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동물들은 이상향을 꿈꾼다. 인간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인간들의 체제 속에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동하고 그 대가를 충실히 보상받을 수 있는 그들만의 천국을 꿈꾼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유롭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착취당하고, 사나운 억압과 날선 감시 속에서 고통받으며 죽음을 기다리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돼지를 주축으로 반인간 사상으로 뭉친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내고 마침내 농장의 주인이 되고 만다.
동물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제와 그들의 습성을 모조리 타파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만든다. 그들만의 이상 국가를 실현시켜 나간다.
인간이 사라진 농장은 온전히 동물들만의 것이 된다. 동물들은 자유롭게 농장을 활보하고,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즐거운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를 달게 즐긴다. 그토록 그려왔던 자유 이상주의가 실현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반란을 주도했던 돼지들 사이에서 이상한 대립이 발생하고, 동물농장의 모습은 조금씩 일그러지고 균열을 일으킨다. 사라진 줄 알았던 억압과 폭력이 어느 틈엔가 그들 중심에 피냄새를 풍기며 우뚝 서 있다. 동물들은 돼지들이 새롭게 정한 법과 체제에 길들여지며 소수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동물농장은 그들이 꿈꿔왔던 이상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간다.
동물농장은 우화소설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작가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시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보통은 그렇다. 소설가로서의 신념은 대중의 사상과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은 곧 개인과 집단의 사상적 충돌인 것이다. 어느 작가도 자신의 신념과 대중의 지지가 완전히 부합되는 소설을 쓰지는 못하거나, 행여 그런 소설이 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천운을 타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딜레마에 빠지고, 자기 연민, 혹은 혐오에 빠지게 된다.
조지 오웰도 이 작품을 쓰면서 그런 고민에 수없이 빠졌을 것이다. 그의 작가적(혹은 개인적) 사상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하나로 명확히 요약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상을 어떻게 무리없이(독자들에게 외면당히지 않게끔) 소설화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작업을, 오웰은 해낸다. 우화라는 형식을 빌려서...
이 소설이 우화적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했을 뿐더러, 출간 조차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중에 탈고된 이 작품은 그러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일 년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어느 편집장이 선뜻 반기겠는가.
그러니 이 작품의 우화적 성격은 더욱 큰 장점으로 작용이 되는 것이다. 우화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시켰기에 마침내 종전 이후 출판사를 구할 수 있었고, 우화적인 이야기였기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한다. 출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며 1천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니, 원고지 6~700매에 불과한 이 작은 경장편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토록 높고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도 소설이 지닌 '재미'에 있을 것이다. 출간 당시의 상황이야 그렇다쳐도, 지금은 이미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시대가 끝난 지 오래다. 현재의 독자들은 오웰이 가졌던 작가적 사상에는 어쩌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소설이 가진 '재미' 때문일 것이다. 정말 재미있다. 책장을 열면 빠져들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재밌다. 이 소설이 갖는 재미의 원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우화적 성격에서 발생한 것이다.
돼지가 동물들을 지배하고, 말이 복종하고 열심히 노동을 하고, 개떼들이 돼지를 호위하고, 양떼들이 돼지를 찬양하고,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나와 한바탕 촌극을 벌이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화의 껍질을 걷는 순간 그것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로 돌변한다. 그 공포 속에 이 소설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시무시한 공포를 우스꽝스럽고 흥미진진한 재미로 멋지게 감쌌다는 것! 어느 작가도 쉽사리 이룰 수 없는 이 대단한 작업을 오웰은 멋지게 해 낸 것이다. 오웰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탁월하게 빛나는 역작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혹은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꿈꾼다. 인류가 지속되는 한, 모든 인류는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 책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읽히고 사랑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