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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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완벽'을 향해 평생을 전쟁같은 삶을 살고 있다. 도대체 완벽이 무엇인가. 완벽의 정의는 무엇인가.

결점없는 순수한 삶? 부와 명예?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추앙?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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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았던 적은 없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삶에도 불안과 우울은 있기 마련이고 높이 올라갔다고 믿었던 순간을 유지하기 위해 긴장해야만 했다.

그게 '완벽'이라면 나는 그런 삶보다 조금은 느긋하면서 소박한 삶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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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삶은 완벽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는 것을 행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던 평범한, 아니 특별한 삶이었다.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 몽테뉴는 보드로의 시장이었으나 병이 창궐하던 도시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도시밖에서 일을 처리했다.

직무유기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했다. 그게 과연 비난받을 일이었을까.

병을 피해 살아나야 할 일을 해낼 수 있다. 죽음을 불사할 만큼의 명분이란 적을 무찌르는 전장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잘 살아남아 지금의 '에세이'의 시초가 될 수상록을 쓴 것만 봐도 증명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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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해와 배려보다는 질투와 오만이 더 많은 존재이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상처주고 난도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더 한 일도 서슴치 않을 존재.

문제는 자신이 그런 생각이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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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남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알게 된다면 개선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듯 이 책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진단해보기를 추천하다.

혹시 더 완벽해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안쓰러운 누군가가 보이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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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추어서 내가 달려온 시간과 마주해보기를. 멈추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잠시 접어보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잠시 잊어보자. 그래야만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진정한 휴식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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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 중입니다 - 조금 늦어도 괜찮다, 나를 잃지 않는다면
김남혁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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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내 수명을 어찌 알겠는가-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참 열심히,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가난한 부모님을 대신해서 장녀인 내가 4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에서도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까지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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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를 낳고 1년 정도 휴직을 한게 이후 직장에서 은퇴를 할 때까지 유일한 휴식이었던 것 같다.

마흔 이후에는 내 사업을 하면서 더 정신없이 전국으로 영업을 다녔다. 그 때부터 재산도 조금씩 모아졌고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서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를 비롯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쉴 틈없이 달려온 어른들이 많았다.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겨우 발걸음을 늦출 수 있었던 것은 은퇴를 할 나이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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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제한속도가 없이 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시속 120Km가 거의 최고라고 하는데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들은 살짝 아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제한속도라는 것이 없다.

학교앞에서는 30Km라거나 어느 구간에서는 60Km라는 표시가 없는게 인생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속도를 찾아야 하는 것도 숙제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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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췄다고 해서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쉬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는 저자의 말이 왜 이리 시큰해지는 것일까.

잘 살아왔다고, 이제는 좀 쉬어도 된다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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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늘 쫓기듯이 살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다.

내 삶의 속도를 모른 채 정신없이 오늘도 뛰어 다니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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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에서 총을 들고 학교 교실에 뛰어들려는 학생을 보고 조용히 다가가 안아주었던 선생 덕분에 학생이 총을 내려놓고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냥 길에서 아는 사람이 아닌데 그냥 안아주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도 보았다.

'허그'의 힘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큰 위안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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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신없이 뛰어온 우리 모두를 안아주는 책이다.

조금 늦어도 된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 살아왔다고 안아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 아, 나 잘살아왔구나. 이젠 좀 쉬어도 좋겠구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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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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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에서 누군가 물었었다. '왜 글을 쓰냐고'. 작가가 글을 쓰는건 당연한데. 재능이 있으니까 쓰는거겠지.

아니 그걸 넘어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뭔가가 있는게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다.

'무병을 앓는 것처럼, 마치 옆구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글이 나온다'라고 작가는 답했다. 쓰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신을 받듯이 그렇게 글을 쓴다는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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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건, 누가 봐도 잘 쓴다 싶은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나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를 다니던 시절 글쓰기 시간이 있었고 백일장도 있었다. 소소하게 장려상 정도를 받은 정도로는 글쓰기로 밥을 벌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찌감치 '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꼭 밥을 벌기 위한 글이 아니어도, 글은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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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리지 않는 시절이라고 하니 한 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왕성했던 작가들은 지금 뭐하고 살고 있으려나.

글은 쓰는데 출판은 못하는 건가. 내가 아는 작가 몇은 사실 밥벌이를 못한지 꽤 되었다.

과거에 써둔 글로 인세를 받기도 하겠지만 생활은 안되는. 하지만 아마도 글은 쓰고 있을 것이다. 너는 평생 글을 쓰도록 하여라..하는 천형을 지닌 죄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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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 쓰면 된다. 잘쓰는지 못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 쓰다보면 잘 써지는 날도 오지 않겠는가.

저자는 바로 이런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다.

