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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의 묘
전민식 지음 / 예담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과연 좋은 땅 즉 명당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학적인 사고로 본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부터 조상들은 명당을 찾아 매장을 하고 후일 발복을 기원해왔다.
흔히 기가 쎈 땅이라거니 악혈이라거니 하는 말도 있고 보면 아주 무시할 수 있는 없는 이야기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이어온 독재정치를 끝내던 어느 날에 일어났던 '땅뺏기'싸움이 이 소설의 이야기이다.
어려서 조그만 돌멩이를 손으로 톡톡 쳐서 땅을 넓혀 나갔던 '땅뺏기'싸움과는 비교가 안되는 생명이 걸린 땅뺏기 싸움은 말하자면
누가 빠져나간 권력을 잡을 것인가하는 피의 싸움이다.
땅의 기운을 읽어내는 명장 황창오의 아들 중범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명당을 고르는 훈련을 받았다.
학교 공부보다 땅공부를 먼저 시켰던 아버지의 훈련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중범이 결국은 아버지처럼 지관이 된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좋은 터를 골라 몰래 이장을 해주거나 도굴등 옳지 않은 일들로 연명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얼마전 아들을 낳았지만 집에는 쌀이 떨어지고 당장 분유값도 아쉬운 형편에 어쩔 수 없이 친형제와 다름없는 도학과 해명과 함께
황금이 묻혀있다는 터에서 도굴을 하던 중 의문의 남자들로 부터 쫓기게 된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실 그 날은 대통령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지던 날이었다.
도굴을 하려던 터는 오래전부터 명당으로 소문난 곳으로 대통령이 암살되고 막후 권력을 쥐려는 군부세력들에 의해 서로 이장을 하려는 터였다.
하지만 그 터보다는 더 기가막힌 터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던 중범과 도학은 이 군부세력들에 의해 이용당하게 된다.
당장은 발복이 어렵지만 100년 200백년이 지나면 발복이 된다는 터. 말하자면 나라를 다스릴 왕이 태어난다는 터였다.
중범의 아버지는 암살된 대통령의 아버지 묘터를 잡아주었던 명지관이었고 이 것을 알게된 군부세력들에게 아들인 중범은 이쪽편에서 양아들인
도학은 저쪽편에 서서 땅뺏기싸움에 말려드고 만다.
평생 외고집쟁이 아버지와 집을 나간 어머니때문에 상처가 많았던 중범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보지 못한 채 빨갱이로 몰려 살해당하고 만다.
중범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도학은 결국 해외로 도피하는 길을 택한다.
사라졌던 중범의 아버지 황창오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자신의 아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닐까?
살아온 자의 생에 따라 폭군이 될 수도 있고 성군이 될 수도 있다는 명당터를 짚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지관 황창오는 어쩌면 아들의 미래도
짐작했을 것이다. 막을 수 없었던 운명을 피해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 시해후 9일간의 터뺏기 싸움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씁쓸한 뒷모습들을 본 것같아 입맛이 썼다.
부나 권력을 가질 터가 분명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아주 평범한 터에 묻혀있는 모양이다.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닌걸보면. 독특한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움직임들을 짚어낸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