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여전히 서점에 들어서면 가슴이 설렌다. 가난하던 어린시절 책이 잔뜩 쌓인 서점에만 가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청계천 헌책방을 전전하고 그나마 신간이라도 구경할 수 있는 학교 도서관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었다. 그렇게 나에게 책은 여전히 삶의 동반자이고 연인이다.


서점에 있는 그 모든 책들이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 분야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던가.

그중에서도 소설, 소설중에서도 정말 좋은 소설만을 엄선한 서점이 있다면 난 기꺼이 갈 마음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바로 이런 서점을 문을 연다. '오 봉 로망'이라는 이름으로.

'오 봉 로망'의 뜻은 '좋은 소설이 있는 곳'이란다. 그렇다면 좋은 소설의 정의는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그런 책들? 아니면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했다고 자부하는 고전들?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명의 위원들이 뽑혔고 그들이 고른 600권의 책들은 오 봉 로망의 진열대를 장식한다.

가뜩이나 불황인 시절에 가뜩이나 스마트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런 서점에 들르기는 할 것인가.

 

 

이 '오 봉 로망'의 탄생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여인 프란체스카와 한 때 교사였지만 서점에 오랜동안 직원으로 일했던 이방이라는 남자의 열망이 숨어있다.

열 여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버린 딸아이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사는 프란체스카는 할아버지의 일기를 출간하여 부자가 된데다 돈많은 사업가의 아내로 얼마든지 이런 꿈의 서점쯤은 쉽게 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방역시 잘 팔릴것같은 책들을 어거지로 들여놓고 선택을 기다리는 일반적인 서점의 영업형태에 신물을 느끼던 중이었다. 아뭏든 둘은 의기투합하여 꿈의 서점 '오 봉 로망'을 열기로 한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은 이 사업이 절대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개점 초기 '오 봉 로망'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책을 사랑하는 선별된 독자들을 열광케한다.

하지만 비밀스럽게 선별한 위원들에게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들을 위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할만큼 선별에서나 유지면에서 고심을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의 명단이 유출되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들 주변을 맴돌며 사고를 유발시키고 위협을 가하는 그림자들.


이 소설은 꿈의 서점을 열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이라면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게 무엇인지와 그런 꿈의 서점을 바라보는 반대편의 사람들의 시각을 잘 풀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정의와 진짜 작품의 차이.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심도높은 독자들의 눈. 그런 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들.

그리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골라낸 위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그림자집단은 누구인지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에 숨은 사랑의 이야기가 더 절절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자살한 딸의 기억을 아픈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프란체스카. 그녀는 오 봉 로망을 자신의 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먼저 간 딸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그리고 오로지 독서로 다져진 지혜로 이 모든 사업을 함께하는 이방. 그리고 그가 아끼는 여인 아니스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

그런 이방을 바라보는 프란체스카는 점점 이방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이방의 마음을 빼앗기는 어렵다.

그의 마음속엔 온통 아니스 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중년 여인의 안타까운 사랑과 어린 시절의 상처때문에 이방의 사랑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니스. 그리고 두 여인 사이에서 감정의 혼란을 느끼는 이방.


정말 이런 서점이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 작품도 버릴 수 없을만큼 빼곡하게 들어선 서점을 상상만 해도 뿌듯해진다.

이제 사람들은 종이로 된 책보다는 화면으로 보는 책을 더 선호하고 서점보다는 더 열정적인 곳으로 향한다.

그런 와중에 돈도 되지 않을 것같은 이런 서점을 내고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한 곳만을 바라보는 이상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결국 위원들을 위협하는 그림자들의 정체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란체스카의 죽음 이후 '오 봉 로망'의 분해와 새로운 시도들. 그리고 그들에게 지나갔던 아름다운 감정들은 가슴에 남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은 실제하거나 상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활자로 표현할만큼 대단한 저자의 능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과연 몇 권이나 추려낼 수 있을만큼 책을 읽었으며 안목을 가졌을까.

언젠가 서울 도심 어딘가에서 꼭 만나고 싶은 '오 봉 로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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