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유미 지음 / 언유주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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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하고 산뜻했던 전작에 비해 다소 심심하고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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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자들의 밤
빅터 라발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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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2세로 뉴욕에서 성장한 아폴로는 고서적 판매상을 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기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언제부턴가 아내의 휴대전화로 수상한 사진이 전송되기 시작하고아내는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어느 날 아내는 아폴로를 쇠사슬로 결박하고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든 채 말한다. ‘저건 아기가 아니야.’ 아내는 아기를 죽이고 아폴로에게 큰 상처를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끔찍한 비극을 겪은 후 아폴로는 먼 옛날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던 아버지를 생각한다아폴로가 아기였을 때 그의 아버지도 자식을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그렇게 아폴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것이다아버지는 왜 어린 아기였던 나를 버리고 떠났을까아내는 왜 어린 아기를 죽이고 떠났을까.

여러 단서를 토대로 아폴로는 아직 아내와 아기가 살아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찾아 긴 여정길에 오른다. 현재와 과거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괴하고 위태로운 모험이 펼쳐지고 그 끝에는 절체절명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아폴로는 아내와 아기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을까.

 

체인질링이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 뒤바뀐 아이에 대한 공포를 모티프로 전설과 괴담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며 사회 속에 깃든 여러 문제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특히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올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역설하는 대목이 크게 와닿았다. 당신의 소중한 아이들을소중한 가정을 알 수 없는 무수한 타인들의 시선 속에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일이 뭐가 그리 즐거울 수 있나그 사진을 엿보는 무수한 시선 속에는 미치광이도 있고범죄자도 있고살인자도 있고선량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웃의 사이코패스도 있을 수 있다. 온라인이라는 익명의 세상 속에 소중한 아이의 정보를 마구잡이로 올리는 일은 트럭과 버스가 질주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아기 포대기를 내려놓는 일 만큼이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소수민족결손가정, 여성 문제 등에 대해서도 두루 아우르고 있는데 작가가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자전적 체험이 녹아든듯 했다. 어쩌면 작가의 삶 자체가 공포였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불안과 공포를 늘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불안과 공포라는 토대 위에서 구축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해도 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편견과 악의로 가득 차 있다면 행복을 보장받기 힘들다. 사회라는 우리(cage)속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이자 공포일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시선을 늘 경계해야만 한다. 엿보는 자들의 시선이 정겨운 이웃의 눈길에서 차가운 괴물의 시선으로 돌변하는 순간 내 삶이내 가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행복했던 삶이 타인의 악의에 의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인간과 사회의 의식 구조가 바뀌어야만 전망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데, 인간과 사회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듯하다. 바뀌고 있다면 빅터 라발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해 이런 공포소설을 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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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눈의 고양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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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다.

기괴하고오싹하고애틋한 다섯 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귀신이 등장할 때는 무섭기도 하지만 귀신과 얽힌 인간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애처롭고 서글프다

귀신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인간이 한을 품고 죽어 귀신이 된 것이다귀신이 인간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고인간의 눈에 귀신이 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증오하고 갈망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인간이나 귀신이나 마찬가지다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파멸을 초래하거나 더 짙은 비애와 상실감을 낳을 뿐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귀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어떡해야 할까과욕을 버리고증오를 버리고미련과 집착을 떨치고 부처처럼 살아야 할까

그럴 수도 없다인간이니까한때 인간이었던 귀신이니까삶이란세상이란 결국 비루한 감정에 얽매여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래서 인간사 기구한 사연이 끊이지 않는 것이고그것을 말하고 싶은 사람듣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이고미시마야 변조괴담은 그렇게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흑백의 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하는 자와 듣는 자의 사연은 여전히 흥미진진했고, 때론 무시무시했으며, 또 가슴이 저렸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만 소원을 들어주는 끔찍한 요괴 이야기, 말 못하는 소녀를 보살피다가 소녀 곁을 떠도는 어린 영혼과 조우하는 이야기, 읽는 순간 죽음의 날을 알게 되는 책 이야기 등 다섯 편의 중편 연작들 속에는 기기묘묘한 미스터리와 애절하고 애틋한 인간 드라마가 함께 펼쳐진다. 

