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간의 연애이야기는 무지개처럼 다양하면서도 오묘하다.
내가 많이 좋아하는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애소설이라니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설레였다. 머리를 쥐어짜면서 읽어야 하는 추리물에서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연애소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그런 솜사탕같은 연애사보다는 연애에 빠지려 하거나 빠진 연인 혹은
조금쯤은 시들해가는 연인들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탁월해서 색은 다르지만 또다른 추리물을
읽는 것 같았다.

      


모두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옴니버스 형태의 연작소설이다.
주로 사건이 펼쳐지는 곳은 일본의 유명한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이다. 한파주의보가 계속되는
요즘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다. 이 곳에 모여드는 젊은 연인들은 주로 스키보다는 보드를 즐기면서
사랑과 스릴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첫번째 등장하는 미유키와
고타의 사연만 봐도 그렇다. 두 사람은 같은 직장에서 만나 3년을 사귀었고 동거중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요즘 동거커플이 많아진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모양이다.
고타는 잘 생긴다데 은근 바람끼도 있는 편이라 오랜 동거생활이 조금 지겨워지는데 마침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 모모미와 함께 스키장으로 1박 여행을 떠난다.
물론 동거녀 미유키에게는 출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미유키와는 다른 분위기에 풍만한 모모미와 뜨거운 밤을 기대했던 고타는 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 중 만난 4명의 여자와 동승하게 되고 그 여인들중 낯익은 여자를 알아보게 된다.

      


여기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독특한 기법을 만나게 된다. 스키장의 패션은 사실 모자나
고글을 벗지 않으면 얼른 알아보기가 어렵다. 고타 역시 낯익은 여자가 고글을 벗고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동거녀 미유키임을 알아보기 못했을 것이다.
4명의 여인들은 서로 친구로 자신들의 상황을 얘기하기 시작하고 미유키 역시 동거중인
남자 고타의 이야기를 꺼낸다. 건너편의 남자를 알아보고 얘기하는 것일까.
심지어 고타가 다른 여자와 함께 바람여행을 떠나온 것을 알고 뒤쫓아온 것은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 고타는 물론 읽는 독자까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기술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독특한 기법인 것이다.

      

 

8편의 연작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교차되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연애의 완성을 위해 혹은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찾아든 스키장에서 일어나는 헤프닝과
연인들의 심리를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호텔리어인 히다가 여자들에게 여러번 퇴짜를 맞고 결국 단체모임에서 만난 모모미에게
장미꽃을 건네지만 모모미는 패션감각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히다를 거절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만난 히다는 스키장에서 만난 히다가 아니라고 믿을만큼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짝 마음이 흔들린 모모미지만 히다는 한번 퇴짜맞은 모모미에게 시큰둥해진다.
주변 친구들은 어떻게 하든 히다와 모모미를 연결해주려 노력하지만 허사로 끝날 무렵
모모미는 히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들은 막연하게 남자들의 리드를 기대한다. 하지만 히다처럼 여자가 이끌어주면 더
잘 드러나는 연인타입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꺼져가는 촛불이 기적처럼 되살아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무렵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만만치 않은 작가였다.
첫편에 등장했던 미유키와 고타와 우연히 마주친 모모미는 고타와 함께한 여행에서 여고동창인
미유키와 재회했었고 같이 온 남자가 여고동창 미유키의 동거남임을 알고 절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고타란 남자 스키복과 고글로 무장한 모모미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날의 에피소드를 순 자기식으로 각색을 하면서 떠벌리고....
화간 난 모모미는 드디어 고글을 벗고 고타를 향해 소리치는데...
마지막 장면은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연인들이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연인이 되어가는 설레임까지 담아낸 연애소설이지만
다분히 인간의 심리를 아주 섬세하고 극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라 하겠다.
추리의 대가가 연애소설을 쓰면 이런색이다...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어서
연애소설인지 추리물인지 헷갈리면서 보게되는 멋진 소설로 잠시 추위를 잊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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