늘까지 생생히 묻어나는 그들의 일과를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홍보과에서 근무하는 미카미를 둘러싸고 경찰 내부에서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문제는 마찰을 야기하고, 마찰은 분노를, 분노는 혼란을 야기한다. 소설 초반부터 꾸준히 미카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기자들과의 문제가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한다. 사건의 취재를 위해 밀려드는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애매모호하며, 중대하고도 우스꽝스런 일인지 중년의 미카미는 새삼 깨닫는다. 그들을 상대하는 일은 어린 애들을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성가시고 예측불허다. 하지만 그들의 호의적인 도움 없이는 홍보과는 물론이고 경찰 조직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기자와 경찰은 숙명적인 공생관계인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동료 경찰들과의 관계다. 상/하급자, 선/후배, 남/녀 경찰 등의 갈등이나 대립, 알력 다툼 등이 쉼없이 발생한다. 미카미는 형사부 수사과에서 근무하고 싶지만 현재는 홍보과로 내쳐진 상황이다. 형사부로 다시 복직하기 위해서는 인사 담당자에게 잘 보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즉 경무부에 충성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경무부에 충성을 할수록 형사부와의 관계는 점점 더 벌어진다. 문제는 경무부와 형사부가 알게 모르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힘겨루기는 이들만이 아니라, 경찰과 기자, 상급자와 하급자, 부서와 부서, 동료와 동료 등 여러 곳에서 발생한다), 미카미는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흉악한 살인사건이나 테러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D현경 경찰 본부는 내부의 전쟁으로 시시각각이 살벌하고 위태롭다.

 

문제는 미카미만 떠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질식 직전의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기는 D현경에서 근무하는 거의 모든 경찰관들이 마찬가지였다. 미카미의 입장에서는 미카미가 가장 큰 고뇌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찰들이 나름의 문제들로 고민과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조직' 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다. 조직사회 특유의 부조리와 비합리, 모순들...

