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만 생각하면 난 웃음이 나온다. 자그마한
체구에 장난스럽게 생긴 얼굴이며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분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한창 독자들과 만남을 시작할 무렵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 처음 그를 만나고 든 생각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서인지 고향의 순수한 모습을
닮아서인지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에
퍼지던 미소가 늘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나무를 정하고 유심히 보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몇 분이나 될까?
그저 묵묵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있는 나무인듯해도
참으로 많은 말들을 우리에게 건네는 그 비밀스런 속삼임을
아이들은 어느정도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집 앞에 우람하게 서있던 느티나무가 시인이 심은
나무였던가.
'콩 너는 죽었다'라는 시심이 사실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은 얼마전 병중의 어머니와
그의 아내가 출현했던 TV에서도 확인이 된
참이었다.
'공부란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것이지요'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쩌면 삶은 수학공식하나보다 영어문장 하나보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더 배울 것이 많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명이 찬란한 과학으로 빚어져 왔음을 부정할바는
아니지만 그 안에 든 우리네 삶의 의미는 자연에게서, 그것을
읽어내는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인은 일찍부터
알아챘던 것이리다.
그의 2학년 제자들이 그에게 내민 시 한귀절과 그림
한조각이 얼마나 많은 의미가 되고 찌든 우리네 가슴에 어떻게
와 닿는지를 안다면 그의 말처럼 언제가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시나 그림이 꽤나 큰 값에 팔리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시인은 전주에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향한다고 했다.
오래전 그의 집 앞마당에서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해주던 따뜻한
음식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가 오래전
월급을 주고 바꿨다던 책이 꽂혀있는 서재에서 많은 사람들이
또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것만 같다. 그의 시심이 그의
진심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