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추리소설은 처음이었다. 아니 어찌보면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를 추적해나가는 추리물과는 확연하게 다른 소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추리물에

속하겠지만 나는 차라리 정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연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범인들에게는 이 말도 적용되지 않는다. 분명 살인을 저질렀지만 결코 증오심이 들지 않는다.

곧 서른이 다가오는 백화점 외판부 직원 나오미는 전공을 살려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백화점

VIP를 상대로 궂은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처지로 살아가고 있다.

온갖 요구를 다하는 손님의 뒤치닥을 해주며 고가의 물건을 판매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하는 나오미는

약간의 치매끼가 있는 고령의 여사를 접대하게 되고 그녀의 은행거래까지 도와주게 된다.

 

한편 나오미의 가장 친한 친구로 은행원과 결혼한 가나코는 신혼이지만 남편의 폭력에 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못하고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던 중 나오미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들키고 만다.

그동안 셀수도 없이 많은 폭력에 시달렸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나오미는 자신의

아버지 역시 어머니를 폭행하는 가장으로서 어린시절의 그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존재하고 있었다.

반항할줄도 모르고 체념해버린 가나코의 모습에 울분을 느낀 나오미는 가나코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침 VIP행사중에 시계를 훔쳐간 중국여자를 알게되고 뻔뻔한 도둑이지만 의외로 그녀의 배짱과 인간성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고 살인을 결심한 이후 시체처리를 위해 그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 나오미는 가나코를 설득하여 같이 살해를 할 계획을 세운다.

시체를 묻을 외진곳을 물색하고 미리 구덩이를 파놓는 등 두 여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결국 남편을 살해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들의 범행에는 많은 함정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오빠의 실종에 의심을 품은 가나코의 시누이 요코가 그녀들의 뒤를 쫒기 시작하면서 곳곳헤 헛점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시체를 엘리베이터로 나르는 모습이 CCTV에 찍혔고 가나코의 남편을 빼닮은 중국남자를 이용하면서 곳곳에 흔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과연 이 두여자의 범행은 밝혀질 것인가.

 

가정폭력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요즘도 심심치않게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고 가정붕괴는 물론

살인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을 보게된다. 단지 부부간의 문제라는 이유로 무관심했던 결과가 끔찍한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길들여지면 피해자는 체념과 공포를 오가면서 스스로 벗어날 힘을 잃게 된다고 한다.

가나코는 친구 나오미의 도움으로 남편의 폭력에서는 해방이 되었지만 범죄임을 눈치챈 요코의 손아귀에서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요코의 추적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읽는 나도 가슴이 조여드는 것같은 긴장감이 절로 느껴졌다.

 

어찌됐든 사람을 죽였으니 가나코와 나오미는 죄인인 것일까.

역시 한 번도 독자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늘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아 독자에게 문제를 던지는

방식을 잊지 않는다.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가나코와 나오미의 범행을 눈치챈 요코가 경찰보다 발빠르게 그녀들을 압박해들어오는 마지막 부분의 추격전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요코의 손아귀를 벗어나 가나코와 나오미는 무사히 자신들의 낙원으로 도망갈 수 있을지...

 

몇 시간만에 읽어지는 속도 빠른 소설이었다. 역시 오쿠다 히데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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