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전당포 간판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가 자주 언급한 것처럼 '전당포'란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생활형편이 나아져 전당포가 필요없어진 것일까?
'돈이 필요한 때에 물건을 가져가 돈을 빌리는 업'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삼 십년 넘게 전당포업을
해온 저자의 '전당포이야기'에는 모든 인간군상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녹아있었다.
예전에는 타이완에서도 오래전 우리민족에게도 있었던 '민며느리제'가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라도 덜어보자고 다른 집으로
보내는 며느리제도인데 말하자면 양녀처럼 들여다 일시켜먹다가 얼추 결혼할 나이가 되면 집안 아들과 짝을 맺어주는 제도이다. 이렇게 결혼을 한
부부에게는 큰 정이 없을 것 같다. 대부분 일꾼처럼 들인 제도라 고부간의 사이도 좋지 않았단다. 다첸의 전당포에 오래된 금비녀를 들고 나타난
할머니가 바로 이런 민며느리였다는데 친부모처럼 시부모를 섬기다보니 시부모가 감복하여 집안에 여인들에게 물려주는 금비녀를 물려받았단다.
하지만 아들이 얻은 며느리는 황 할머니에 눈에 차지 않아 몰래 금비녀를 빼돌리기 위해 전당포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신이 죽어도 절대 아들내외에게 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할머니. 하지만 전당포주인의 중재에 할머니와 아들내외는 화해를 하고 금비녀를
찾아갔다는 일화가 감동스럽다.
도박을 하기위해 뻔질나게 전당포를 드나드는 사람, 대학교 학비를 위해 자신의 입학통지서를 맡겼던 여학생, 저승가는 길에 쓰기위해 모아두었던
할머니의 수미전을 쓸 수가 없어 돈을 맡기고 돈을 빌려간 손자, 분단전에도 타이완으로 이주를 해와서도 군부의 영광을 누렸던 차오 장군의 일화는
중국의 근대역사와 함께 몰락한 장군의 일생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예전의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집안의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면서까지 누리고
싶었던 안락한 삶. 하지만 아흔이 넘어서도 목숨은 남아있고 더 이상 맡길 물건도 없었던 차오 장군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아마도 장제스장군이
훈장처럼 하사했던 브라우닝 권총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전당포업을 오래하면서 물건을 보는 안목과 더불어 사람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고 한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물건에서만 짚어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약에 취한 사람, 도박에 빠진 사람, 신용을 지킬 사람까지 가늠해내는 재주가
있는 그는 '손님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전당포를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물건의 진위보다 사람의 진위를 감정하는 것이 전당포를 할 수 있는 중요 조건이라는 것이다.
하긴 남을 속이는 일이 너무나 빈번한 요즘 경제적인 손실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마음가짐이 정말로 중요할
것같다.
전당포라는 업이 물건을 맡아두고 돈을 내주고 맡긴 만큼 이자를 챙기는 것으로 안다. 기한이 경과되면 판매를 통해 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렇게 모인 돈을 투자도 하는 모양이다.
수출을 하려고 제작했던 컬러냄비를 못팔게된 사장이 전당포에 컨테이너째로 맡기고 돈을 빌어간다. 하지만 사장은 외국으로 도주하면서 컨테이너를
양도하게 된다. 저자는 이 물건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팔면서 영업의 노하우를 알게된다. 사이즈별로 가격별로 가격표를 붙여 팔다가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자 아예 고객 스스로 돈을 넣고 잔돈을 거슬러갈 수 있는 돈통을 앞에 놓고 사이즈에 관계없이 갯수에 따라 50위안씩 정해 팔았더니
원금을 넘게 돈을 회수했고 자신만의 장사모델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전당포뿐 아니라 장사수완도 있었던 셈이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든 나는 사람 감정이 물건 감정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당포 주인인 저자 천쓰린은
물건과 돈을 맞바꿔주는 사업자가 아니라 사람을 꿰뚫어 보고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다고 믿는 정확하지만 따뜻한 사람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부호의 외아들 다뚝 천의 믿을 수 없는 타이완 여행기와 볼품없는 중고 파커 만년필에 깃든 사세지간의 정에
얽힌 이야기를 보다보니 사람 사는 모습이 어디나 다 비슷하구나 싶다.
그래도 아버지의 사회사업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내어주고 기부도 하는 전당포 주인 천씨의 삶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멋진 모습이다.
장물을 맡았다는 오해도 받고 감옥에 갈뻔한 일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전당포'간판을 걸어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그의 '다첸 전당포'에는 단순한
물건과 돈이 오가는공간이 아닌 감정과 온기가 존재하는 특별한 전당포이다. 천일야화처럼 사람사는 다양한 모습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