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투명
장웨란 외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예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중국을 중공이라 불렀다. '죽의 장막'으로 불릴 정도로 폐쇄적이고

사상적으로도 우리와는 적대적인 국가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중문학과에 진학하는 친구들은

미래를 두려워했고 주변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혀를 차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장막을 거두고 세계의 최강국이 될 것이라 예견하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다.

일단 중국은 '인해전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적자원이 존재하는 나라였고 열리기만 한다면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드릴 여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과 3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강국이 되었다. 공항에서 제일 시끄럽고

여전히 세련되지 못한 국민성때문에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공산국가이며 초기의 저렴한 인적자원때문에 몰려들었던 수많은 자본가들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과거 우리에게 문화를 전파하던 부모의 나라에서 한류에

열광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정도가 우리가 중국을 보는 시각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여전히 공산당원이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어떤 문학이 존재할까 하는

궁금증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폐쇄적이었고 사상적으로 다양하지 못했던 국가에서 천편일률적인 단순한 문학만이 생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의 이런 편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여성작가인 치우산산의 '쉬는시간'은 교직에 있다 퇴직한 일흔 다섯의 여인 장수잉의 일과를 그리고

있다.

이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공간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다. 평생 시간표대로 살아온 교원답게 그녀는 일과를 시간표로 만들어 생활하기로 한다. 늘 가르치려는 습성이 발휘되어 아파트단지의 부조리를 교정하려고 들고 시간표사이의 쉬는 시간에는 이웃을 관찰, 혹은 훔쳐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자신의 현관앞을 지나는 발자욱 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를 알고 윗층에 도둑이 들자 우연히 현관앞에서 마주친 남자가 범인이라고 신고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남자는 택배기사일 뿐이고 그녀의 과도한 훔쳐보기가 할일없는 노인네의 일상이라고 판명되자 좌절한다.

역시 중국의 노령인구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독거 노인들.

과도한 이웃 훔쳐보기는 결국 지나친 고독의 부작용이다. 장수잉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보게 된다.


 


중국 당대의 작가라는 마이쟈의 '일본놈'은 우리와 같은 비극을 겪었던 중국이 바라보는 '일본놈'의

시각이 잘 녹아있다. 열 다섯 어린시절 중국을 침략했던 일본군에게 끌려가 짐꾼으로 일했던 더구이에게 왜 '일본놈'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는지 과거의 시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과거속에는 더구이의

인간적인 고뇌가 선택한 비밀이 숨어있다. 그 비밀을 알게된 더구이의 아버지는 수치심으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선택한다.

과거 일본의 잔인한 시간을 경험한 세대들이 일본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 우리 역시 '일본놈'이라면 치가 떨리고 여전히 억지를 쓰는 그들이 혐오스럽다.


 


이혼뒤에 집을 전처에게 내어주고 연인이 된 두궈의 집에 함께 살게된 남자는 두궈의 아들에게 '아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낯설기만 하다. 자신에게도 딸이 있었지만 큰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두궈의 아들이 자신에게 집착할 수록 딸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전처와 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남자는 두궈에게 양쪽집을 오가면서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모습은 사실 중국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진보된 남녀의 모습이 아닐까. 그만큼 중국도 결혼관이나 사랑에 대한 관념이 크게 진보했다는 뜻일게다.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떠나는 남녀와 그들의 가정부였던 스촨출신의 여인이 이혼을 생각했던 남편을 기다리며 설레는 이야기는 현대 중국의 남녀의 감각적인 삶을 말해준다. 지방출신의 가난한 농민들이 도시로 향하는 자본주의적 시각같은 것도 느껴진다.

집안에서 더 인정받았던 언니는 당시에는 인기직인 택시기사와 허락되지 않은 결혼을 하고 가난에 치여사는 현실과 이제는 부자가 된 동생의 가정부일을 해주는 장면에서 같은 자매이지만 돈이 주는 삶이 변화를 여지없이 대비시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중국문학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처절한 시간들을 지나온 작가들이 변화되는 현실을 긴 호흡없이도 날카롭게 그려냈다.

우리보다 아직은 한 수 아래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선입견들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거대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이 팽배하는 중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파도를 넘어 신세계로 향하고 있다.

그에 맞선 중국인들의 다양한 시각과 진보적인 사고가 우리못지 않다는 것이 참 놀랍다.

이런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기를 출판사에게 부탁하고 싶다. 책이 주는 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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