이 소설은 조직사회가 필연적으로 안고 가야할 문제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생하는 필요악에 대한 보고서다. 조직사회에서 '조직'은 과연 '조직원'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에 귀속되어 있다. 조직 안에서 웃고, 울며, 열정과 의지를 발휘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조직'에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조직 안에서 나름의 질서와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조직의 모순을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조직의 수뇌부에 올라서고 보면 그 모든 조직의 불합리와 부조리한 '문제'들이 타당하고, '필요'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것이 없으면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것만 같다. 조직원들의 불평, 불만, 고민, 갈등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조직의 불합리와 모순들이 사리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조직원들을, 그리고 조직을 그나마 온전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필요악'이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어쩌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조직을 극복하려 힘쓰지만, 누군가는 조직을 유지하려 힘쓴다. 누군가에게 조직은 끔찍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조직은 사명이다. 이들 모두가 어쨌거나 조직 안에서 존재하고 있기에 조직은 굴러가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 미카미의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태도가 작의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 조직을 해부하며 그 정치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보편적인 조직의 정치성이며, 세상의 정치성인 것이다. 개개의 구성원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조직은 정치를 야기하고, 정치는 구성원들에게 필요악이 되는 것이다. 정치가 싫어도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며,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64'는 추리소설로 분류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소설'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제3의 시효'를 통해 경찰소설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는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경찰소설만이 갖는 매력과 가치를 확실히 전달한다. 난무하는 추리/미스터리 소설들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수작이다. 말하자면 '탄생의 이유'가 명확하기에 확실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미카미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경찰 내부는 끊임없는 문제와 갈등으로 흔들리지만 그들은 부딪히고 비틀거리는 과정 속에서 각성하고, 묘한 질서와 체계를 잡아간다. 조직은 그렇게 면모를 유지해가고, 때가 되면(위기가 오면) 서로 뭉쳐 특유의 힘을 발휘한다. 64 사건의 공소 시효가 1년을 남긴 시점에서 다시금 14년 전과 유사한 소녀 유괴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14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요구한다. 조직 내부의 문제들로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하던 경찰들은 그러나 64 사건의 재현 앞에서는 조직력을 발휘한다. 질투와 시기와 모순과 불만 따위는 잊고 오직 소녀를 구하기 위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아직도 막을 내리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쇼와 64년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순수하게 분노하며, 분투한다. 이 대목에서 서사는 장르적 힘을 발휘하며 예상치도 못한 반전을 터뜨린다. 슬픔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반전도 무척 좋았으나 나는 반전보다 역시 '현장감'에 더욱 도취되었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려내는 '현장감'의 매력은 정말 이 소설만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10년이 걸렸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정도의 노고과 열정이 생생한 '현장감'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그야말로 필생의 역작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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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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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했던 김연수는 '나는 유령 작가입니다'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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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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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대학을 졸업한 23살의 앤드리아 삭스는 패션 전문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된다. 패션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런웨이 세계를 군림하는 이 여왕 같은 존재는 그러나 사실 변덕이 죽끓듯 하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부분의)사람들에게 무시와 경멸을 보내는 악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앤드리아는 일 년간 미란다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기로 계약을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해온 성공을 위해서. 그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괴로워한다. 일 년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몇 십 년에 걸쳐 당할 수모와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앤드리아는 버티고 또 버틴다. 그녀는 오직,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11개월을 보낸다. 그 사이에 절친했던 친구가 알콜 중독이 되어가고, 4년 가까이 사귀어 온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가족들과 소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앤드리아는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아는 척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고대했던 성공이 눈앞에 보이지만, 앤드리아가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나온 섬처럼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하나의 성공을 손에 쥐는 대가로 그녀는 너무도 가혹한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자신이 붙잡아야 할, 두 발을 딛고 일어서야 할 진정한 현실인지... 성공과 사랑 사이에서 엄청난 딜레마를 겪는다. 그리고 그 잔혹하리만큼 눈물겨운 기로에서 앤드리아는 마침내 선택한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 은수의 삶과 사고에는 크게 공감 할 수가 없었다. 나름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혹은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부푼 환상과 피상적인 재미만 느껴질 뿐 가슴 깊은 공감이나 울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연하남과의 동거를 비롯한 은수의 각종 연애담들이... 그런데 정작, 거의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 젊은(차라리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금발의 백인 여성이 쓴, 이 소설은, 왜 그리도 구구절절 공감이 가든지... 왜 이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보다 더 공감이 가는 건지...
그래, 인생이란 이런 것이지... 현대사회에서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성공을 꿈꾼다는 것은... 이렇게 비정하고, 고통스럽고, 잔혹한 것이지...
가련하게 울부짖는 저 어린 사회 초년생이여... 저 살벌한 세상의 중심으로 뛰어 든다는 게, 그 정글 같은 세계를 헤치고 나간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란다... 그렇고 말고... 낭만? 달콤함? 화려함? 아니면 낯선이와의 황홀한 원 나잇 스탠드? 그런 것들은 기대하지 말아라. 그야말로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 혹은 돈 많은 백수들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란다. 우리네 현실은, 사회는, 삶은 만만치가 않단 말이다. 앤-드리-아, 우리 아이들이 해리포터 신작을 남들보다 하루 빨리 읽고 싶어해. 앤-드리-아, 저번에 내가 빈티지 서랍장을 본 그 골동품 점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필요해. 앤-드리-아, 45분 안에 내가 읽을 연설문을 써 가지고 와! 네가 사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란 바로 이런 것들이란 말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그런 일이 아닌, 맨 땅에, 맨 손으로, 하루만에 베르사유 같은 궁전을 지어야만 하는, 그런 뜨악하고 무지막지한 일들이란 말이다. 물론 그런 일들 속에서도 이성과 논리와 체계가 존재한다. 하다보면 느껴진다. 그러니 일단 해야한다. 뭐? 어떻게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 신작을 미리 구할 수 있냐고? 그 골동품 점의 상호가 뭐냐고? 어느 지역에 있는지 모른다고? 45분 안에 연설문을 쓸 수 없다고? 앤-드리-아,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네가 여기에 있는 거라고!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당장 이 사회에서 떠나라고! 지금껏 올라왔던 저 보잘것없는 몇 계단을 도로 굴러서 맨 밑바닥으로, 네 응석과 넘치는 감정을 황홀히 받아줄 가족의 품안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고 잠그고 갓난아기처럼 나태하게 살란 말이다.


앤드리아는 무조건 해야만 했다. 미란다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를 하루 전에 구해야만 했으며, 미국 땅덩어리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는 그 골동품 점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야만 했으며, 45분만에 짧고 간결한 연설문을 써내야만 했다.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을 기적처럼 해낸다. 미란다를 위해서. 아니,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서! 친구와 가족과 사생활을 팽개치고...! 수프와 스타벅스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그렇게 열심히, 열심히 계단을 올라간 것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꿈 많은 젊은이가 현실의 세계로 진입해 성공의 궤도에까지 오르기란,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또 다른 세계가 탄생되어지는 일 만큼이나 험난하고 엄청난 것이다. 현실의 세상이란 교과서에 배운 것처럼, 텔레비전 속에서 분칠을 한 배우들이 조잘대는 낯간지러운 세상처럼, 동화처럼, 환상처럼, 아름답고 선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온통 화려하게만 보이는 패션계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애처로울 만큼의 땀방울과 살을 벨 듯한 냉기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굽이 10센티미터나 되는 멋들어진 스켈레토 구두를 신고 폼을 내기 위해서는 뒤꿈치가 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고, 4만 달러짜리 샤넬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체중감량을 감수해야만 하듯,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듯한 고생을 겪어야만 겨우 골프공 만한 작은 성공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세상의 법칙이며, 성공의 법칙인 것이다.  

