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마의 신
하라다 마하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몇 달전 보았던 영화 '국제시장'에서 이제는 늙어버려 1.4후퇴때 함흥에서 헤어진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늙은 아들역의 황정민이 '아버지 더 정말 힘들었어요'하고 통곡하는 장면에서 그러했었고

최근 다시 열풍이 부는 '응답하라 1988'에서 가난한 딸을 찾아온 친정엄마가 몰래 화장실 세탁기속에

딸내미에게 돈 삼만원을 숨겨놓고 '우리 딸 옷 한벌 사입어라'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짓는 모습에서도

불쑥 눈물이 솟구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물꼭지는 너무 자주 헐거워져서 민망함을 느끼곤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내 유쾌하게 전개되었던 이 책의 말미에서도 나는 불쑥

솟아오르는 눈물 때문에 잠시 당황스런 기분이었다.

서른 일곱의 직장여성 아유미는 십 칠년이나 근무했던 영화관련회사에 사표를 낸다. 좋아하는 영화관련일을 하는 회사인데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복합영화상영관오픈프로젝트가 마무리도 되기전이었다.

술술 풀려나가던 그 프로젝트가 아유마외 친한 직권남용으로 함의가 결정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엉뚱한 자회사로 이동 발령이 떨어지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유미는 사표를 내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글쎄 조직사회라는 것이 결국 이런 냉혹함이 있긴 하지만.

하필 회사를 그만두는 마지막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구의 아버지가 심장수술을 받는 날이었다.

젊은 날 영업사원으로 전국을 떠돌던 때부터 마작과 영화에 미쳐 가족을 소홀히 하던 아버지는 낡은 맨션의 관리인이 되고도 도박습관만은 고치지 못하고 여기저기 빚까지 낸 사실을 알게된 아유미는 이번만큼은 빚을 갚아주지 않고 스스로 갚게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아버지의 통장과 연금을 꽉틀어쥐고 어렵게 결심을 내비치자 자유분망한 아버지는 실망한 티가 역력하다.

아버지가 수술하고 입원하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맨션의 관리실을 지켰던 아유미는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적어온 영화일지를 보게된다. 아버지 특유의 자유롭고 솔직한 리뷰를 보게된 아유미는 자신도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몇 줄 글을 끼워넣는다.

'영화관이란 그런 장소가 아닐까. 같은 시간과 체험을 공유하는, 한바탕 신났다가 다시 조용해지는 축제와 같은 장소...명화는 화려한 불꽃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천변이 지금 사라지고 있는게 나는 안타깝다.' -본문중에서

언제 보았을까. 퇴원한 아버지는 아유미가 적어놓은 그 글을 영화전문잡지사 메일로 보내고 그 글을 본 '에이유'의 편집장 다카미네 요시코는 아유미에게 편집부로 출근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구직활동을 하려고 여기저기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대기업 과장출신의 늙은 여직원이 갈 직장은 거의 없었다.

얼떨결에 이제는 퇴락하고 있는 영화잡지사 '에이유'로 출근하게 된 아유미는 뜻밖의 반전을 맞게 된다.

경마도 마작도 할 수 없게된 아유미의 아버지는 인터넷카페를 들락거리더니 '에이유'블로그에 글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그 글을 읽은 팬들의 의외의 호평에 힘입어 '에이유'에 필진에 합류하게 된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늙은이의 글이 뭐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평생 영화를 사랑하고 보아왔던 눈길은 의외로 깊었다.

팬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인기가 올라가던중 '로즈 버드'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사람이 남긴 댓글은 불에 기름을 부은듯 영화팬들을 불타오르게 한다. 아유미의 아버지 고짱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라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고짱의 영화평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전혀다른 시선으로 몰아가는 로즈 버드의 글은 많은 팬들의 갑론을박을 야기하고 덕분에 기울어가는 '에이유'는 화제의 중심에 서고 투자자들이 몰려들게 된다.

과연 로즈버드는 누구일까. 고짱의 머리가 벗겨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지척에 있는 인물이 아닐까.

졸지에 추리물로 접어들어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키더니 결론은 일본과 미국의 영화광들의 대결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전혀 만난적은 없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공유하는 애정만으로도 절친이 될 수 있음을 알게된다.

고짱이 영화 밝은 부분을 보려했다면 로즈버드는 어두운 면을 보려했다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제 저물어가는 인생의 끝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노인의 우정에 가슴이 찡해진다.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고 싶었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충격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고짱을 위한 '키네마신 감사제'가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감동이 피어오르면서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시간앞에서도 결국 '사랑'으로 모든 것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기대없이 펼쳐들었던 책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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