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먹고 가시게 - 한국무속 앤솔러지
김아직 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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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당은 고대부터 있었던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토속신앙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는 미신으로 치부되기는 하지만 분명 인간세상이 아닌 저너머의 존재와 소통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시대에서는 왕의 권위와 맞먹는 지위를 가졌다지만 현대에 오면서 낮은 계급이 되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더 홀대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인간세상을 흐뜨리는 존재들과 맞서기 위해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고 전통문화로서 문화재로 지정받는 무당도 생겼다. 적어도 여기 이 한국무속에 대한 엔솔로지 소설을 쓴 작가들은 그들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민속학과 대학원 연구 조교 2년 차인 '나'는 전국의 수귀 설화를 연구중이다.

귀신중에서도 물에 빠져죽은 귀신의 힘이 강하다는데 비방천 혹은 그늘내라고 불리는 샛강으로 상류에서 떠밀려온 시신들이 여기 하구에 쌓여서 악취가 진동한다.

하필 가져온 배낭이며 휴대폰까지 잃어버리고 사진을 찍다가 마을에 도당굿이 열리는 것을 보고 사진도 찍고 배고픔이라도 해결해볼까 달려간다.

굿 뒷전에 외지에서 온 손님을 세워두라는 만신의 말이 있었다며 밥을 얻어먹으러온 귀신들의 안내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밥값이라도 하려면 어쩔 수 가 없다.

차려진 밥상에 나타난 '현주시 상수도'라는작업조끼를 입은 아주머니 귀신이 나타나 차려진 떡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나와는 무슨상관이랴 싶었지만 악귀가 나타나 산 사람을 재물로 가져가겠다는 말에 아주머니 귀신의 죽음을 파헤치게 된다.

동네 수도 검침을 하다 죽임을 당하고 물에 빠져 죽은 아주머니 귀신.

과연 그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 엔솔로지는 아주머니의 죽음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제자를 보호하려다 자살을 하게 된 교사 박지안. 결국 그녀는 권력이 있는 학부모와 학교재단설립자의 아들인 학과장의 압력으로 자살하고 만다.

그런 외동딸을 잃은 아버지도 자살을 선택하고 그렇게 아들과 손녀를 잃은 무당 박금주는 자신의 혼을 다른 사람에 몸에 얹는 '소환굿'을 펼치다가 사망한다. 이 굿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굿이다.

무당의 혼은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으로 끌고 가는데...

관계된 사람들 누구의 몸에 빙의되었는지를 찾아나선 학예사와 무속잡지 기자는 연쇄살인의 끝에 다다르고 마지막으로 빙의된 박금주의 혼은 최후의 복수잔치를 벌인다.


물 한잔 얻어 먹으러 들어갔던 집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수도검침원,

학교폭력에 맞서다가 자살을 해야 했던 박지안과 그의 아버지.

세상에는 한을 가진 귀신이 너무 많고 그래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귀신도 많다.

이런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과 의식이 정당하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나는 그 의식에 표를 던지고 싶다.

'대운'을 위해 어쩌면 남의 운을 빼앗아 우주의 질서를 흐뜨릴 수도 있다는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설계자'가 보낸 어떤 존재는 욕망덩어리인 인간을 처리한다. 질서를 위해, 정의를 위해.

신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무당들이 굿을 통해 펼치는 엔솔로지한 장면을 나같이 그 세상을 믿는 사람은 재미있게, 혹은 오싹하게 즐길 수 있다.

그저 미신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왜 민간에서 오랫동안 믿으면서 전해졌는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굿판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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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지하게 여기진 말아요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 1
헤르만 헤세 지음, 배명자 옮김 / FIKA(피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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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랄까. 조금 무뚝뚝하고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

특히 독일의 영원한 거장 헤르멘 헤세는 문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과 색채가 있는 완고한 작가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데미안'이나 '싯다르타'같이 삶의 의미와 철학에 관한 소설에서 그의 이런 특색이 더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으로 만난 헤르만은 익살맞은 생전의 사진이나 캐리커처처럼 위트와 유머, 촌철살인의 대가였다.


헤르만은 1,2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았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킨 국가 태생이었다.

그가 지켜본 전쟁의 모습이 결코 긍정적일 수가 없었을텐데 인류는 왜 늘 전쟁을 선택하는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들이 치루었던 댓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작가 자신의 소리였을 것이다.

'전쟁을 위해 법을 만들고 희생하는 것, 이런 희생이 군인들의 굶주림을 막을 수 있지 않나'는 답에 '당신은 왜 그토록 전쟁을 높이 평가합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과연 있을까요? 전쟁이 정말로 선일까요?'

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전쟁중인 인류의 현실이 겹쳐져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화덕과의 대화'라니...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프랭클린'의 이름을 붙인 빵을 굽는 화덕은 비겁한 민족은 용기를 찬양하는 민요를 부르고 사랑이 없는 민족은 사랑을 찬양하는 연극을 공연한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입이 크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데 화력은 약하고 좋은 이름이 있는 정치인을 조롱하는 듯하다. 더구나 이탈리아 화덕이니까 범도 구울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은 같은 전범국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는 듯, 조롱한다.


