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는 작가다. 굳이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삶 그 자체가 원고지위에 쓰는 글과 같지
않던가. 어린시절 멋진 시를 썼던 꼬마는 가족 모두에게 천재라는 칭송을 들으며 자라게 된다.
모두의 기대가 버거웠던가. 꼬마가 자라서 소년이 되도록 글을 쓸수가 없었다.
잡화점을 하는 아빠 덤보와 미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에두아르는 남동생과 여동생하나가 있다.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된 에두아르는 자신과 비슷한 친구 몽카생을 알게되지만 몽카생은 악마같은
사감선생과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죽음에 이른다.
끔찍한 사감선생을 놀려주기 위해 교정에 낙서를 했던 에두아르의 잘못을 뒤집어 쓴채.
삐끄덕 거리던 부모님들은 결국 이혼을 하고 남동생은 정신병원으로 향하고 겨우 대학시험에 합격한
에두아르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작가적 재능에 열광하던 모니크와 연인이 된 에두아르는 벨기에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성공을 거둔다.
자신의 재능은 시인이 아니라 촌철살인같은 카피였던 모양이다.
남동생은 정신병원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고 대를 이어 장사를 하던 아버지 덤보의 가게는 끝내 문을 닫는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엄마는 새로운 애인이 생겼고 에두아르 역시 매력덩어리 연상의 여인 애니 바숑과 격렬한 불륜에 휩싸인다.
에두아르와 모니크는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사는 부부들처럼 아이가 생겼으니 그냥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때로는 헛헛함을 불륜으로 메꾸는 시시한 결혼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흩어진 것처럼 에두아르의 가정도 흩어지고 만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가족들처럼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거예요?"
"두 사람은 떠난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기 안에 숨은 거란다."
"숨을 거면 차라리 우리 집에 숨으면 좋잖아요."
여동생 클레르의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게 왜 가족들은 울타리를 박차고 모두 떠나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못견디게 했던 것일까.
뇌에 이상으로 요양원으로 떠나게된 아버지. 그리고 모니크와 두딸마저 에두아르의 곁을 떠난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잊지 못했던 부모는 마지막에서야 화해를 손길을 내민다. '고마워'라는 말로.
작가는 말한다. 왜 떠나야만 하죠라는 물음에,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모두 상대에게 너무 큰 기대를 안고 만난다. 뽀글뽀글 살아나던 거품이 꺼지듯 사랑이라고
믿었던, 영원할 것 같았던 그 감정들이 사그라지는 것은 바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두아르는 자신의 차곁에서 기다리는 미지의 여인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인생은 살아가는 한 누군가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전작'행복만을 보았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신작이다. 개인주의적인 삶에 익숙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결국 우리네 삶은 참
비슷비슷한 것 같다. 만남도 이별도 너무 쉽고 드라마틱하다.
그러기에 굳이 소설을 쓰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작가인 셈이다.
단지 그걸 이렇게 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