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자신의 것이면서도 평생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곧아 보이는 등이 의외로 굽어 있을지도,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마귀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등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이혼을 하고 급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여자 이정인. 비자연장을 위해

들으러갔던 강의에서 포토그래퍼 '조성주'란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성주는 강의를 맡은 강사 수영을 짝사랑한다. 이미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결혼생활에 흔들리고 있었던 수영은 잠시 성주에게 흔들리지만 결국 한국으로 떠나고 만다.

소설에 나오는 세 명의 여자가 한 남자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그 한남자가 바라봤던 여자는 오로지 수영

하나뿐이었을까.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온 마리는 성주에게 매료되고 결국 그의 안전한 정착을 도와주기 위해 위장 결혼을 감행한다. 여권에 찍힌 독수리를 빗대어 영주권을 얻기위해 불법체류자들은 백색독수리든 황색독수리든 날개를 움켜쥐어야 하는 현실에서 마리는 성주와의 불안한 사랑을 시작한다.


예술가의 도시, 그러면서도 악과 선이, 그리고 흑과 백이 공존하는 도시 뉴욕!

포토그래퍼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에 온 성주는 남몰래 포르노그래피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마리와의 결혼을 통해 안전된 신분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마리는 성주가 수많은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고 급기야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성주의 등만 바라보던 마리는 결국 이혼을 하기로 결심하고 성주와 함께 이별여행을 떠난다.



세 여자가 한 남자와의 사랑을 꿈꾸는 이 소설은 쓸쓸한 가을숲을 걷는 느낌이었다.

한때는 번성했지만 지금은 부서져버린 대제국의 유적지를 걷는 느낌이기도했다.

사랑이 꼭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듯 이별이 꼭 서글프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마리의 독백처럼 성주는 마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랑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격렬한 섹스는 그저 몸의 언어였을 뿐.

그것을 사랑으로 해석할만큼 마리가 어리석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차가운 이성을 지녔다고 스스로 무장했던 마리가 결국 '집착'에 가까운 감정으로 성주를 끌어안으려 했던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이었을까. 추함이었을까.

그런 마리의 갈망을 모른척 시니컬하게 떠나는 성주의 뒷모습에는 결코 이별의 서글픔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마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허공에 부서지고 말았다.



마리와 성주가 살았던 집에 들어가 한 달을 살았던 여자 정인은 그들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던 침대의 흔적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더구나 마리가 짜다가 놓아둔 스웨터를 다시 풀어 마리의 스웨터를 완성하다니..

그저 한 남자의 등만을 기척없이 바라보던 여자가 그의 아내였던 여자에게 왜 스웨터를 짜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설명과 변명의 경계가 모호하듯이 진심과 진실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되야하는지 되묻게 된다.

솔직한 진실과 배려있는 진심의 사이에서 여자들은 각기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뉴욕에 가본적은 없지만 두어 계절 잠시 그곳에 머물렀던 느낌이다. 무심히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중에 성주, 마리,그리고 정인과 수영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든 한 때는 이들처럼 사랑했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그것이 바로 인생임을 다시금 일깨웠던 가을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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