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인 노교수의 집에 어느 날 길고양이가 찾아온다. 열 일곱살 무렵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살아온 노인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한 가족이 되기까지의 에세이가 감동스럽게 그려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린 트라우마때문에 평생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뚱'이란 이름의 진도견과 함께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존재는 인간에게 많은 변화를 준다.
냉정하던 마음이 애틋해지고 길고양이의 무법질에도 조금은 관대해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가 여전히 무섭고 귀찮다. 길고양이가 너무 많고 고양이 울음소리도 거슬린다.
평생 심리학을 공부한 노교수의 눈으로 지켜본 '고양이관찰기'는 내가 알고 있던 막연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기도 한다.
고양이가 엄청 깔끔하고 요망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온 이야기지만 노교수집에 들어온 나비 역시 깔끔쟁이였던것 같다.
중성화수술을 하러 오가는 차안에서 실례를 한 것 빼고는 어디에서 처리를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개보다 의리는 없다는 것이 맞았다. 어느 날 문득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의 침대로 기어드는 모습에서 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인류에게 고양이의 기여도는 높았다고 볼 수 없다. 개처럼 사람의 사냥동무가 된 적도 없고 말과 소처럼 일꾼 노릇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소, 양, 돼지처럼 젖이나 고기를 내놓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근처에 고양이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고양이만의 매력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 매력을 발견하지 못해 여전히 고양이를 구박하지만 냉담했던 노교수의 마음을 녹였던 나비의 행적을 보노라니 확실히 영악한 동물이 분명해 보인다.
오랫동안 애완동물을 멀리했지만 분명 노교수의 마음에는 따듯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고양이를 인용한 시를 들려주고 역사적 고찰에 이르기까지 나비는 노교수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나비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주저할만큼 나비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스로 제 처지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고양이와 무뚝뚝한 노교수와의 따뜻한 이야기가 아침 저녁 찬바람이 부는 이즈음에 감동스럽게 다가온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