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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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을 본 것은 영화가 개봉한 지 십수 년이 지난 후인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프랑스 문화의 이해인지, 역사의 이해인지 하는 수업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장 자크아노의 영화는 선호하는 편이었다. '불을 찾아서', '장미의 이름', '베어', '티벳에서의 7년' 같은 작품들은 지금 봐도 좋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영화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홍보 탓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국내 개봉 당시 '포스트 포르노그래피'라는 선정적인 홍보 문구가 크게 붙으면서 성인 관객을 위한 에로티시즘 영화로만 부각되었다. 당시 흥행 가도를 달리던 '원초적 본능'과 경쟁 구도까지 벌이면서 어떤 영화가 더 많이 '보여주는지'에만 홍보가 집중되는 듯했다. 특히 실제 17세였던 소녀 배우 '제인 마치'의 전라 노출신이 굉장히 강조되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이기에 영화를 볼 수도 없었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홍보 문구대로 '포스트 포르노그래피'를 표방한 정통 성인영화에 불과한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 이미지가 바뀐 것은 대학교 때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된 이후다. 더구나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동명 소설 '연인'은 여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70세의 고령에 이르러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 자전적 소설이다.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면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재현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원작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필치를 거의 훼손시키지 않고 영상에 옮기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는 명작이었다. 개봉 당시의 선정적 홍보 문구들이 아쉬울 정도로 '성인물'의 틀에만 갇히기엔 너무도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이다. 

원작 소설 또한 매우 훌륭했고, 단숨에 읽힐 만큼 흡인력도 강했다.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억압적이고 뒤틀린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열다섯 소녀의 성장담이 때론 눈물겹게, 때론 눈부시게 펼쳐졌다. 

소녀는 어둡고 답답했던 유년 시절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한편으론 그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면 시련의 기억들도 종종 추억으로 소환되곤 한다. 굽어보면 몇몇 아픈 생채기들로 뚜렷이 기억되는 것이 인생이다. 가난이 싫고, 가난에서 비롯된 비루한 삶도, 오빠의 폭력도 싫었지만 그 시절이 바로 소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가장 눈부신 시절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소유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했고, 비루했지만 그 시절 소녀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고, 아름다웠다. 시절이 가난하고 비루했기에 소녀의 육체가 더욱 빛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로 할 수 있는 사랑을 소녀는 갈망할 수 있었고, 체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연인을 만났고, 그를 사랑할 수 있었고, 사랑을 겪으면서 소녀는 더 성숙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노인이 되어 버린 소녀에게 그 시절은 더욱 그립고 소중한 추억이 되고 만다.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잘라버리고 싶지 않은, 잘라버렸다가는 어쩌면 인생의 거의 전부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아프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절.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소설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창작의 자양분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훌륭한 작가가 되었고, 소설 속 소녀의 꿈을 이룬다. 뒤라스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상과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다. 

감명하며 읽었던 신경숙의 '외딴 방'이 '연인'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작품을 모두 읽었다면 '연인'의 문체와 분위기가 '외딴 방'을 거의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긴 소설을 쓰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욕구가 들 것이다. '연인'처럼 잘 쓰인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모방하고, 필사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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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떠나면
아스카이 치사 지음, 양경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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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떠나면...

             이제 세상과 손을 잡아야지

 

 

 

꽃가루가 날리는 어느 봄날, 유키와 소노 남매는 유채꽃이 피어 있는 공원 옆 공터에서 조그마한 강아지를 주워온다. 아이들은 강아지에게 봄을 뜻하는 '하루'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더 좋은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러나 하루는 끝까지 하루로 불리게 된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도 커간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유키와 소노는 각각 떨어져서 살게된다. 고등학생이 된 동생 유키는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아들과 함께 살고,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에 취직을 한 누나 소노는 독립하여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하루는... 하루는 유키의 방에서 살아간다. 아니, 조금씩 죽어간다. 하루는 이제 늙고 병든 개가 되어 버렸다. 유키가 성심껏 돌봐주지 않으면 물을 마시는 것 조차 힘들다. 특별히 어디가 아프다기 보다, 죽음이 임박했기에, 지상에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써버렸기에, 하루의 하루하루는 늘 삶의 마지막 순간 같다.

