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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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랄'이란 단어의 정의를 제대로 검색해보니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이라고 되어있다. 굳이 검색을 하지 않아도 '지랄'이라는 뜻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욕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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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하네'라고 누가 나한테 말하면 욕을 먹은 것 같이 치욕스러울 것 같은 언어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지랄맞을 용기'라니...욕을 먹을 각오, 내지는 용기를 뜻하는가.

찬찬히 읽어보니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알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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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편견을 가진 대중을 향해 '지랄'맞았던 인물들의 삶을 보니 평범치가 않다.

사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물들의 삶은 대부분 무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치열하거나 유난했었다. 그냥 수수하게 살았더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살지?', '유난이다', 그러면서 손가락질 받았던 인물들이 오히려 인류에 공헌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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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는 통에 살면서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일갈했던 디오게네스의 용기랄까, 무모함은 알렉산더대왕마저도 그처럼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의 자유스러움과 어떤 것에도 굴복하거나 아부하지 않았던 삶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갑질하는 상사앞에서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들도 가슴속에는 언제든 던지겠다는 사표 한 장쯤 숨어있다.

하지만 과연 그 사표를 던질 수 있을까. 그저 속으로 '돈을 주는 것은 당신이지만 이 일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라는 자부심속에 꾹 눌러담고 만다. 그거라도 해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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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여 인류를 진보시킨 마리퀴리가 두 번이나 노벨상을 탔었나.

그저 고루한 물리학자인줄만 알았는데 죽은 남편의 옛제자와 사랑에 빠졌었다니.

더구나 그는 기혼자였다고 한다. 아 용감한 사랑을 넘어 불륜인 사랑을 선택하면서도 비난하는 사람앞에서 당당했었고 두 번째 노벨상 시상식에 당당히 참석했다고 한다. 멋지다. 지랄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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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것은 거의 언제나 욕을 각오해야한다. 퓨전재즈를 탄생시켰다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일갈이 시원스럽다.

'당신은 대체 무슨 업적을 남겼길래 이 자리에 있느냐'라고 묻는 백인 여자에게-마일스는 흑인이었다-

'나는 음악의 역사를 네다섯 번 바꿨소. 당신은 대체 한 게 뭐길래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요?'

누구든 말문이 막히지 않았을까. 그런 당당함, 그런 지랄맞음이 지금 이 책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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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된 24명의 인물들은 그야말로 당시 세상과 사람의 편견을 깨부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펼친 사람들이다. 모짜르트, 베에토벤, 반 고흐, 스티븐 호킹...

그중에서도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주인공-아서 코난 도일이 의사였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의 소설에 열렬했던 독자들 덕에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홈즈를 죽임으로써 몰입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천재작가의 고독함이 마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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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랄 맞을 용기'가 없다. 그저 무난하게 남은 생을 살고 싶다. 열렬히 타올랐던 불꽃은 이미 사그러지는 시간을 맞고보니 더욱 세상과 맞설 마음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꼭 '지랄 맞은'삶에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뭐라도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름 하나 남기고 가는 일도 보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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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요리사 : 데몬 셰프와의 대결
서지원 지음, 스갱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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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려는 아이와 데몬 셰프와의 요리대결도 흥미진진하고 중간중간 요리에 대한 과학상식퀴즈가 있어 더 유용한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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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요리사 : 데몬 셰프와의 대결
서지원 지음, 스갱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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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요리를 먹는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셰프들이 나와 요리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유명셰프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셰프들의 식당은 몇 년씩 예약이 밀려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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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을 위한 음식을 만들던 대령숙수라는 셰프가 있었다.

주혁이는 바로 그 대령숙수의 후손으로 최근 주혁의 엄마, 아빠가 분식집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맛을 느끼지 못하는 맛맹들이다. 이런 가족이 음식점을 열다니.

맛을 몰라서 오히려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고 느낀다니 오히려 행복한 가족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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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오픈을 하고 첫 손님을 맞았지만 떡볶이를 먹어본 아이들은 너무 짜고 발냄새가 나는 떡볶이를 먹고 투덜거리며 나가버린다. 하지만 주혁이 가족들이 먹어봤을 때에는 맛있다고 느꼈다.

이제 이 달빛분식집은 망할 일만 남은 것 같다.

오픈 다음 날 주혁이는 아빠의 심부름으로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고 조리도구를 찾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갔다가 '조선요리비방'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바로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인 대령숙수의 요리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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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이가 그 책을 들자 연기가 피어오르고 홀연히 할아버지가 나타난다.바로 대령숙수 할아버지였다. 자신의 후손들이 차린 분식집에서 만든 떡볶이에서 발냄새가 난다니 이건 대령숙수집안의 치욕이라고 여긴 할아버지는 주혁이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하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요리수업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점점 주혁이의 요리솜씨가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이승으로 도망친 할아버지를 데리러 온 저승의 감시자 하린이가 등장하면서 할아버지의 요리수업이 끝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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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이가 울면서 할아버지가 더 머물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자 하린이는 지옥에서 도망친 데몬 셰프를 잡아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폭발적인 맛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요리를 한다는 데몬 셰프!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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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이의 떡볶이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자 이상한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그가 데몬 셰프가 빙의된 사람이었다. 자신의 요리실력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라고 믿는 남자는 주혁이네 가게를 망하게 하겠다는데...

