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이 살았네 ㅣ 작은책마을 63
최도영 지음, 우주 그림 / 웅진주니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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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카페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풀, 꽃, 나무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온통 흙빛만 가득한던 시절, 흙빛 머리칼과 흙빛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은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닮은 여자와 남자를 데려와 왕으로 삼는다.

그들 사이에서는 엄마, 아빠를 닮은 딸 하니와 아들 바니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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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푸른왕 부부를 존경하며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세 번째 아이는 흙빛 눈동자와 흙빛 머리칼을 가진 공주였다. 왕 부부는 산파에게 보석을 잔뜩 주며 산에 갖다 버리라고 명령한다.

산파의 부탁으로 흙빛 공주는 '사니'라는 이름을 받게 되고 결국 산에 버려진다.

버려진 사니 공주의 곁에 절 반의 보석을 두고 산파는 제발 보살펴 달라는 기도를 한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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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의 간절한 기도는 잠자는 흙더미 산을 깨웠고 산은 사니공주를 흙을 먹이고 입히며 키우게 된다.

그렇게 일곱 살이 된 사니공주는 흙더미 산을 먹고 자라 결국 산공주가 된다.

어느 날 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산파가 두고간 보석을 해님에게 던져보라고 한다.

그렇게 던져진 보석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더니 풀과 나무로 자란다.

이제 흙뿐이었던 산은 푸르러졌고 흙색 백성들은 풀과 나무를 보며 행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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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푸른 빛의 부부와 아이들은 산에 버리고 온 사니의 존재가 드러날까봐 늘 두려워한다.

백성들에게 산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을 하거나 독이 있으니 풀들을 다 뽑아버리라는 명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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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람들은 푸른 산을 좋아했고 더 큰 두려움에 쌓인 왕 부부는 결국 산에 불을 지르고 만다.

치마에 불이 붙은 사니공주는 바다에 뛰어들어 위험을 모면했지만 큰 상처를 입는다.

그런 사니공주를 없애기 위해 배를 타고 다가가던 왕부부와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바람으로 먼 바다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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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낳은 공주를 버리는 악독한 부부의 만행을 보면 설화 '바리공주'가 생각난다.

죽은 줄 알았던 막내 바리공주가 결국은 부모를 구한다는 그 설화처럼 착한 사니공주는 풀 한포기 없었던 흙에서 생명을 키우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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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엄청난 산불이 일어나고 산이 까맣게 타는 모습을 보면 가슴마저 타들어가는 것 같다.

자연은 댓가없이 우리를 지켜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지만 탐욕에 가득찬 인간들 때문에 죽어간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사니공주가 키운 숲이 망가져가고 있다.

하늘을 닮고 바다를 닮은 푸르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힘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동화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연의 소중함을 잊은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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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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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인류는 네 발로 걷다가 일어서 걷게되고 불을 이용하면서 점차 발전을 가져온다.

물론 수명은 짧았을 것이고 간단한 도구와 움집정도만으로 살아가는 처지였을 것이다.

신은 다행히도 인간에게 '뇌'라는 훌륭한 기관을 내려주셔서 자연을 이용하여 유익한 도구들을 만들어내고 편리한 물질들을 찾아내는 능력을 더해 지금의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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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해진 소금이나 커피, 후추가 오래전에는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물질이었다니 놀랍다.