다시 봄날, 유키와 소노 남매에게 제각각 시련이 닥친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유키는 어느날 고열로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되고, 그 바람에 하루는 유키의 방을 떠나 소노의 아파트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나 소노에게도 문제가 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소노를 비난하고 있다. 비난의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소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에 분노하는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 남매는 말하자면 제각각의 방식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키는 애늙은이처럼 매사를 체념한 듯 양보하고 물러서는 소심한 태도로, 소노는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며 자신의 방식과 다른 이들을 외면하고 냉대하는 태도로... 그들은 세상에 온전히 섞여들지 못하고,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봄날, 각자에게 필연처럼 닥친 사건들을 계기로 그들 남매는 조금씩 스스로를 가둬놓은 틀 안에서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병문안을 온 친구와 배다른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 유키는 그들의 진심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에게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소노는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차단해 왔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이들 남매는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나름의 이유와 가치관을 변명처럼 가슴에 품고서 세상과 등을 돌린 채 살아가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하루는 이들 남매 곁을 떠나게 된다. 14년간 남매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성장해온 하루는 그 봄날,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기라도 한 듯 눈을 감고 만다.

하루가 떠나면 남매는 이제 더 이상 돌봐줘야 할 대상이 없다. 그러나 기실 그들이 돌봐줘야 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진실한 사랑을 줘야 할 대상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루는 떠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들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루를 떠나 보내며, 남매는 정직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진심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14년간 키워 온 늙은 개의 죽음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소통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라지만, 기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하루라는 개 캐릭터에 있다.

하루는 죽음과 한 뼘 정도밖에 거리를 두지 않은 채 방 한 구석의 눈에 익은 배경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개다. 개라기 보다도 털을 뒤집어 쓴 생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일반적인 개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늙은 개다. 하루는 물을 먹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누군가가 도와 줘야만 한다. 주인이 쓰다듬어 줘도 반응을 해 줄 힘이 없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한 자리에 누워만 있다. 소설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된 이야기는 하루가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키와 소노 남매가 세상과 맞부딛히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몸부림치는 남매의 뜨거운 삶의 한 쪽 가장자리에 하루는 그저 조용히 숨쉬고 있을 뿐이다. 잊혀진 낡은 사진처럼, 그늘 속에서 피어나는 유채꽃처럼. 혹은 가만히 자식들을 지켜보는 병든 노모처럼.

하루는 이들 남매에게 유일한 친구이며, 더없이 사랑스런 가족이며, 어떤 면에서는 부모나 스승과도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14년 동안 남매의 곁을 지키며 예사롭지 않은 성장통을 겪는 그들을 끊임없이 위로하며 감싸고,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세상 전부가 자신을 비난하고, 세상 전부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것 같은 실의와 절망에 빠졌을 때도, 늘 하루는 그들의 편에 있었다. 남매는 하루가 있어서 든든했던 것이다.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솟구치고, 잡다한 절망과 괴로움들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 남매는 하루와 함께 한 14년의 세월동안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간다. 하루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또한 그런 사랑을 하루에게 주면서,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가치를 체득해 나간 것이다. 그것은 14년 동안의 생을 마치고 떠나는 하루가 그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래서, 남매는 하루가 떠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와 주고 받았던 그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적인 애정을 잊지 않는다면, 거칠고 팍팍한 세상과의 소통과 교류도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보내며, 남매는 세상을 받아 들이게 된 것이다.

