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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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동안 동네를 벗어난 적 없이 남편 켄트의 그늘 아래에서만 살아온 예순 셋의 브릿마리!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진 남편을 두고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오직 자신의 남자라고만

생각했던 남편이 내연의 여자가 있음을 안 직후였다.

커트러리 서랍안에 나이프와 포크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온집안을 과탄산소다로 청소를 해야만

맘이 놓이는 결벽증이 있는 브릿마리로서는 부정한 남편과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작정 고용 센터로 향한 브릿마리는 불황때문에 일자리가 없다는 상담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당장 일자리를 달라고 떼쓴다. 이것조차 세상물정 모르는 브릿마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전 식당 웨이트레스일을 해본것이 전부인 늙은 여인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있기는 할 것인가.

마지못해 알아보겠다는 상담 아가씨의 말에 자신의 리스트에 약속날짜까지 잡아가며 매일 고용 센터로 향한다.

브릿마리의 집념에 손을 든 상담아가씨는 보르그라는 곳에 있는 레크레이션 센터에 관리자로 그녀를 보낸다.

보르그라는 곳은 오래전 트럭들이 오가며 들리는 번잡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주변 도시에 밀려 주민 모두가 떠나버린 공허한 마을이다. 사실 레크레이션 센터도 곧 문을 닫을 예정이다.

엉망진창인 레크레이션 센터를 과탄산소다로 빡빡 문질러 닦으면서 브릿마리는 켄트와 함께 한

결혼생활을 되돌아본다.


 


레크레이션 센터 바로 앞에는 구멍가게 겸 자동차 정비소 겸 우체국 겸 피자가게가 있고 가게주인인 미지의 인물인 '그녀'가 있다. 휠체어를 탄 그녀가 브릿마리가 타고온 차를 고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보르그에 유일한 자동차 정비소엔 그녀밖에 없지 않은가.

레크레이션 센터 바로 앞 공터에는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왁자하게 공을 몰고 다니긴 하지만 제대로 공을 차는 아이가 있기는 한건지 브릿마리는 알 수가 없다.

브릿마리는 전혀 즉흥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이성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그림자같은 남편을 떠나 보르그로 온 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더러운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은 모두 가난한 부모를 두었거나 그나마 한쪽 부모만 있거나 베가나 오마르처럼 양쪽 다 없거나 하는 아이들이다.  부티나는 BMW를 타고 다니는 프레드릭과 그의 아들 맥스만이 예외라고 할까.  맥스는 하키선수이지만 축구도 잘한다. 문제는 그의 아버지 프레드릭이 맥스가 축구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브릿마리는 천성대로 아이들의 더러운 유니폼을 깨끗하게 빨아주다가 뜻하지 않게 축구팀 코치로 나서게 된다.

얼마 후 열린 축구대회를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화에 얼떨결에 맡게 된 것이다.


 


브릿마리는 특이하게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던 세상이던 뭔가에 대해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로 마음 먹는다.

냉랭한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익히고 경찰인 스벤에게 호감도 느끼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었지만 복지센터에 맡겨지는게 싫어 거짓말을 하고 보험금을 타내 두 동생을 돌보는 새미.

얼핏 불량아처럼 보이지만 질이 좋지 않은 친구 싸이코와 단짝이 된 것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매을 맞던 날 자신과 동생을 도와준 의리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새미역시 브릿마리처럼 커트러리 서랍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정의로운 아이이다. 하지만 부모를 대신하여 두 동생을 돌보는 일은 가슴아프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과거의 축구스타 뱅크와 미지의 인물인 '그녀' 그리고 몰락해가는 마을에서 축구로 희망을 꽃피우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 어느새 존재감을 드러내는 브릿마리.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편 켄트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온다.

어렵게 출전한 축구시합이 있는 날, 시합이 끝나는 그 날 브릿마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브릿마리와 이별하기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과 이어지는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 브릿마리는 주춤거린다. 과연 브릿마리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녀를 원하는 보르그에 남을까.


브릿마리가 평생 소원한 것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처럼 그녀도 파리로 향한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제목이 '브릿마리 여기있다'라고 붙인 이유를 알것 같다.  존재감 없던 여인 브릿마리가 '나 여기있다'라고 말한다.

까탈스럽고 사회성이 떨어지지만 정의롭고 따뜻한 그녀의 심성이 가난한 아이들의 가슴에 가 닿는다.

어딘가 찌그러지고 가난해보이는 마을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마을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외로움때문에 더 이방인들을 밀어내려 한 것 같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까칠 할머니 브릿마리의 홀로서기는 감동스럽다. 이 소설에게 가장 까칠한 남자로 등장한 맥스의 아버지 이름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것은 작가의 유머가 아닌가 싶다. 오베와 엘사에 이어 역시 사람냄새 물씬나는 멋진 할머니 브릿마리의 홀로서기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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