석유는 지금의 인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자원이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검은 접착제정도의 물질로만 여겨졌었고 다이아몬드도 그 단단함 때문에 가공하기가 어려워 최고의 보석취급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반지가 결혼 최고의 선물이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인조다이아몬드가 생산되면서 예전의 명성은 누리지 못하는 물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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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에 가장 많이 보이는 가게는 바로 옷가게이다. 물론 비싼 옷도 있지만 싸게 생산되어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아진 요즘에야 과거의 사람들에게 옷도 소중한 자원이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더위탓에 옷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는 열대지방이 아닌 추운지방

사람들에게 몸을 덮혀줄 동물의 가죽은 재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고조선이 모피의 주생산국이었고 수출국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근방에 표범이나 담비같은 동물들이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상처없이 사냥해서 모피를 생산하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역시 우리 민족의 손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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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상징이 되어버린 모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전멸해갔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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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이 단조롭던 시절에 향신료는 혁명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향으로 누린내를 잡거나 상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후추는 대항해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금보다 비쌌다고 하니 그 위세를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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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위에도 커피가 한 잔 놓여있다. 커피는 기호품 이상의 존재가 아니던가.

점심시간이 끝난 도시의 많은 사람들 손에는 커피잔이 들려있다.

기후위기로 커피생산이 적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컥 하기도 한다.

이슬람문화가 커피를 신의 음료로,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음료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마치 목화를 붓뚜껑에 몰래 숨기고 들여온 문익점처럼 커피씨앗을 숨겨 브라질로 콜롬비아로 퍼뜨린 인물덕에 지금의 커피 주생산국이 되었다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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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육을 좋아하는 난 정향을 넣곤 하는데 향긋한 내음이 잡내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원래 인도네시아가 정향의 주산지였다는데 지금은 동아프리카가 정향의 주산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는 현재 정향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되었단다.

얼마전 인도네시아의 담배문화를 소개하는 것을 봤는데 어린아이까지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 이 담배에 정향을 섞어 피우는 것을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

인간의 욕망을 흔들었던 물질들의 역사를 보니 물욕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내는지 또 다시 깨닫는다.

지금도 석유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과 풍요를 가졌왔던 물질들의 역사에 또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다. 과연 우리 인류를 또 미치게 만들 다음 물질은 무엇일까? 기대보다는 두려운 생각이 먼저 달려온다. 

인간의 탐욕은 죽음도 넘어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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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가봤으면 해 - 가끔은 길을 잃어도 좋은, 서울의 여백을 따라 거니는 하루
김보민 지음 / 비아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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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이렇게 좋은 곳들이 많았나 싶다. 마을버스타고 지하철타고 걷고 그러면서 둘러보기에 딱인 곳들이다. 근처 맛집이며 카페까지 꼼꼼한 소개에 더위가 좀 삭으면 미션 클리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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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가봤으면 해 - 가끔은 길을 잃어도 좋은, 서울의 여백을 따라 거니는 하루
김보민 지음 / 비아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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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오십년가까운 시간을 살았는데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바로 집뒤에 보이는 남산타워는 서울의 한 가운데 있고 서울의 먼동네에서도 보이는 편인데 서울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가본 적이 없단다. 늘 가까이 있어 가봤다고 생각했거나 소중하다는 느낌이 덜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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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서촌 한옥마을은 몇 번 가본적이 있고 부암동이나 홍제동쪽도 많이 가본 편이다.

하지만 원서동이라는 동명은 낯설다. 특히 종로구쪽에는 오래된 지명이 많은데 동네 자체가 크지 않고 경계가 모호해서 익선동, 계동, 운니동의 위치가 선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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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광동에서 태어나 한남동, 이태원동을 돌아다니며 살아서 후암동이나 해방촌등을 익숙한 동네이다.

삼각지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적에는 이태원 교차로에 서있던 미국인 장군의 동상을 지나 미군부대앞, 국방부건물앞으로 걸어다녔었다. 친구들의 집들이 해방촌이나 후암동인 경우가 많아서 놀러다니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의 많은 곳들이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는데 -지금 한남동의 낡은 집들이 헐리고 재개발중이다-후암동이나 해방촌들은 내가 어려서 보았던 골목이 그대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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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을 주욱 걸어 올라가면 하이얏트 호텔이 나오고 왼편으로 꺾어 걷다보면 남산도서관이 나온다.

