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사이즈의 이 책이 어찌나 무거운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너무 가벼워서 부담없이 쉽게 읽히리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와서 차마 다음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기어이 두 자매의 운명을 알아야하겠기에 눈물을 삼키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샴 쌍둥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기형으로 태어난 그들의 운명이 가엽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책 표지에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을 보면 분명 머리를 두 개이고 손은 각각 두 개씩인데 걸터앉은 나무가지사이로 보이는
다리는 분명 두개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티피와 그레이스라는 이름보다 괴물, 혹은 돌연변이로 더 많이 불리는 두 자매는 결합쌍둥이다.
그녀들의 엄마와 아빠는 자신의 아이들이 그렇게 태어날 줄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어쨌든 자신들의 딸로 태어난 두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키워냈다. 열 여섯이 될 때까지.
특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었기에 병원비만 해도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실직이
티피와 그레이스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특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자매를 위해 그동안 홈스쿨링을 했지만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결국 일반 고등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다.
'맙소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도처에서 자신들을 괴물 쳐다보듯 바라보는 시선이 못견디게 싫다. 그런데 일반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열 여섯이 될 동안 티피와 그레이스는 친구가 전혀 없었다.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제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역시 아이들과 선생들의 시선은 티피와 그레이스를 힘들게 했지만 다행스럽게 존과 엄마로부터 에이즈를 물려받은 야스민이 다가와 주었다. 이제
최초로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존에게 사랑을 느낀다. 물론 늘 곁에 있는 티피는 그레이스의 사랑을 눈치챈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티피와 그레이스는 미래의 모습을 그릴 자신이 없다. 결합 쌍둥이는 일찍 죽기 때문에 미래는 언제나 열어 보고 싶지만 두려운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새로운 환경과 따가운 시선을 견디면서도 티피와 그레이스는 학교 생활이 즐겁다.
하지만 몸이 이상하다. 그레이스의 심장에 문제가 생기고 티피의 심장으로 겨우 삶을 연명하고
있다믄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자매의 운명은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난폭해진다.
아무리 괴물처럼 태어났지만 자매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삶을 맘껏 누리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신은 관대하지 않았다.
티피와 그레이스는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떴고 친구도 생겼으며 미래를 꿈꿔보는 달콤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마저 실직을 하자 결국 돈을 받고 인터뷰를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 네살 동생 드래건도 너무나 좋아하는 발레도 포기해야 하고 집도 팔아야만 했기에 동물원에 전시된 원숭이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몸이 불편했지만 철은 너무 일찍 들어버린 결합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멀쩡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누가 진정한 장애인일까.
결국 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면 부모는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참으로 많은 숙제를 던져준다.
특별한 몸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던 결합쌍둥이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지금 우리가 숨쉬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몸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아야 한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자유로운 시 형태의 이 소설이 2017년 마무리 무렵에 아프게 다가왔다.
아프지만 사랑스럽고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감동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