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와는 참 인연이 깊은 책이다. 여고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수녀님이기 때문이다. 강릉에 있는 갈바리의원은 10년도 훨씬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아 수녀회에 또다른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포천에도 여러번 간적이 있었다.
수녀회에 거의 막바지로 들어간 친구는 그 시절 아직 '호스피스'개념도 없던 시절에 자신을
가장 적절한 곳에 쓰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바로 이 수녀회였는데
지금도 전국방방곡곡은 물론 전세계를 다니며 '호스피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몇 년전부터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대중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도 삶의 마지막 여정이고 삶처럼 고귀하게 다루어져야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호스피스'나 '안락사'같은 단어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중에는 이런 주제가 낯설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죽음을 맞이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나 역시 그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적어도 선택할 수 있다면 죽음의 형태만큼은 스스로 선택하리라 다짐했다.
이런 생각에는 재작년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죽음을 전혀 예기하지 못하고 병원에 들어갔던 여동생은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면서 호흡기를 꽂아야했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차라리 호흡기를 꽂지 말고 그 시간
조금 힘들더라고 가족들과 마지막시간을 보냈더라면 덜 아쉽지 않았을까.
강릉의 갈바리의원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병원이다.
말기암환자같은 시한부 인생들이 항암치료같은 의학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면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호스피스 병원인 셈인데 사실 죽음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이 병원의 치료를 포기하고 이 기관에 들어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누구나 삶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기에 치료를 좀더 해보면 어떨까하는 실날같은 희망을 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역시 죽음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기에 갈바리의원에 들어오는 환자나 가족들은 아주 많은 생각과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마지막이 다가오면 '파티'를 한다고 표현한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병실마다 눈물바다가 되긴 하지만 수녀님들은 마음껏 우는 것도 파티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닥치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남길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가는 사람은 가는 사람대로, 남은 사람은 남는 사람대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가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언젠가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남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축복을 해주는 경건한 시간이 바로
'파티'이다.
평생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일만 죽도록 하다가 겨우 살만해지니 덜컥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족들에게
제발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자고 말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시간이 조금 더 있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너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구나.' 곧 세상을 떠날 아빠가 아들에게
뒤늦은 후회의 편지를 썼다.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 사랑한다고 더 말해주지 못한 것,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부탁한다는 말들을 썼다.
돈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던 일들이 후회로 남고 만 것이다.
나를 위해서 살아 본적이 없는 것도, 남을 위해 봉사를 좀 더 하지 못한 일들도 후회로 남았다.
과연 나는 지금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까.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떠올리지는 않을까.
다큐 3일에서도 이 병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고 독립영화 '목숨'에서도 감동스런 이야기가 펼쳐졌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을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들을 보면서 자꾸 눈물이 흐른다.
'천년 만년 살 것 같았나 보죠...지금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데...'
죽음을 앞둔 이들의 쓸쓸한 말들이 가슴을 친다.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그 길 죽음!
혹시라도 남을 이들에게 후회스런 일들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위해 쓴 시간들은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는 수녀님들과 의사가 있는 갈바리의원에서는 지금도 죽음과 사랑이 교차되고 있다.
남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이렇게 선한 일을 하는 곳에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