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읽는 내내 불편하고 거친 주인공들의 일상이 내게로 전해져 마음이 편치않았다.

소설은 이제 고작 열 다섯살 소녀 마니와 ​그녀의 여동생 넬리에게 닥친 엄청난 사건으로 시작된다.

마약과 알콜 심지어 자녀를 성폭행한 비정의 아버지 유진의 시체가 그의 방에서 발견되고 역시

알콜중독자이며 자녀를 나몰라라 방치해두었던 맛이간 엄마 이지는 헛간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당연히 이들의 죽음은 경찰에게 알려야 했겠지만 마니와 넬리는 위탁가정에 맡겨지는 것이 두려워

두 사람의 시체를 집뜰에 묻고 만다. 마니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방치되면서 마약상밑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술과 담배 그리고 무분별한 섹스로 방탕을 일삼는 아이로 성장했다.

다행이랄까 넬리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아이로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재주는 물론 바이올린 연주실력까지 갖춘 소녀이지만 역시 부모의 방치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가슴에 어둔 그림자를 숨긴채 성장한다.



부모의 죽음을 감춘 채 냄새나는 집에 방치된 아이들을 거두는 것은 이웃집 할아버지 레니이다.

동성애자로 얼마전 어린 남창에게 서비스를 받기 직전 검거되어 주홍글씨를 새긴 채 숨죽여 살아가는 레니는 이웃집 소녀들을 몰래 훔쳐보면서 그녀들에게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직감한다.

자신의 집에 데려와 요리를 해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만 다구치지 않고 기다려준다. 사실 레니는 성정체성의 문제만 아니라면 따뜻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지닌 남자이다. 어린 소녀들이 어른들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분노하기에 유진과 이지의 행방불명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척도 아닌 그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엄마를 버리고 도망갔던 술주정뱅이 외할아버지가 개과천선한 모습으로 나타나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사실 아이들의 이 모든 불행은 외할아버지 로버트 T 맥도널드에게 있었다.

알콜과 폭력으로 가정을 불행하게 했고 집을 떠나 종적을 감추면서 이지의 불행은 시작되었고 소녀들의 아버지 유진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기 위해 찾아온 딸 이지에게 돈 몇푼을 주면서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조금만 더 가정을 지켰더라면...나중에 찾아온 이지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줬더라면 이지는 자살하지 않았을테고 소녀들도 불행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의 폭력과 이기심이 어떤 불행을 야기시키는지 맥도날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가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로 아이들을 찾아온 것은 결국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나중에 유진과 이지의 시체가 발견되자 거창한 장례식과 화려한 묘비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애도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에서 극한 이기심의 절정을 보게 된다. 진심어린 후회나 사랑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혹은 그럼으로써 스스로 갱생되었다고 위안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두 소녀를 아끼고 사랑한 것은 이웃집 할아버지 레니와 어쩔 수 없이 마약상의 세계로 빠지게 된 이민자 블라도였다. 레니는 뇌종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소녀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동성애자 조셉에게로 향한다. 레니의 이야기에서 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성정체성으로 평생 손가락질 당하고 편견에 시달리는 레니는 사실 어느 누구보다 따뜻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가 쓰여진 무대는 전형적인 스코틀랜드의 한 지역이다. 평범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섞여있고 진보와 보수가 서로 으르렁대고 그 와중에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성장하는 그런 동네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가 조금 낯설었다. 이제 겨우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이 술과 마약 섹스에 노출되고 어른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나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남보다 못한 폭력적인 친척에게 아이가 맡겨지는 상황같은 것은 법의 맹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뒤뜰에 묻힌 유진과 이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감춘 아이들과 발각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교차되면서 짐짓 서스펜스소설같기도 하지만 제목처럼 심오한 뜻을 가진 가슴아픈 스토리이다.

'벌들'이라는 주체는 바로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 혹은 모든 상처받은 인간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점차 사라지는 벌들이 완전히 없어지면 지구는 멸망한다고 한다. '벌들' 혹은 희망이 죽음을 당하면 미래는 없다.

다행스럽게 우여곡절끝에 진정한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겨우 안도감이 찾아왔다.

핏줄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행을 안겨주었던 존재들보다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들안에서 소녀들은 분명 희망을 건져냈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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