숙제를 위해 안써지는 글이라도 짜내서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존을 위한 도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도피가 약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도 한다. 도피해서 숨는 곳이 바로 자신의 집이 되기도 한다면서. 

글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생을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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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자신이 없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필사해보라고 권한다.

좋은 생각이다. 나도 눈으로 훑은 문장보다 직접 종이에 쓴 문장들이 기억에 훨씬 오래 남았다.

자연스럽게 자기 글안으로 스며들어 좋은 문장이 탄생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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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고 싶은 문장들이 어디 한 둘이었을까. 세상에 어떻게 이런 표현을 했을까.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하면서 내 무능에 대해 탄식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런 글들을 읽고 필사하고 그러다보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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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고 쌓였던 뭔가를 덜어내는 일이다.

고통일 수도 있고 지워지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고 건네기 싶지 않은 사랑일 수도 있다.

꺼내야만 살아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어두웠던 마음이 걷히고 아기살처럼 연약했던 결들이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진정한 어른이 되어갈 수도 있다. 숫자의 크기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미 걸어온 길위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 발자욱을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그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쓰다 보면 나도 이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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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ㅣ 시대철학 1
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 비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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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는 것은, 세상이 궁금해진다는 것은 호기심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이탈리아의 배우와 성악가 사이에서 태어나 파도바 대학에 진학해서 라틴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와 신학, 법학, 춤과 펜싱, 승마까지 익힌 카사노바는 엘리트를 능가할 정도의 재주를 가진 인물이다.

이 능력을 세상의 발전을 위해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천성적으로 사기꾼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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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로 살아 갈 수도 있었지만 기질 상 어울리지 않았다. 바람끼가 다분했던 카사노바는 이후 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리게 되는데 화가인 그의 동생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엄청난 미남은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슬쩍 뭔가를 흘리면서 다 주지 않는 듯한 처세가 상대를 끌어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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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저 도시를 옮겨다니면서 여러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했고 실제 그의 거짓말은 통했다.

그러다가 자신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해독되기 전에, 말하자면 진짜 모습을 들키지 전에 그 곳을 떠난다. 매력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그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걸 다 쏟아내지 않고 어딘가로 다시 떠나갈 것같은 초조함이 그의 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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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탈출하지 못할 것 같은 납을 씌운 감옥에서도 그는 끈기를 가지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치밀한 두뇌와 인내심이 있는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탈출일화를 가는 곳마다 각색을 해서 떠든다. 아주 조금씩만 꺼내놓으면 되었다.

그 이야기에 살이 붙고 신화가 더해져 그의 존재는 신격화되기에 이른다. 그것조차 전술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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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배울 점은 거짓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자기 손으로 다시 살려내는 법이었다. 모든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잊혀진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도록 잘 살려낸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깊어지고 신화가 된다.

평생 갇힐 수도 있었던 감옥의 이야기를 카사노바는 그렇게 살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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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에다 사기꾼이란 오명을 쓰고도 당당히 살아갔던 카사노바는 악인이었을까.

아니면 재인이었을까. 어떤 인물이었던 간에 그가 유머가 가득한 자유인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짓과 방종, 불륜이 죄악이 되었던 엄중한 종교가 삶의 모든 것이었던 시대에 그는 부조리한 계급사회와 타락한 종교를 향해 조롱을 던지는 삐에로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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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꾸며진 관습보다 자신의 자유를 더 사랑했던 카사노바의 삶에서 뭔가 통쾌함을 느꼈다면 나도 바람끼가 있는 사기꾼인 것일까.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놀줄 알았던 카사노바의 처세에서 분명 배울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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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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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인체중에 가장 중요한 기관은 무엇일까? 심장도, 폐도, 위장도 중요하다.

하지만 뇌가 없다면 산다고 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실제 뇌사상태에도 숨은 끊어지지 않고 삶을 연명할 수도 있다. 진정한 삶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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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자고 있었는데 깨어나서 거리를 걸어다닌다거나 평소처럼 대화를 한다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면? 하지만 그 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믿어지는가.

이런 일들은 실제하고 심지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도대체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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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을 당했던 여자는 범인을 단죄하기 위해 그 순간에도 똑똑히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다. 후일 경찰이 여러사람을 세워놓고 범인을 지목해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정확히 그 얼굴을 떠올렸고 당연히 그 얼굴을 지목한다. 몇 번의 시도에도 결과는 같았다.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는 11년을 감옥에 갇혀있다가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풀려난다.

하지만 여자는 진짜 범인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도대체 그녀의 기억은 어디에서 오류가 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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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된 기억을 저장하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잊혀지기도 한다. 

뇌는 마치 나와는 따로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선택하고 오류를 범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그런 경우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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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다고 믿는다. 내 의지라고.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절망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생각보다 약했다.

도대체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왜 어울리는지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읽어야 한다. 위험한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나마 완벽을 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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