재미있고, 섬뜩했으며, 훈훈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네 번째 중편인 '기이한 책 이야기'로 말미암아 여주인공 오치카의 운명에 변화가 생기지만 이야기를 듣고, 버리는 흑백의 방 시리즈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될 것 같다. 저자 미야베 미유키도 이 시리즈를 100화까지 쓰고 싶다고 했으니. 다음 시리즈를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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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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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이 터무니없이 높아 무서울 지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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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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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 용을 죽여야만 하는 것일까.





국적도, 연도도 알 수 없는 어느 시기의 어느 세상의 어느 인간(혹은 종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판타지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도 드라마는 빛을 발한다. '남아 있는 나날'과 상통하는 면도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신념이 훗날 회고를 통해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과 반성, 자기 성찰 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암흑의 시대를 무력과 전쟁으로 종결지은 아더 왕의 역사가 등장한다. 무력과 전쟁, 피와 폭력으로 성취한 평화와 영광이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무력으로 성취한 평화는 언제든 무력으로 다시 깨질 수 있다. 이쪽 종족이 모조리 죽어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저쪽 종족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저쪽 종족이 남아 있으면 이쪽 종족의 평화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 완전한 평화를 위해서는 저쪽을 완전히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되는 전쟁과 평화. 반복되는 전쟁과 평화 속에서 쓰이는 피의 역사. 작가는 이 피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독자로 하여금 바라보고, 상기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아들의 마을을 찾아 떠나는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등장한다. 그들은 망각의 입김을 지닌 용의 횡포로 인해 과거의 기억들을 잊고 살아간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서서히 기억이 돌아올수록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잊었던 기억은 잊었던 역사를, 잊었던 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망각 속에서 건져진 기억들은 모조리 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그때 칼을 쥔 내 손으로 어린 소년에 불과한 적병의 목을 친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평화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젊은이들의 육신을 베고, 찌르고, 세상을 온통 피로 물들이며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젊은 부인들에게서 아버지와 남편을 앗아간 일이 과연 잘한 일이었던가.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런 만행들이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만행은 되풀이될 것이다. 피의 역사는 번복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액슬은 괴로워한다.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면 역사도 부정된다. 평화의 의미도 퇴색된다. 기억과 망각의 기로에서 액슬은 고민과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용의 처단을 두고 늙은 기사와 젊은 전사가 대립하는 소설의 절정 부분에 있다. 

늙은 기사는 용을 지키고 싶어 하고, 전사는 용을 죽이려 한다. 망각을 유지하려는 자와 기억을 일깨우려는 자. 피의 역사를 덮으려는 자와 피의 역사를 되풀이하려는 자. 기사와 전사의 마지막 싸움은 읽는 이를 숨 막히는 전율로 몰아간다. 

피로 승리를 쟁취하고, 피로 역사를 세운 장본인은 역사의 전권을 손에 쥐는 순간 '피'는 지우고 '역사'만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울 수만 있다면 '피'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려 드는 것이다. 그에게는 망각의 입김을 내뿜는 용이 필요한 것이다. 용의 죽음은 '피'의 기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평화는 다시 깨진다. 피 흘리며 죽어간 종족의 후예들이 눈을 뜨는 순간 다시 세상에는 피가 뿌려진다. 그래서 늙은 기사는 이미 병들고 지친 용을 끝까지 지켜주려 하는 것이다. 

작품은 결말로 갈수록 깊은 비애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리 강하고 무서웠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쇠퇴하고 몰락하기 마련이다. 한때 사바나를 주름 잡았던 건강한 수사자도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기 마련이고, 결국 또 다른 젊은 수사자에게 무리를 빼앗기고 쫓겨나거나 죽음을 맞는다. 목숨을 걸고 용을 지키려는 늙은 기사의 모습은 목숨을 걸고 용을 죽이려는 젊은 전사의 먼 훗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전사도 나이 들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어 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을 부수고 없애고 싶어 하는 누군가와 맞서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잔인한 것이고, 역사는 잔인한 시간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며 상처와 후회의 그림자를 남긴다. 

역사 속에 깃든 망각의 그림자들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망각의 그림자 속에 덮힌 핏자국들을 다시 일깨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만들어갈 역사의 줄기 속에는 더 이상 핏자국도, 그것을 덮을 망각의 그림자도 없을 거라 자신할 수 있을까.    

이 쓸쓸한 판타지를 통해 작가가 던진 질문들은 간단하다면 간단할 수도 있는데 나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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