앤드리아는 미란다라는 악마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워간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현명히 대처하는 사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마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의 성공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무수한 악마들로 북적인다. 그 중에서 앤드리아는 고작 프라다를 입는 악마 하나만을 상대했을 뿐이다. 그녀는 아직 젊었고, 성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악마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악마를 하나씩 상대할수록 그녀는 더 성숙해지고, 현명해질 것이다.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하나의 악마가 되어갈 쯤에 그런 것들을 완전하게 터득할런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살든... 성공을 꿈꾼다면 반드시 고통을 감수하고 악마와 어울리든, 스스로 악마가 되어야만 하니... 세상이란, 참, 정말로, 과연, 만만찮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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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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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이자, 네번째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나는 천운영의 전작을 읽게 되었다.
등단 8년만에 네 권의 책이라... 다소 과작을 하는 듯 싶지만, 천운영은 부지런한 작가다.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 이후 약 일년간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는 했지만, 그녀는 비교적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다. 지난 한 해동안만 네 편의 단편을 각 문예지에 발표했다. 각종 문학상 후보에도 자주 올랐다. 특히 작년과 올해에 연달아 이상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쉼 없이사랑을 받아왔다.  
천운영의 소설이 평단과 독자에게 골고루 사랑 받는 이유는 색깔 때문이다. 그녀만의 색깔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렬해서, 너무 자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녀만의 강렬한 색깔. 천운영의 소설집을 단 한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그 색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뾰족한 바늘로 살갗을 파고들어 한땀 한땀 화려한 얼룩을 내는 문신처럼 강렬하고 소름 돋는 색채. 혹은 이미지. 
 
첫 소설집 <바늘>부터 천운영은 늘 인간의 몸, 혹은 여자의 몸을 서슴없이 주무르고, 파헤치고, 열어 보이는 작업을 해왔다. 그것은 두번째 소설집 <명랑>에서도 이어졌고,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 이르러서도 작업은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몸의 탐구. 그것은 곧 감정의 탐구이며, 삶의 탐구에 다름없다. 감정을 담고 있는 몸, 감정을 담고 삶을 살아가는 몸.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면 그 인간의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의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감정과 눈물과 욕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 소설집에 와서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담아내려고 한다. 천운영의 강한 특징 중에 하나인 철저한 취재에 입각한 사실적 묘사에 소설적 상상력과 환상성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가미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필시 처참하고 눈물겨운 인생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풀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화나 판타지, 혹은 꿈결 같은 아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환상인듯, 현실인듯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몸 속에 내재된 욕망의 덩어리들을 가차없이 터트리고, 주무르고, 독자로 하여금 그 진실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와 '내가 쓴 것', 그리고 '백조의 호수'가 특히 좋았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바늘>, <명랑>에서 보여진 천운영만의 특색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었고, '내가 쓴 것'은 내용만 따지고 본다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형식의 소설가 소설을 썼다는 실험성과 대중적인 흡인력은 훌륭했다. '백조의 호수'는 욕망의 허위와 파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화장실에서의 어이없는 싸움부터 라스트의 반전에 이르기까지 그 기막히게 매끄러운 연결과 시선을 잡아끄는 서사의 힘이 가히 압권이었다. 

나머지 다섯 편의 작품도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만의 특색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표제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도 충분히 천운영스러워서 좋았으며, 이미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통해 읽었던 '내가 데려다 줄게'의 몽환적인 이미지와, 혼혈 2세 소년의 성장 삽화를 보는 듯한 '알리의 줄넘기', 시종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로 이어진 '후에'도 막힘없이 잘 읽혔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천운영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라고 했던 '노래하는 꽃마차'가 개인적으로 가장 지루하게 읽혔다는 것이다. 뭐 개인차가 있을 테니, 이 단편이 가장 좋게 읽힌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천운영의 작품은 두번째 소설집 <명랑>에 실린 단편 '명랑'이다.  

여하튼 천운영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작가다. 최근 한국 작가들에게 워낙 실망을 많이 한 터라, 천운영이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윤성희, 천운영, 김애란... 내가 좋아하는 한국 여류소설가 삼인방이다) 천운영의 다음 작품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지만, 그녀는 때가 되어야 다음 작품을 낼 것이고, 나는 그 '때'를, 기꺼이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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