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라면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이 글귀를 읽으니 어느새 어린시절 1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구멍가게를 뛰어가던 어린 나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라면값은 20원정도였던 것 같은데 100원으로 5개정도의 라면을 사서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그 시절의 나! 60년도 후반이었으니 나는 베이비붐세대인 셈인데 한가정에 아이들이 적어도 서 넛 이상은 되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그만 낳으라는 표어가 여기저기 보이던 시절이니 한국전쟁후 태어난 그 많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입히는 일들이 걱정스런 시절이기도 했다.

'통일벼'가 나오고 '알랑미'-아마 동남아의 안남미를 그렇게 불렀던 것같다-가 수입되면서 '정부미'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나오고서야 국민들의 배고픔은 어느정도 잦아들었던 것 같다.

'혼분식'이 장려되어 보리밥을 섞은 도시락을 검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제비'며 '라면'을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배가 고파 굶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라면 먹으면 되지'했다는 손주 이야기가 우스개처럼 말하는 시대가 온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창하고 가난을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는데는 '라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라면조차 사먹을 수 없을만큼 가난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비교적 쉽게 라면으로 주식을 대신 할 수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라면의 대부 '전중윤'회장 덕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삼양라면'!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 라면의 탄생을 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북이 고향이었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로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이라고 부르던 미군부대 쓰레기탕을 먹는 가난한 국민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식품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란 제목에 코끝이 시려온다. 유복하게 자라 배고픔을 몰랐다가 전쟁 피난 후 배고픔을 경험한 전회장은 가난한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삼양식품'을 설립한 셈이다.

하지만 그 한 봉지의 라면이 우리 가난한 국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스토리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도 라면은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뿌리는 중국이라고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만인 셈인데 중국에서 흔히 먹던 건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라면으로 탄생되는 스토리도 라면발처럼이나 굴곡이 심했었다니..

일본 역시 전후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고 있었고 건면사업을 하던 묘조식품의 오쿠이씨의 노력으로 라면이 탄생된다.

건면은 저장성을 높히고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에 튀긴 라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름을 선별하기 위해 시간도 참 지난했었다. 산패가 쉽게 되는 기름을 걸러내고 지금의 라면이 튀겨지기까지 모든 발명이 쉽지 않듯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라면의 진화는 참 고단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한일관계가 차가왔던 시절 오로지 배고픈 국민들을 구하겠다는 소신하나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이씨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던 전중윤회장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하고 가장 다양한 라면을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물만 부어서 먹는 라면에서 스프를 분리하고 한끼 식사로 탄생시킨 오쿠이씨의 노력에도 감동받았지만 그 귀한 스프의 제조비법을 전중윤회장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직전 몰래 전하던 오쿠이씨의 진심을 보자니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사람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본에서 탄생된 라면이 현해탄을 건너 '삼양라면'으로 재탄생되고 그 비화속에 숨은 감동을 보자니 무심코 끓여먹던 라면 한 그릇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온다. 라면에 깃든 추억이야 어디 한 둘이랴.

멀리 해외에 갈때도 소중하게 챙기는 음식이었고 요리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면!

안타깝게 전중윤회장은 작년에 타계를 했다고 한다. 우지파동이 일어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만큼 큰 타격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라면의 대부에게 새삼 고맙고 그에게 라면의 비법을 전수한 오쿠이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식탁에 날마다 오르고 있는 라면속에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담겨있다.

'라면 쉽게 보지 말라.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 역사를 오롯이 담은 음식일지니...'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의 라면이야기! 참 감동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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