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든 생각은 '아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그리고 잘 읽어야 겠구나'였다.
글을 좀 빨리 읽어내리는 나는 조금 지루하다 싶은 문장은 훌쩍 지나치는 버릇이 있어 좋은 문장을 많이 놓치는 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 버릇대로 하다가 흠칫 놀라 다시 앞장으로 되돌리곤 했다. 이 여자의 문장이 제법 산뜻했기 때문이다.
굳이 나이 든 작가만이 깊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편견은 없지만 어차피 글속에 녹은 작가의 연륜은 미리 당겨오기 어렵기 때문에 작가들은 알지 모르지만 글에도 나이가 느껴진다.
작가가 읽었을 혹은 보았을 문장들과 영상들이 내게 건너 오면서 지적 호기심이 살짝 충만해져 오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는 조금 치열함에서 조금 비껴선듯한 달관은 아니지만 조금쯤 자신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듯한 그런 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래전 지인들이 건넸던 물건들을 보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떠올리고 외출용 팬티로는 팬티라인이 잘 드러나지 않는 햄팬티를 선호하지만 여자들의
옷장에는 여전히 면팬티가 더 수두룩 할 것이라며 편한 팬티처럼 편한 사람이 좋더라는 말에 미소가 번진다.
느슨한 나이에 이른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느슨한 나이란 느슨해진 인생이란 뜻은 아니다.
그리고 눈을 뗄수 없었던 그녀만의 문장에는 '남자에게 진짜 잘해주는 방법은, 그 남자에게도 자신에게 잘해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였다. 그녀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노력하고 들인 비용만큼 더 애정을 쏟게 되어 있다.
이상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헌신이 되어버렸다. 남자의 냄새나는 발도 뽀드득 소리가 날만큼 깨끗하게 닦아주고 새벽부터 부엌에
서성이는 날들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게 내 사랑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잘해주면 할 일이 없어진 남자는 마음도 거둬들인다....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난 좀 더 괜찮은 사랑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쉽다. 늦게 이 문장을 만난 것이. 그래도 혹시 이 문장을 써먹일 날들이 남아있기를 바랄 뿐.
'사랑을 잘하는 여자는 상대가 자신을 더 잘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여자다.'
참 말이 필요없는 문장이다. 잠시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대의 사랑은 완벽했는가? 나는 작가들이 자신들이 쓴 책의 리뷰를 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 질문에 그녀는 분명 웃을 것이다. 맞죠?
그리고 아들에 대한 무한사랑, 그리고 유한포기, 그럼에도 더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인 그녀의 솔직함이 애틋하다.
나역시 그러했으므로. 도도했던 내 인생을 숙연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바로 자식이었으므로.
그녀의 말처럼 그저 자식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인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견디기로 한다.
'나이 든 여자의 아름다움은 젊은 여자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동감! 그리고 공감! 이 글로 핑계를 댈 수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지 말라. 이렇게 글 잘쓰는 작가도 말하지 않는가.
진정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라고.
부처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말처럼 나이들어 푸석해진 여인의 얼굴도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 보면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런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을 것이라고 나는 억지로 믿는다.
늙어감에 대한 비겁한 변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이든 여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작가의 말로 밀어부칠 것이다.
그녀의 문장들이 벚꽃이 다 흩어져 버린 오늘....서글퍼지려는 내 마음을 잠시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