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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지나온 40대는 초반에 너무 바빴고 중반에는 혼란스러웠으며 말기에는 고독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젊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없는 40대라는 나이는 100세 시대라는 요즘에서
보면 반도 살지 못한, 말하자면 아직 영글지도 못한 나이이건만 몹시 지쳐가는 나이가 아닐까.
차라리 왕창 늙었거나 아니면 철이 없어 뭐든 저지를수도 있는 젊음 사이에 치어서 어정정한
그런 나이에 끼어 있었던 저자의 40대는 딱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었다.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장이 되었지만 40대의 저자는 살짝 철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엉뚱한
발랄함에 보는 사람을 아주 즐겁게 한다. 젊은 시절 별로 예쁘지 않아서 남자들에게 인기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들을 상상의 세계로 끌여들어 밀땅을 하는 모습은 어찌나 우스운지.
그녀의 이런 천진함이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는 자산이 아니었던가 싶다.
전쟁을 겪은 세대로 근대화의 시간을 지켜봤던 다소 우울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이것조차도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술만
마시면 공포감을 조성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조금 어두웠을 뿐.
그런 천진의 모습속에서도 작가다운 위트는 어쩌지 못하는지 봄만오면 우울병이 도지고 쓸쓸해지는 심정을 '나무에 싹이 부풀어 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발정 나. 인간은 연애를 하고 싶어져.'
하고 탄식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치게 하는 그녀만의 표현에 압도당한다. 딱 이맘때 온세상이 살아나겠다고 아우성일 때 내 마음이
그랬거든. 그래서 여자들이 봄에 바람이 나나봐.
누가 볼때만 효도를 하는 척 하는 아들과 실강이를 벌이는 모습은 유쾌하다.
그랬던 그녀의 아들도 이제 이 책을 썼을 때의 저자의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팔순의 어머니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거추장스러운 장식이나 좋은 옷에는 관심도 없었다는 저자의 성격대로 그저 소박하면서도 너무나 솔직한 일상들이 제목처럼 근심을 소멸시켜주는 것같다.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적당히 느슨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우리세대는 너무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요런 격하게 솔직하고 발랄한 에세이 한 번 쓰고 싶어진다. 자신을 아무 포장없이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사노 요코의 용기를 보니 나도 은근 욕심이 생긴다. 표지안쪽에 웃는 모습의 저자가 정겹게 느껴지는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