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시詩알콜
김혜경.이승용 지음 / 꼼지락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문학의 거장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을 썼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꼭 읽어야 하는 문학서로 꼽히는 책이다.
줄거리가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당시 일제치하의 지식인들의 무력감을 술로
달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그렸던 것 같다.
해마다 술소비량이 늘어난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이 시대 역시 술을 권하는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나역시 술을 몹시 좋아한다. 특히 녹색병에 든 소주를 좋아하는데 일단 싸고 맛있고 다음 날
비교적 깨끗하기 때문이다. 맥주는 쥐약이고 와인은 독약에 가깝다.
체질에 따라 맞는 술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한의사는 내 체질에 독주가 어울린다고 했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술을 못먹는 사람들을 아주 두려워한다.
체질적으로 술을 분해하지 못해서 입맛만 다셔야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의도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거나 딱 몇잔만 먹겠다고 선을 그은 사람들을 만나면 경계부터 하게 된다.
내가 이 사람과 술자리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상대가 꼿꼿한 정신으로 나의 취한 모습을 즐기게 되면 다음 날 그를 다시 볼 용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고 나는 보여줬는데 너는 뭘 보여준거야. 하면서 은근히 자존심을 굽힌 것 같아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암튼 이러저러 초록은 동색이라고 나는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특히 시인들중에 술을 전혀 못하는 작가가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술없이 어찌 시를 써. 시라는게 꼿꼿한 정신에서 탄생되면 상대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그렇다고 술을 잔뜩 먹고 시를 쓴다는 뜻이 아니라 술을 먹고 즐기는 정서를 가진 시인만이 진정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하믄.

      


시를 써서 밥도 먹고 술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게 시인인데 그게 안되니 그건 참 슬픈일이다.
면접을 볼 때, 누군가의 소개로 애인감을 만나러 나갈 때, 노래라도 한자락 여러사람 앞에서 불러야 할 때 우린 술이 간절히 필요해진다. 때로 진솔한 글을 쓰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알콜기가 적당히 들어간 어느 날 문득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을 다음 날 보게 되면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었지 하면서 스스로 놀라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글처럼 낯설고 찐하기 때문에. 그래서 난 술 잘먹는 작가의 글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든 마주앉아 술 한잔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 책이 참 좋다. 소주, 맥주, 와인, 데킬라 이외에도 술이 참 많구나 싶다.
취향따라 좋아하는 술도 다르고 마주앉아 마시는 방법도 다르고 특히 술에 취해 나오는 행동도 다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거의 모두는 자신이 알콜중독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주가 정도지.



가끔 창밖에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면서 내가 먹은 술이 저 정도는 아닐지 살짝 부끄러운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고 그 술은 견뎌주는 애틋한 몸에게 미안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난 여전히
술을 사랑할 것이고 글을  사랑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귀를 기울이는 일이고 몸을 기울이는 일이다.
혼술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지나간 시간들을 만나고 첫사랑을 만나고 다가올
이별에 대해 미리 예방주사 한 방쯤 맞아두는 일이다. 물론 막상 그 일이 닥치면 지나간 예방주사의 효력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둔다는 싯귀가 얼마나 좋은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사는 일이 지긋지긋해지고 쓸쓸해지면 꺼내 쓸 감정들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된다. 행복하다고 믿었던 어느 시간들, 좋은 사람들, 그걸 저금해둘걸.


난 내가 중2병을 겪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녀석의 중2병 때문에 아파트
베란다에 서는게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북한이 못내려오는건 중2들이 무서워서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는데 그럼 북한은 중2들이 없는 모양이네.
암튼 중2병은 딱 중2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질병은 아니지만 저나 나나 괴롭게 하는 홍역같은 건데 뭐라고 정의하든 허세작렬이라는데 공감 한표!
모두 허세로울 자격이 있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 허세라는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의 허세는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니까.
술병을 따서 술잔에 첫잔을 따를 때 그 청명한 소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어떤 글로도 그 소리는
그려내지 못해 안타깝다)이 책이 얼마나 멋진지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었으니 하는 말인데 아직 술시가 되기도 전에 벌써 마음 한자락이 뜨끈해지는
책이라오. 그리고 흘깃 지나갔던 詩들이 어찌나 귓가를 간지르는지 꼭 한번 읽어보고 취해보시구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