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름의 끝자락이다. 폭염주의보가 연일 나올만큼 지독한 더위도 이제 서서히
꼬리를 내릴 때가 된 것이다.
그래도 윤달이 있는 해에는 더위끝이 길어 아직은 낮에도 바람이 그립기만 하다.
어쨋든 시간은 흘러 여름내 땀을 흘렸던 농부들은 결실을 거둘 때가 되고 있다.
우리 집 텃밭에 심었던 고추도 하루가 다르게 붉게 물들어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한가득이다.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도 있는 법이니 엄격한 자연의 이치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가을의 첫 만남을 알리는 샘터 9월호에 오래된 축음기 사진이 참 멋지다.
저 축음기는 어느 시간을 돌고 돌아 샘터에 까지 이르렀을까. 과거엔 집 한채값이 넘었다는데
누군가에게 소중한 자산이었을 이 축음기에 새겨진 추억이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내 마음을 훔친 사연은 9월호 특집 '내가 가진 게 진짜 진짜야!'였다.
정신장애를 가진 형을 둔 아우의 사연으로 어린시절 형의 존재가 그렇게나 부끄러웠건만
공공근로로 첫월급을 타서 가족들에게 고기를 사고 싶었던 형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스러워
눈이 시큰해진다. 우리는 몸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 심한 진짜 장애인이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장애는 맞설 수라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장애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하는가. 아주 적은 첫월급으로 가족들에게 밥 한번 먹이고픈
형의 마음이 진짜 장애인은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을까.
'삼시세끼 철학'에서 '뺄셈의 레시피'에서는 최소한의 식재료로 훌륭한 맛을 내는 '김바스 알 아히요'라는 새우요리를 소개했다. 마침 '공유의 시대'에 공동기부단체인 '도넛도넛'의 기사와 묘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
더하기에만 급급했던 우리시대 사람들에게 '뺄셈'의 멋진 미학을 전하는 것만 같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기부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도넛도넛'은 뺄셈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행복해지는 마법의 수식을 이뤄내는 단체이다.
내 집에도 쓰지도 않으면서 아깝다고 쌓아두는 물건이 너무 많다. 달콤한 '도넛도넛'을 맛보러 가볼까나.
늘 챙겨보는 성석제 작가의 연재소설 '만남'에는 '상도냐 상술이냐'로 우리가 시골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순진함을 기찬 상술로 여지없이 기대를 무너뜨리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밭에 가서 마늘을 사는데 중국산 마늘을 섞어서 파는 할머니도 있다고 들었고 얼마 전 친정엄마도 시골 장에 갔다가 위에만 좋은 것을 얹어서 파는 시골 할머니의 상술에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섭다기 보다 가슴아픈 상술이다.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도시인들의 염원을
멋지게 걷어차는 기막힌 반전의 상술에 이제 시골장터의 인심은 어림없는 기대가 되는 것일까.
고추밭에서 딴 붉은 고추는 햇볕에 오랫동안 말려야 투명하고 달큰한 마른고추가 된다.
이 모든 것이 가을의 햇살 덕분이다. 금방 쪄서 말린 고추와는 차원이 다른 태양초처럼
서두르지 않고 샘솟는 샘터의 맑은 물로 이 가들이 또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