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하게 여기진 말아요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 1
헤르만 헤세 지음, 배명자 옮김 / FIKA(피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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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랄까. 조금 무뚝뚝하고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

특히 독일의 영원한 거장 헤르멘 헤세는 문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과 색채가 있는 완고한 작가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데미안'이나 '싯다르타'같이 삶의 의미와 철학에 관한 소설에서 그의 이런 특색이 더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으로 만난 헤르만은 익살맞은 생전의 사진이나 캐리커처처럼 위트와 유머, 촌철살인의 대가였다.


헤르만은 1,2차 세계대전의 시대를 살았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킨 국가 태생이었다.

그가 지켜본 전쟁의 모습이 결코 긍정적일 수가 없었을텐데 인류는 왜 늘 전쟁을 선택하는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들이 치루었던 댓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작가 자신의 소리였을 것이다.

'전쟁을 위해 법을 만들고 희생하는 것, 이런 희생이 군인들의 굶주림을 막을 수 있지 않나'는 답에 '당신은 왜 그토록 전쟁을 높이 평가합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과연 있을까요? 전쟁이 정말로 선일까요?'

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전쟁중인 인류의 현실이 겹쳐져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화덕과의 대화'라니...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프랭클린'의 이름을 붙인 빵을 굽는 화덕은 비겁한 민족은 용기를 찬양하는 민요를 부르고 사랑이 없는 민족은 사랑을 찬양하는 연극을 공연한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입이 크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데 화력은 약하고 좋은 이름이 있는 정치인을 조롱하는 듯하다. 더구나 이탈리아 화덕이니까 범도 구울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은 같은 전범국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하는 듯, 조롱한다.


시도 아주 특별했다. '균형'이라는 시에서는 지구가 각지지 않고 둥글어서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어 다행이고 인간은 길쭉해서 굴러다니지 않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표현에서는 웃음마저 나온다. 맞는 소리네.

하지만 '시인이 부르는 죽음의 찬가'에서는 자신의 사후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고통에 대해 무의 상태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피안으로 사라지고 싶은 소망을 전한다.

과연 그는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왔으려나. 소망처럼 사라졌으려나.


자신을 주제로한 강연회의 무료함을 그린 작품도 재미있었지만 독자와의 만남이나 초대에 위트로 답하는 장면에서 그가 무겁고 깊은 주제만 다루는 작가가 아닌 코믹한 모습의 천진함도 갖춘 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독자는 많지 않다. 대표작 몇 편만으로 작가를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겉핥기식의 판단이 얼마나 섣부를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헤르만은 내가 알고 있었던, 그 이상의 작가이고 인간이었다.

소멸되지 않고 다시 소환되어 그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는 영원한 작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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