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 배가 침몰하는 상상을 해보곤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고립되어
무인도에 남게 된다면 나는 살아날 수 있을까.
세월호 이후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모든 사고가 나를 피해가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처럼 풍랑과 안개로 수시로 뱃길이 끊기는 섬에 살다 보면 이런
위기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 볼 수 밖에 없다.
로빈슨 크루소나 톰 행크스가 나오는 '캐스트 어웨이'같은 상황들이 생긴다면 나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아니 난 전혀 자신이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루이즈는 연인인 뤼도비크와 함께 요트로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세무소라는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지만 모험가인 뤼도비크의 강압적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행중에 자만심이 가득해진 두 사람은 자연보호구역인
스트롬니스라는 섬에 들어가게 된다. 과거에는 강치와 고래를 포획하는 전진기지였던 이 섬은 이제
과거의 흔적이 어지럽게 흩어진 무인도가 되었다. 호기롭게 섬탐험을 나선 두 사람은 갑작스런
날씨때문에 섬에 갇히게 되고 설상가상 타고온 배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결국 섬에 고립되고 만다.
좀더 섬을 탐험하자고 꼬득인 뤼도비트를 원망해보기도 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살아남아야 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버티기로 한다.
보호종인 펭귄을 잡아먹고 강치와 물고기로 연명하면서 허름한 고래전진기지의 창고에서 살아가지만
체력은 고갈되고 점점 죽음에 가까워진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타고난 등반가였던 루이즈는 섬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다부진 체격이었던
뤼도비크는 긍정적이고 허세가 심한 남자였지만 결국 병이 들었고
루이즈는 뤼도비크를 놔둔 채 홀로 섬의 반대편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제대로 된 기지를 발견하고 몸을 추스린다.
목욕을 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면서 정신을 추스린 루이즈는 지옥같은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연인인 뤼도비크를 홀로 두고 나왔다는
자책에 시달리다 비상식량을 잔뜩 짊어지고 뤼도비크에게 돌아간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병에 걸린 뤼도비크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곳에
도착해서 아직 뤼도비크가 살아있음을 발견하지만 비참한 모습에 차라리 죽어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루이즈는 최선을 다해 뤼도비크를 구하려 했지만 결국 뤼도비크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뤼도비크를 그곳에 남겨두고 다시 기지로 돌아온 루이즈는 얼마 후 구조된다.
하지만 루이즈의 고통은 결코 끝나지 못한다. 몽은 문명의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의식은 여전히 섬에서
떠나지 못한 채 뤼도비크를 놓아두고 혼자만 살아나왔다는 자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더구나 그녀의 생환을 장사속으로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나타나면서 루이즈는 더 절망에 빠진다.
그녀를 도와주는 척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정작 그녀가 말하지 못한 진실까지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루이즈는 스스로를 다시 섬에
가둔다.
인간은 극한 고통을 당하게 되면 스스로 기억을 지우거나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고통을 받게 된다.
잠에 빠져 모든 걸 잊고 싶어하는 루이즈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루이즈 였다면 뤼도비크를 그렇게 버려두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자책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니 그녀처럼 등반가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녀처럼 선택했을 것이다.
나는 그마저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연인의 곁에서 같이 죽음을 맞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뤼도비크처럼 쥐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루이즈는 배신자일까 영웅일까.
살아남았다는 것이 죄가 되어버린 루이즈가 진정한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남았기에 잊혀졌을 그들의 시간이 살아난 것이다.
루이즈 살아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기를. 그대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 책을 덮으면서 루이즈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