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떠나면
아스카이 치사 지음, 양경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하루가 떠나면...

             이제 세상과 손을 잡아야지

 

 

 

꽃가루가 날리는 어느 봄날, 유키와 소노 남매는 유채꽃이 피어 있는 공원 옆 공터에서 조그마한 강아지를 주워온다. 아이들은 강아지에게 봄을 뜻하는 '하루'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더 좋은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러나 하루는 끝까지 하루로 불리게 된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도 커간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유키와 소노는 각각 떨어져서 살게된다. 고등학생이 된 동생 유키는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아들과 함께 살고,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에 취직을 한 누나 소노는 독립하여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하루는... 하루는 유키의 방에서 살아간다. 아니, 조금씩 죽어간다. 하루는 이제 늙고 병든 개가 되어 버렸다. 유키가 성심껏 돌봐주지 않으면 물을 마시는 것 조차 힘들다. 특별히 어디가 아프다기 보다, 죽음이 임박했기에, 지상에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써버렸기에, 하루의 하루하루는 늘 삶의 마지막 순간 같다.

다시 봄날, 유키와 소노 남매에게 제각각 시련이 닥친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유키는 어느날 고열로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되고, 그 바람에 하루는 유키의 방을 떠나 소노의 아파트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나 소노에게도 문제가 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소노를 비난하고 있다. 비난의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소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에 분노하는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 남매는 말하자면 제각각의 방식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키는 애늙은이처럼 매사를 체념한 듯 양보하고 물러서는 소심한 태도로, 소노는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며 자신의 방식과 다른 이들을 외면하고 냉대하는 태도로... 그들은 세상에 온전히 섞여들지 못하고,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봄날, 각자에게 필연처럼 닥친 사건들을 계기로 그들 남매는 조금씩 스스로를 가둬놓은 틀 안에서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병문안을 온 친구와 배다른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 유키는 그들의 진심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에게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소노는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차단해 왔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이들 남매는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나름의 이유와 가치관을 변명처럼 가슴에 품고서 세상과 등을 돌린 채 살아가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하루는 이들 남매 곁을 떠나게 된다. 14년간 남매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성장해온 하루는 그 봄날,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기라도 한 듯 눈을 감고 만다.

하루가 떠나면 남매는 이제 더 이상 돌봐줘야 할 대상이 없다. 그러나 기실 그들이 돌봐줘야 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진실한 사랑을 줘야 할 대상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루는 떠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들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세상과 더불어 소통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루를 떠나 보내며, 남매는 정직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진심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14년간 키워 온 늙은 개의 죽음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소통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라지만, 기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하루라는 개 캐릭터에 있다.

하루는 죽음과 한 뼘 정도밖에 거리를 두지 않은 채 방 한 구석의 눈에 익은 배경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개다. 개라기 보다도 털을 뒤집어 쓴 생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일반적인 개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늙은 개다. 하루는 물을 먹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누군가가 도와 줘야만 한다. 주인이 쓰다듬어 줘도 반응을 해 줄 힘이 없다.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한 자리에 누워만 있다. 소설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된 이야기는 하루가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키와 소노 남매가 세상과 맞부딛히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몸부림치는 남매의 뜨거운 삶의 한 쪽 가장자리에 하루는 그저 조용히 숨쉬고 있을 뿐이다. 잊혀진 낡은 사진처럼, 그늘 속에서 피어나는 유채꽃처럼. 혹은 가만히 자식들을 지켜보는 병든 노모처럼.

하루는 이들 남매에게 유일한 친구이며, 더없이 사랑스런 가족이며, 어떤 면에서는 부모나 스승과도 같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14년 동안 남매의 곁을 지키며 예사롭지 않은 성장통을 겪는 그들을 끊임없이 위로하며 감싸고,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세상 전부가 자신을 비난하고, 세상 전부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것 같은 실의와 절망에 빠졌을 때도, 늘 하루는 그들의 편에 있었다. 남매는 하루가 있어서 든든했던 것이다. 하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솟구치고, 잡다한 절망과 괴로움들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적인 사랑. 남매는 하루와 함께 한 14년의 세월동안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간다. 하루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또한 그런 사랑을 하루에게 주면서,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가치를 체득해 나간 것이다. 그것은 14년 동안의 생을 마치고 떠나는 하루가 그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래서, 남매는 하루가 떠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루와 주고 받았던 그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적인 애정을 잊지 않는다면, 거칠고 팍팍한 세상과의 소통과 교류도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보내며, 남매는 세상을 받아 들이게 된 것이다.

 

하루가 나오는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남고, 또 소노라는 캐릭터가 대변하는 (일부겠지만)일본 젊은 여성들의 애정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간혹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개가 등장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 모든 단점들은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았다. 개를 소재로 하는 소설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또한 소설 전반에 미스터리 요소가 깔려 있어 독자들의 시선을 묶어두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작가의 젊은 감각과 영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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