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18번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노래가 있는가. 노래방에라도 갈라치면 어김없이 번호를 누르는
그런 노래 한 곡쯤 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을 것이다.
노래에 관한 책이라 당연히 가수 김동률이 만든 책인줄 알았다. 하긴 내가 음악관련 책에는 관심이
없는편이기도 하니 서강대 교수라는 이 저자의 이름과 헷갈릴법도 하다.
하나 이 교수님 전공은 기술경영이라는데 기자출신에다 방송앵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엔터테이먼트 기질이 다분한 분인듯하다.
우선 그가 꼽은 노래들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닮아서 참 좋았다. 한 때 내가 열광하던 가수들과 노래들을 다시 만나니 코끝이 시큰하고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절박하게 느끼는 때가 바로 눈물이 흔해진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노래를 듣다가도 주르르 눈물이 주책없이 흐를 때가 많아졌다.
어느 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즉석으로 '봄날은 간다'를 부르면서 내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를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왜 이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이 솟았을까. 연분홍치마를 입었던 엄마도 없었고 여동생도 없었건만 왜 내마음을 후려치는 노래가 되었을까. 지나간
젊은 시절의 아쉬움이, 이미 꺼져버린 청춘의 불꽃이 그리워서가 아니었을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마음은 아직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봄날에 서성거리고 있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사람들을 한 해의 끝자락으로
야멸차게 세워두고 있다.'-본문중에서
'삶이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얼마남지 않게 되면 점점 빨리 돌아가게 된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끝에
나부끼는 연분홍 치마자락이 눈물겹게 서글퍼진다.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고 부른 최백호가 기차로 통학을 하고 한 여학생을 몰래 짝사랑했다는 사실도 그리고 가난에 지쳐 옛날식 다방을
전전하며 노래를 듣고 불렀다는 청춘시절의 그의 모습도 짠하게 다가온다.
신촌근처에서 하숙을 했다더니 결국 신촌 하숙생들의 모임 '신촌구락부'를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치고 장례식장에 '신촌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조화를 보냈더니 '조직'의 일원인줄 알고 괴롭히던 상사가 고분고부해졌다는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이름값 제대로 했다.
내 젊은 시절을 보냈던 광화문근처의 이야기가 깃든 '광화문연가'에 그 길을 같이 걸었던 그 사람의 안부도 궁금해지고 이제는 방송에서 거의
만나기 힘든 '촛불'의 가수 '정태춘'의 이름도 반가웠다.
시대를 풍미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담겼던 명곡에는 역사가 깃들어있다.
어쩌면 백권의 역사서보다 더 숭고하고 치열한 것들이 담겼을지도 모른다.
간혹 따라하기도 힘든 랩송을 보면서 저 노래를 따라부르는 아이들은 내 나이쯤 되어 저랩을 흥얼거리고 추억에 잠길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글쎄 '아침이슬'이며 '서른 즈음에'같은 노래처럼 평생 가슴에 고이는 노래가 될지 자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 랩송에도 시간과 역사는
깃들것이다.
흥얼거리며 따라불러보기도 하면서 읽었던 이 책! 그 때 그 노래에 우리의 인생이 있었다. 가수는 가도 노래는 남았고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 노래방에서 술자리에서 줄기차게 그 노래들을 부를 것이다.
딱 한 곡! 들어본 적 없는 '부용산'이란 노래는 저자가 꼭 들어보기를 권했으니 반드시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어쩌면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싶어지는 노래가 아닐까. 책에서 노래가 추억이, 그리고 역사가 흘러나오는 그런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