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 할머니 - 25세 손녀가 그린 89세 할머니의 시간
정숙진.윤여준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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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할머니'란 단어는 아주 낯설고 생소하다.

이북이 고향이신 부모님은 단신으로 월남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친척이 많은 가족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었다. 그러니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는 상상속에서만 그려보는 존재였다.


 


나이가 들어가니 만나보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핏줄들이 너무도 그리운데 아마 살아생전 그들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싶다.

주변에 어느새 할머니가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식보다 손주가 그렇게 더 예쁘다고 한다.

나는 이런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내 아이들의 할머니가 되어 그 사랑을 맘껏 돌려주고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거의 핵가족의 형태로 자라서 조부모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저자의 집안은 아주 특별한 사랑이 넘치는 가족인 것 같다.

미술을 전공한 저자가 유독 할머니의 삶을 그리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 볼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벌써 남다르다.

늙은 할머니의 지나온 시간이 뭐 그리 궁금했을까. 하긴 누구의 삶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숙진여사의 삶은 지나온 고단한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그나마 평탄하게 보인다.

여고때 해방을 맞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 6.25를 겪었으니 그 비참한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을지 짐작되지만 의사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전쟁통에 길에 즐비했던 시체며 큰오빠와 큰형부를 잃었던 슬픔은 지워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대체로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의 선택과는 다른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 참 축복받은 생이지 싶다. 더구나 자상하고 믿음직스런 남편을 만났것은 여자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이니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이대를 졸업했으니 결혼시장에서 제법 잘 나가는 남편을 만날 수도 있었겠지만 순수하게 사랑으로 만나 백년해로를 하고 있으니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교편을 잡아 일하고 아이 넷을 낳아 잘 길렀으니 그녀 역시 지금의 커리어우면들 못지 않은 멋진 신여성이었다. 그 정도면 참 열심히 살아온 삶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원하는 것은 나이들어 이 부부들처럼 손 붙잡고 생의 마지막까지 같은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축복받은 숙진아씨는 신께 감사한 일이 너무 많을 것 같다.

선한 마음과 인품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다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할머니의 삶을 이렇게 그려준 손녀가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고.

할머니도 예전에 누군가의 귀여운 아기였고 딸이었고 아내였음을 증거한 아름다운 책이었다.

문득,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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