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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자들의 밤
빅터 라발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 이민자 2세로 뉴욕에서 성장한 아폴로는 고서적 판매상을 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기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언제부턴가 아내의 휴대전화로 수상한 사진이 전송되기 시작하고, 아내는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어느 날 아내는 아폴로를 쇠사슬로 결박하고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든 채 말한다. ‘저건 아기가 아니야.’ 아내는 아기를 죽이고 아폴로에게 큰 상처를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 끔찍한 비극을 겪은 후 아폴로는 먼 옛날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폴로가 아기였을 때 그의 아버지도 자식을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그렇게 아폴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것이다. 아버지는 왜 어린 아기였던 나를 버리고 떠났을까. 아내는 왜 어린 아기를 죽이고 떠났을까.
여러 단서를 토대로 아폴로는 아직 아내와 아기가 살아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찾아 긴 여정길에 오른다.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괴하고 위태로운 모험이 펼쳐지고 그 끝에는 절체절명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아폴로는 아내와 아기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을까.
‘체인질링’이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 뒤바뀐 아이에 대한 공포를 모티프로 전설과 괴담, 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며 사회 속에 깃든 여러 문제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특히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아무 생각 없이 SNS에 올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역설하는 대목이 크게 와닿았다. 당신의 소중한 아이들을, 소중한 가정을 알 수 없는 무수한 타인들의 시선 속에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일이 뭐가 그리 즐거울 수 있나. 그 사진을 엿보는 무수한 시선 속에는 미치광이도 있고, 범죄자도 있고, 살인자도 있고, 선량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웃의 사이코패스도 있을 수 있다. 온라인이라는 익명의 세상 속에 소중한 아이의 정보를 마구잡이로 올리는 일은 트럭과 버스가 질주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아기 포대기를 내려놓는 일 만큼이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결손가정, 여성 문제 등에 대해서도 두루 아우르고 있는데 작가가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자전적 체험이 녹아든듯 했다. 어쩌면 작가의 삶 자체가 공포였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다. 불안과 공포를 늘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불안과 공포라는 토대 위에서 구축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해도 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편견과 악의로 가득 차 있다면 행복을 보장받기 힘들다. 사회라는 우리(cage)속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이자 공포일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시선을 늘 경계해야만 한다. 엿보는 자들의 시선이 정겨운 이웃의 눈길에서 차가운 괴물의 시선으로 돌변하는 순간 내 삶이, 내 가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행복했던 삶이 타인의 악의에 의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인간과 사회의 의식 구조가 바뀌어야만 전망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데, 인간과 사회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듯하다. 바뀌고 있다면 빅터 라발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해 이런 공포소설을 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