시도 아주 특별했다. '균형'이라는 시에서는 지구가 각지지 않고 둥글어서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어 다행이고 인간은 길쭉해서 굴러다니지 않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표현에서는 웃음마저 나온다. 맞는 소리네.

하지만 '시인이 부르는 죽음의 찬가'에서는 자신의 사후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고통에 대해 무의 상태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피안으로 사라지고 싶은 소망을 전한다.

과연 그는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왔으려나. 소망처럼 사라졌으려나.


자신을 주제로한 강연회의 무료함을 그린 작품도 재미있었지만 독자와의 만남이나 초대에 위트로 답하는 장면에서 그가 무겁고 깊은 주제만 다루는 작가가 아닌 코믹한 모습의 천진함도 갖춘 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독자는 많지 않다. 대표작 몇 편만으로 작가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겉핥기식의 판단이 얼마나 섣부를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헤르만은 내가 알고 있었던, 그 이상의 작가이고 인간이었다.

소멸되지 않고 다시 소환되어 그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는 영원한 작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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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와 시 클래식 리이매진드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데이비드 플렁커트 그림,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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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추리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작가가 두 명 있다. '셜록 홈즈'의 아서 코난 도일과 '검은고양이'의 에드거 앨런 포이다.

어린시절 소년잡지에 등장한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을 충격적인 장면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의 대표작들을 담은 이 책을 만나니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일단 그의 작품의 아찔한 색감을 표현한 표지가 오싹하지 않은가. 작가의 사진에 덧입힌 해골이라니...기획이 기가막히다.


'검은 고양이'는 에드거의 대표작답게 오컬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실제 고양이를 죽이고 아내를 살해한 주인공 남자의 모습에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알콜중독으로 유명했던 에드거의 실생활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닌지..

뒷편에 이어진 단편에서도 결핵으로 죽어간 여자주인공이 등장한다. 당시에 결핵은 거의 치료 불가능의 병이었다니 죽음은 예견되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에도 에드거는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나이든 부인과 그 딸의 끔찍한 시신이 등장하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의 범인의 정체는 정말 반전이 아닌가. 아마 누구도 범인을 상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내는 작가라니.

그가 그린 작품들이 어둡고 공포스러운 것은 그의 성격과도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시인으로 더 유명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의 '홀로'라는 시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 같지 않았다'라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 듯하다.

너무 섬세해서, 너무 사회적이지 않아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술에 의존했던 것은 아닐까. 나도 이런 면이 있어 이해가 되었다.


죽어가는 사람들도 최면에 걸릴까? 도대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에드거답다.

심령이나 최면에 관심이 많았던 에드거라면 충분히 이런 소설이 가능하리라 생각되었다.

소설에서 이런 궁금증을 가진 최면술사는 죽음을 앞둔 지인에게 실험을 제안한다.

거의 임종에 가까워져 최면에 걸린 남자를 지켜보는데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주인공.

그렇게 몇 개월간 의식이 소실된채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가 모호한 상태가 되었다가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린다.

이른 더위탓에 무력해진 요즘 정신이 번쩍나고 오싹해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전집은 얼음보다 더 차고 공포스럽다. 이 책은 책장에 잘 모셨다가 자주 꺼내 읽고 싶은 소장책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에드거가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추리물들이 탄생했을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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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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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통치자에게 전하는 조언집을 넘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영원한 고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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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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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문화부흥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의 사상가, 정치철학자로 외교와 군사부문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져있다.

그가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론을 집필한 것은 공직에서 추방되어 독서와 집필을 하던 시기였다. 조선시대 실학자로 이름난 정약용의 그 유명한 저서들이 유배시절 쓰여졌다는 사실로 보면 너무 바삐살기만 하면 좋은 저서가 나오기 어렵다는 증거인듯해서 이렇게 물러나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경험을 쓴 것이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으로만 보면 얼핏 군주의 권력이 강력하던 시대 백성들을 통치하는 방법에 대한 책같지만 그걸 넘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는 영원한 권력을 누린자를 보지 못했고 심지어 비참한 말로를 겪은 것을 보았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말이 얼마나 진리던가 말이다.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이 대상이 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사랑지상주의인 평범한 나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사랑이 낫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세상을 지배하는 군주가 되기 위한 사람이라면 '두려움'의 힘을 제대로 쓰라고 조언한다.


지금도 우리를 지배, 혹은 통치하는 자들 중에는 법을 어긴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감옥에 있기도 한 그들이 대체로 법을 공부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법을 제정해 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 법을 만든 자가 법을 어기는 것만큼 국가에 치명적인 선례는 없다'는 말은 바로 법을 어기고도 알지 못하거나 모른 척하는 자들에게 닿아야 할 채찍이어야 한다.


조용한 사회라면 평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런 사회가 썩어가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일갈에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거리에 나가면 시위대가 보이지 않는 날이 없고 파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그런 현상들이 사실은 강한 질서를 낳는 힘이 되는지를 다루는 것을 보면서 세상을 어떤 눈으로 봐야하고 건강한 사회는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군주론을 쓰던 시대에 권력의 힘은 지금보다 엄청났을 것이고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이 책을 저술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랫동안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너무 당찬 발언과 소신으로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지만 덧칠이 되지 않은 순수한 초역으로 만난 '군주론'은 평생 통치를 할 일이 없는 우리같은 소시민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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