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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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실린 최인호의 사진만 봐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어느새 그가 우리를 버리고 떠난지 만 2년이 훌쩍 넘어섰다.

그로 인해 내 젊음이 단단해졌었고 막연히 그렸던 사랑연습도 해봤었다. 나보다 먼저 그가 떠날 것을 짐작도 못했는데 아직은 쓸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았을텐데 희귀암으로 세상을 등진 그를 이렇게 만나고보니 마음이 시큰거려온다. 고등학교때 이미 등단한 그가 지나온 질풍노도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아마도 60년대 끝무렵이거나 70년대 초의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에 요즘 한창 내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응답하라 1988'이 겹쳐진다. 오랜 불황에 녹초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옛이야기에서 위로를 받는 것인지 나 말고도 옛시간들을 그린 그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단다. '머저리 클럽'의 악동들은 그 시간보다도 훨씬 전의 좀 더 기합이 들어간 고등학생들이다.

 

 

절로 경직될 수밖에 없는 시커먼 교복을 입고 지금보다 훨씬 군대같은 모습을 한 학교안에서 그 젊음들은 얼마나 짓눌려 있었을까. 그래도 그 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같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온 다섯명의 고1 학생들.

뒤늦게 타학교에서 전학온 영민을 혼내주려 뭉친 녀석들은 동순,동혁,철수,문수,영구이다.

이름 조차 과거스럽다. 훗날 영구란 이름이 얼마나 많이 회자될지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겠지만.

녀석들 텃세야 뭐야. 은근 어른흉내를 내는 영민이가 아니꼬왔는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면서 돌림빵으로 매를 맞던 영민은 이 악동들과 함께 '머저리 클럽'을 만들고 리더격이 된다.

 

빵집과 짱개집을 드나들어도 교칙에 위반되던 시절 녀석들은 심지어 무전취식의 만행을 저지른다.

그저 어린나이의 치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만그만한 여고생들과 독서클럽도 만든다.

살풋이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시작될 무렵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짝궁을 정하게 되고 소위 첫사랑이란 마법에 빠진다.

이 이야기속 주인공인 동순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고생에게 심쿵하지만 영민에게 그녀를 빼앗기게 되고 겨울바닷가 앞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털어버린다. 그리고 한뼘쯤 마음이 커진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떠나도 다른 사랑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법!

독서클럽에서 만난 지적인 승혜에게 다시 마음을 빼앗기는 동순. 시를 좋아하고 진중한 성격까지 딱 맞는 그녀를 향한 편지를 보니 '이수일과 심순애' 시대가 절로 떠오른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면서 녀석은 자꾸 어른이 되어간다.

 

 

'무언가 가슴속에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밤중에 호박덩굴이 움썩움썩 크듯 그리하여 우리가 잠든 새에 호박덩굴리 수수깡 울타리를 타고 넘듯 우리의 성장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 이루어져서 우리의 키를 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문중에서

 

그렇게 녀석들은 사랑이란 마법에 휩싸여도 보고 가출이라는 사건도 일으켜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한다.

아마도 먼 훗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더라면 그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비루하다거나 하는 느낌없이 찬란했었을까.

 

녀석들은 이미 '머저리 클럽'이란 이름을 선택하면서 자신들의 알량한 그 시간들이 얼마나 치졸하고 어리숙할지를 알았던 것 같다.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은 딱 그 시간속에 갇힌 녀석들의 모습이었으니까.

 

나에게도, 모든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지나갔던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는 고마운 책이었다.

그 때 나를 스쳤던 시간들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글을 쓴 작가조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지금, 가슴이 저려온다.

아이들아. 그 시간을 아껴쓰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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