초등학교때이던가 '어린이 회관'이 생겼는데 맨 위 둥근부분이 천천히 돌았었고 식물원과 분수가 있던 그 곳으로 소풍을 가서 엄마와 찍은 사진이 있다. 늘 남산은 소풍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갈 곳이 없었나.

이북에서 내려오신 부모님이 자리잡은 보광동 한남동에도 해방촌 만큼이나 피난민들이 많이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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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도 내겐 추억이 많은 곳이다. 성공회 건물 옆 세실극장에서 한 때 연극배우를 꿈꾸며 드나들기도 했고 첫사랑과 추운 겨울길을 걸었던 광화문, 정동길...결국 그 남자는 정동제일교회에서 나보다 훨씬 예쁘고 멋진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었다. 나도 참...그 결혼식을 교회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니...앙큼하기도 했다. 잘 살고 있나? 아니 잘 늙어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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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옆길로 해서 수성동 계곡에도 가보고 싶고 집에서 가까운 뚝섬한강공원에도 가고 싶은데 일단 너무 더워 밤에나 나서볼까나.

서울의 골목이나 도성길, 둘레길들을 이렇게 세심하게 알려주니 일단 생수통 챙겨 서울나들이를 나서야 할 것 같다. 조금 시원해지면. 읽는 내내 소개해준 맛집을 검색하느라 책장 넘기기가 자주 중단이 되었다. 

오렌지김밥집에서 김밥좀 챙기고 내려오는 길에는 안주가 맛있다는 맛집에서 막걸리 한 잔 해야지. 이제 무릎이 시원치 않으니 유럽배낭여행은 틀렸고 가까운 서울부터 찬찬히 둘러봐야겠다. 이 책, 곁에 두고 뚜벅이 여행계획서를 만들어볼 예정이다. 저자의 걸음으로 탄생한 이 책이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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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
메리 셸리.퍼시 비시 셸리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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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210여년 전 쓰여진 글이 현대에 도착하는 일쯤이야 별일도 아니겠지만 왜 이렇게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것일까. 저자가 쓴 풍경이 너무 리얼해서 그 시간속에 들어가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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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기괴한 괴물에 대한 소설로 발간 당시에는 꽤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작가인 메리 셀리는 열 여덟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상상력이 아주 특출했던 소녀였던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풍경이 담긴 에세이가 바로 이 작품이다.

영국은 날씨가 형편없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바다를 건너 프랑스에만 가도 날씨는 달라진다고 한다.

날씨가 다르고 풍경이 다르면 사람들의 성격도 달라지는지 메리가 본 독일, 스위스의 사람들의 성격도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사실 국경이 맞붙어 거리감도 별로 없는 나라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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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여행이 자유롭고 돈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시대이지만 200여년 전 국경을 넘는 여행, 그것도 마차를 타고, 심지어 걷는 여행이라니..이 에세이의 주인공들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길이 좋기를 했을까. 묵었던 숙소들의 상태를 보면 벼룩이 들끓는 농가의 창고만도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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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이 여정의 주인공들은 남자가 아니다. 편한 복장도 아니었을 것이고 화장실 문제는 어떠했을 것이고 빨래는 어떻게 했을지 왜 난 이런 것들이 궁금한걸까.

지금의 나라도 이런 형편없는 환경의 뚜벅이 여행이라면 선뜻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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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이런 과감한 성격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명작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고 어린 메리를 데리고 여행을 나섰던 선진적 사고를 가진 부모에게도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메리의 행운이었다. 메리가 닿았던 곳을 가본적은 없지만 그녀가 보았던 산이며 숲의 모습은 여전하지 않을까. 메리의 말처럼 자신이 보았던 나무들은 늙었거나 사라졌겠지만 나무의

후손들은 번성해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희생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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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늘 일기를 썼던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탁월한 글솜씨를 지닌 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의 풍경이 현재에도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여정이 후일 '프랑켄슈타인'에 담겼다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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