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 2017년 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강영숙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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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슨 문학상이라고 하면 신뢰감부터 생긴다.

어린시절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한국문학집들이 기억난다.

감자, 배따라기같은 걸죽한 문학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놀라웠고 문학의 힘이란게, 작가의 힘이란게 어린 맘에도 묵직하게 다가왔었다.

'메밀꽃 필 무렵'역시 그즈음 접했던 작품인데 당시에는 메밀꽃이 어떤 모양인지도

몰랐지만 이효석이란 작가를 떠올릴 때마다 메밀꽃이 가득찬 들판이 떠오르곤 했다.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많이 소개될 만큼 드라마틱한 작품을 그린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해마다 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이 선정되고 있고 올해도 문학성 아찔한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8회 대상 수상작인 '어른의 맛'은 대학동기인 호연과 승신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상대와 결혼을 한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날을 정해 점심을 함께 먹는다.

과거 서로 사랑한 사이였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두 사람이 왜 결혼을 하지 못했는지 설명은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그러 사이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배우자에게 채우지 못한 것들을 채우는 쿨한 연인사이인지도 모르겠고.

승신은 어린시절 양계장을 하던 수연에게서 연락을 받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의정부로 향한다.

몇 십년만에 만난 두 사람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승신은 변해버린 수연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흙 한줌을 입에 넣는다.


 


글쎄 왜 흙을 입에 넣고 싶었을까. 어떤 짐승들은 몸안에 뭔가가 부족할 때 흙을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승신은 비어버린 마음속 허전함을 흙으로 채우고 싶었을까.

비스킷맛 같기도 하고 황사냄새가 나는 것도 같은 그 흙의 맛이 '어른의 맛'이라면

무미하고 건조하고 푸석한 질감을 가진 흙이 우리들의 모습이란 말인가.


 


닭갈비집으로 떼돈을 번 장인에게서 빚을 내어 출판사를 차렸다가 망해먹은 남자가 처치곤란의 책을 차마 자신의 손으로 태우지 못하고 닭갈비집 냉동고에 넣는 장면에서 출판업의 비애가 느껴진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이 팔리지 않은 시대에 출판사라는 것은 참 고독한 작업이고 업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명감때문에 저질렀다가 고이 접었던 출판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수입 없이도 살 수 있겠니'라며 닭갈비를 구워주던 장인의 걱정이 애처롭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팔리지 못할 책을 쓰고 인쇄를 해야한다.


단편이란 것이 그렇다. 잘 구워진 빵 한조각을 떼어낸 느낌같은.

빵 한조각만으로도 먹지 않은 부분의 맛까지 알아낼 수 있는 그런 조각들이 모여 이 수상집이 탄생된 것같다.

다만 소심한 누군가는 앞 뒤 진열되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유추해내느라 다소 머리를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단편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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