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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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쯤 최면에 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최면에
걸릴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너무 단단해서 최면에 빠지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곤한다. 그저 최면술사의 말 몇마디에 혹은 추같은 걸 보면서 몽롱해질 수 있다니.
의외로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라고 그런 체질이 아니란 보장도 없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서른 다섯살의 앨런은 최면술사이다. 주로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최면을 통해 치유를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면의 고통을 끌어내 치유를 한다든가
금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몇 몇 남자를 사귀다가 헤어지기도 했고 얼마 전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찾아낸 페트릭이란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런 시도를 통해 남자를 찾을만큼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의사인 자신의 엄마는 오로지 아이를 낳기 위해 약혼자가 있는 남자를 꼬셔서 자신을
만들었고 당당하게 싱글맘으로 살아왔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나 남자친구의 존재가 결핍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살짝 넘은 패트릭은 잭이란 남자아이를 둔 싱글대디로 첫 부인과
사별하고 얼마전 오랫동안 사귀고 동거해온 여자와 헤어진 남자였다.

      


다정하고 성실한 패트릭이지만 전 여친의 스토킹으로 매우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어린 잭을 키우며 엄마노릇을 착실히 해냈던 전 여친 사스키아는 패트릭을 잊지못해 그의
뒤를 졸졸 쫓아 다니는 스토커가 되고 말았다. 사스키아만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앨런은 영혼의 치료사답게 냉정하게 이해하려 하지만 스토커녀의 존재를 무시하긴 어렵다.
그리고 패트릭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전 남친들을 떠올리며 수시로 비교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면술사라는 직업은 섬세한 감각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일 정도로 앨런은 세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녔지만 막상 자신의 로맨스에서는 늘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스키아는 헤어지기 전까지 늘 '넌 내 여자야'라고 말해주던 패트릭이 왜 자신을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저귀를 갈아가며 키웠던 잭도 자신의 아이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그런 패트릭과 잭이 이제는 새로운 연인 앨런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가명으로 앨런의 최면치료까지 받다니 정말 끔찍한 스토커의 모습을 보인다.
사스키아는 그들을 헤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자신이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 뿐이다. 그러면 그럴 수록 그들이 멀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멀쩡한 직업이 있는 매력적인 여인임에도 연인과의 결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홀어머니와
살아온 외로움 때문이지도 모른다. 더구나 패트릭과 결별 직전 어머니는 돌아기셨으니까.

이 소설에는 여러명의 싱글들이 등장한다. 앨런, 패트릭, 앨런의 엄마인 앤, 앤의 절친이면서
앨런의 대모들인 멜과 필이모, 앨런의 절친인 줄리아, 자신에게 정자를 기증(?)했던 생물학적인
아버지 데이비드.
단독세대가 폭발적으로 늘어날만큼 싱글이 넘치는 이 시대에 각자 살아가는 모습을 다채롭게
담아내고 있다.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필요했던 앨런의 엄마 앤은 뒤늦게 앨런의 아빠 데이비드와 잠시
설레는 데이트를 즐기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앤과 한 공간에서 멋진 싱글삶을 즐기는 두 이모의 모습도 당당하다.
앨런의 절친이지만 은근 절친의 행복이 샘나는 줄리아의 모습.
약혼자를 두고도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만든 젊은시절 데이비드의 바람끼, 덕분에 평생
약간의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스토킹을 하는 사스키아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는 패트릭의 우유부단함과 늘 전처인 콜린을
의식하고 전 남자친구와 비교하는 앨런의 방황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이 인간의 진솔한 모습이다.  쿨해지지 못하는 관계들을 리얼하게 그리는
점이 바로 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색이다.
이미 지나간 사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붙들고 자신을 소모하는 사람들중에 그나마
앨런의 엄마 앤이 제자리를 찾는다.
'지난 35년 동안 나는 기억을 사랑해온 거야...'
앨런을 낳고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살아온 앤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이미 그 사람은 기억속의 그 남자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래서 사스키아역시 패트릭을 놓아주지 못했고 앨런역시 자신을 떠난 남자친구들을 계속 떠올린다.
그게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방해물인지를 당시에는 알지 못하는게 문제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버리지 못하는 숱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버려야할지 해답을 찾을 것 같다.

늘 그렇지만 작가는 인물들의 디테일을 그리다보니 분량이 너무 많다.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 나오곤 한다. 포켓에 혹은 백에 넣지 못할 정도로.
그만큼 인간사, 그중에서도 연애사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겠다.
언젠가 작가의 책이 가벼워진다면 세상이 훨씬 단순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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