과연 주혁이는 달빛 분식과 가족들을 지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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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요리대결은 재미있다. 직접 먹어볼 수는 없지만 열심히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어린 주혁이지만 그의 몸에는 요리의 장인인 대령숙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 주혁이 과연 데몬 셰프와의 요리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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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요리대결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요리의 과학에 대한 퀴즈까지 곁들여 있어 너무 좋았다. 양파를 볶으면 왜 단맛이 나는걸까. 고추가루를 기름에 먼저 볶으면 어떤 맛이 생기지?

궁금했던 요리과학의 정답을 알고나니 요리하는 일이 더 즐거워질 것 같다.

셰프가 꿈인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니 미리 이 책으로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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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미술관 - 〈모나리자〉부터 〈절규〉까지 도난당한 걸작 50점에 얽힌 미스터리 사건 파일
수지 호지 지음, 안진이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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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몇 년전부터 꾸준하게 출간되고 있는 그림에 관한 책을 보면서 제법 회화나, 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회가 된다면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곳도 방문해서 책에서만 보았던 그림들을 만나고 싶다. 그 시간을 살다간 화가의 삶과 흔적들을 직접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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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나쁜 일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유명 작품들을 훔치는 도둑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명작들이 있는 공간은 보안이 잘 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허접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최근에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데도 창문을 통해 미술관에 침입해서 미술품을

훔친 도둑이 화면에 찍히기도 했다. 사람들은 건물보수작업을 하는 작업자라고 생각했단다.

이런 경우는 착각이었다고나 하지. 얼마전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에 입장권까지 사서 들어간 도둑이 전시 진열장을 망치로 깨고 수백억의 가치가 있는 목걸이를 훔쳐 달아났다.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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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역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얀 페르메이르의 <연주회>는 아마추어인 내 눈으로 봐도 능숙한 빛 묘사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세계의 도난 미술품 가운데 가장 값비싼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오리무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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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도둑들은 돈때문에 미술품을 훔친다. 엄청난 액수의 금액을 요구하면서 거래를 해온다.

실제 이런 방법으로 작품을 돌려받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되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을 끌면서 도둑들이 죽기도 하고 작품이 훼손되거나 없앤 경우도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범인인 경우도 있었다. 카톨릭신자이고 봉사자로 신망이 높았던 사람도 있었다.

범인이 밝혀졌어도 작품은 돌아오지 못했기에 안타까운 사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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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 그렇다치고 2톤짜리 조각상을 훔쳐가다니...이거 실화인가.

깊은 밤 크레인까지 동원해서 훔쳐간 <누워 있는 인물>이란 작품은 그 뒤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데 녹여서 고철로 팔아먹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고철값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명작을 녹이다니...안목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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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훔치고 거래까지 했던 루마니아인 6명은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범인의 어머니가 불리한 증거를 없애버리려고 그림을 난롯불에 태웠다고 한다. 세상에 이건 눈물겨운 모정을 넘어서 완전 바보같은 범죄가 아닌가. 정말 기가막힌다. 그렇게 태워진 명작들이여!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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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수년 전 파리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았지만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랬기에 도둑들이 훔치기 더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작품들도 있다. <모나리자>와 뭉크의 <절규>인데 훔친 것도 모자라 '당신들의 형편없는 보안에 감사합니다'라는 쪽지를 남겼다니 이런 치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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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도 남아있는 도난 작품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마저도 없으면 살다간(?) 흔적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누가 뭐라해도 인류의 문화유산인 그림과 작품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인물은 바로 히틀러였다. 그에게 발견되면 살아남기 어려웠네. 지금도 어디엔가 그가 훔친 작품들이

숨겨져있다고 한다. 이미 많이 훼손되었겠지만 세상밖으로 나와 존재감을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이후에도 미술품도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쁜 놈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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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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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에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기원전에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천재가 아닌가 싶다.

그저 재미있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넘어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대에 인간이 선택에 따라 삶이 얼마나 변화되는지를 묻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는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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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역시 감독의 명성이 오디세이아를 부활시키는데 엄청난 동력이 된 셈이다.

실제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는 의견도 있고 과연 이 명작을 어떻게 화면으로 탄생시켰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관객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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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자체도 단순하지는 않다.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이아가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은 고난을 넘어서 지옥을 경험하는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닿아야 할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초라해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라고 표현했다. 멋진 해석아닌가. 목숨을 걸고라도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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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반쯤이나 넘게 살고보니 내가 걸어온 길, 내가 만났던 수많은 선택들이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분명 그건 내 의지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미 예정된 길이었다는 것. 그저 나는 정해진 그 길을 따라온 것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내 의지가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올 때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뒤돌아보니, 이 쯤에 서보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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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온갖 고난을 이기고 도착한 이타카에서 그는 무엇을 봤을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 오디세이아는 사랑하는 아내와 얼굴도 희미한 아들과 백성들이 자신을 환영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폐허에 가까운 성과 왕비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거덜내고 엉망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그는 이타카로 돌아왔을 것이다. 운명과도 같은 선택이었고, 그는 마침내 스스로의 주인임을 증명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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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대한 삶의 여정을 이끌어낸 오디세이아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인류가 어떤 미래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오디세이아의 위대한 여정은 후세에도 찬양받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떤 종족도 그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혹함을 견딘 열매가 더 달다.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다시 내 삶을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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