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찌질한 나는 행복하다 - 이 땅의 늙은 아이들을 위한 제2의 인생상륙작전!
최정원 지음, 정영철(정비오) 그림 / 베프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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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하다-지지리도 못났다, 행동이 못나고 추접스럽다.
찌질해도 행복한 순간이 없지는 않겠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늙은 아이의 일상을 보노라니 먹지 않은 술기운이 올라온다. 벽면수행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벽면술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만큼 이 남자 술을 좋아한다. 하긴 나도 술을 무지 좋아해서 이 책을 병원에서 읽고 있다.
연말 연시에 술자리가 이어지다가 결국 사단이 나서 병원신세까지 지고 있으니 술에 푹 절은 것 같은 이 책을 쓴 저자를 탓할 명분도 없다.  탓하기는 커녕 서울로 단숨에 올라가 당고개역으로 달려가 작업실이 있다는 고개로 진격하고 싶어진다.

      


지인인 무속인의 말마따나 2018년부터는 대운이 들어서 부자도 되고 영어권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믿음이 팍팍온다. 위에 탈이 나서 금식을 하면서 영양제로 버티는 와중에도 실실 웃음이 삐져나와 옆 침대 환자들의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책이 재미있으니 좀 팔리긴 할 것 같다.
늙은 아이들이 넘치는 시대에 굳이 자존심 상할 것도 없으려니와 긴 백수생활에 좋은 엄니 없다고 푸념 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곁에 밥 챙겨주는 엄니라도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아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다만 읽는 내내 한파주의보가 내린 창밖의 으스스한 바람소리만큼이나 가슴이 시렸다.
결혼을 했다고 외로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짙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전해져 더 그랬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고 바람을 피우고 가족에게 못할 짓을 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역시 아들은 아버지편이구나 싶었다.
나이 탓 일 것이다. 그리움에 앞서 원망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테지만 나이가 들면 헐거운 눈물샘 만큼 마음도 헐거워져서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젊은 시절 꽤나 속을 썩이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역시 아들은 아버지 편 맞다.

      


때론 보름이 지나도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쓸쓸해도 밥 챙겨주는 엄니도 있고 영양제 챙겨주는 후배도 있고 가끔은 둘러앉아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빡빡이 부대도 있으니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자위하라.
판권이 팔린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1000만 영화가 되어 돈도 좀 빵빵하게 들어오고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인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제발 반바지 뒤집어 입고 동네 돌아다니는 허접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니 생각해서.
다행이다. 돈도, 애인도, 아이도 없는 것 투성이지만 글 잘 쓰는 재주라도 있으니 밥은 굶지 않을 것 같아. 후회막급한 마음으로 병실에 누워 오랜간만에 킬킬거릴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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