 

하루가 나오는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남고, 또 소노라는 캐릭터가 대변하는 (일부겠지만)일본 젊은 여성들의 애정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간혹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개가 등장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 모든 단점들은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았다. 개를 소재로 하는 소설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또한 소설 전반에 미스터리 요소가 깔려 있어 독자들의 시선을 묶어두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작가의 젊은 감각과 영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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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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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그저 그랬는데 지브리 애니에서 그대로 가져온 저 제목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제목을 창조하는 능력이 부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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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이서윤.홍주연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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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의 아류로밖에 보이지 않는 책. 그야말로 껍데기밖에 없는 책을 대단한 책인양 홍보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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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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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이상향을 꿈꾼다. 인간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인간들의 체제 속에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동하고 그 대가를 충실히 보상받을 수 있는 그들만의 천국을 꿈꾼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유롭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착취당하고, 사나운 억압과 날선 감시 속에서 고통받으며 죽음을 기다리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돼지를 주축으로 반인간 사상으로 뭉친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내고 마침내 농장의 주인이 되고 만다.

동물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제와 그들의 습성을 모조리 타파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만든다. 그들만의 이상 국가를 실현시켜 나간다.

인간이 사라진 농장은 온전히 동물들만의 것이 된다. 동물들은 자유롭게 농장을 활보하고,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즐거운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를 달게 즐긴다. 그토록 그려왔던 자유 이상주의가 실현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반란을 주도했던 돼지들 사이에서 이상한 대립이 발생하고, 동물농장의 모습은 조금씩 일그러지고 균열을 일으킨다. 사라진 줄 알았던 억압과 폭력이 어느 틈엔가 그들 중심에 피냄새를 풍기며 우뚝 서 있다. 동물들은 돼지들이 새롭게 정한 법과 체제에 길들여지며 소수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동물농장은 그들이 꿈꿔왔던 이상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간다. 

 

동물농장은 우화소설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작가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시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보통은 그렇다. 소설가로서의 신념은 대중의 사상과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은 곧 개인과 집단의 사상적 충돌인 것이다. 어느 작가도 자신의 신념과 대중의 지지가 완전히 부합되는 소설을 쓰지는 못하거나, 행여 그런 소설이 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천운을 타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딜레마에 빠지고, 자기 연민, 혹은 혐오에 빠지게 된다.

조지 오웰도 이 작품을 쓰면서 그런 고민에 수없이 빠졌을 것이다. 그의 작가적(혹은 개인적) 사상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하나로 명확히 요약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상을 어떻게 무리없이(독자들에게 외면당히지 않게끔) 소설화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작업을, 오웰은 해낸다. 우화라는 형식을 빌려서...

이 소설이 우화적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되지 못했을 뿐더러, 출간 조차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중에 탈고된 이 작품은 그러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일 년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어느 편집장이 선뜻 반기겠는가.

그러니 이 작품의 우화적 성격은 더욱 큰 장점으로 작용이 되는 것이다. 우화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시켰기에 마침내 종전 이후 출판사를 구할 수 있었고, 우화적인 이야기였기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한다. 출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며 1천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니, 원고지 6~700매에 불과한 이 작은 경장편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토록 높고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도 소설이 지닌 '재미'에 있을 것이다. 출간 당시의 상황이야 그렇다쳐도, 지금은 이미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시대가 끝난 지 오래다. 현재의 독자들은 오웰이 가졌던 작가적 사상에는 어쩌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소설이 가진 '재미' 때문일 것이다. 정말 재미있다. 책장을 열면 빠져들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재밌다. 이 소설이 갖는 재미의 원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우화적 성격에서 발생한 것이다.

돼지가 동물들을 지배하고, 말이 복종하고 열심히 노동을 하고, 개떼들이 돼지를 호위하고, 양떼들이 돼지를 찬양하고,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나와 한바탕 촌극을 벌이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화의 껍질을 걷는 순간 그것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로 돌변한다. 그 공포 속에 이 소설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시무시한 공포를 우스꽝스럽고 흥미진진한 재미로 멋지게 감쌌다는 것! 어느 작가도 쉽사리 이룰 수 없는 이 대단한 작업을 오웰은 멋지게 해 낸 것이다. 오웰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탁월하게 빛나는 역작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만의, 혹은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꿈꾼다. 인류가 지속되는 한, 모든 인류는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 책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읽히고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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