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참 서글프다. 언제부터인가 TV광고에 알바XX 같은 광고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알바인생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정규보다는 비정규 그것도 아니면 하루살이 알바인생이 지천인 세상이 되었다.
고용이 불안하니 삶자체도 불안하기만 하다.
가족중에 한 사람도 아니고 온통 알바로 뭉쳐있다니 알바노조라도 결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몰락한 자영업자, 엄마는 마트 계산원, 아들인 로민은 휴먼마케팅학과에 다니는 대학생
한 살 차이의 여동생 로라는 이른바 파워블로거로 리뷰왕이다. 학생이 본업인지 블로거가 본업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로민과 로라는 기울어진 가졍형편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내고 이자를 갚기 위해 알바에 뛰어든다. 한 때 로라는 '세일즈
프로모션'이라는 값비싼 수입의류나 핸드백, 지갑등의 사용후기를 공유하는 패션 정보 사이트에서 명절이면 갈비선물을 보낼만큼 대단했던 리뷰왕이었지만
백화점이며 온라인에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웬만한 월급과 맞먹었던 수입이 없어져 버렸다.
수입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미처 반품하지 못한 핸드백대금이며 그동안 빌려썼던 엄마의 카드대금도
밀린 상황이다.
오랜 장인정신으로 호두가구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쓰러져가는 공장의 운명을 붙잡고 고군분투중이고
마트 계산원으로 허둥지둥 야단만 맞는 엄마의 스트레스는 제 용돈도 못벌어쓰는 로민에게 매타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미 제작해 납품했던 책장셋트가 경쟁업체의 원플러스 원 행사에 밀려 반품이 밀려오는 현장을 목격한 로민은 본격적으로 알바를 시작한다.
로라는 수영장에서 수질 관리 요원으로 알바를 시작하는데 난 수영장을 청소하거나 락스라도 왕창 붓는 알바인줄 알았다. 하지만 매물로 내놓은
수영장에 손님이 북적거리는 것을 연출하기 위한 손님 1, 손님 2 같은 단역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영장이 팔리는 바람에
짤리게 되고.
한창 개발이 왕성한 애드밸리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다시 알바를 시작한 로라.
하지만 밀려드는 전단지 쓰레기로 정신이 없다. 미숙한 계산으로 마트에서 짤린 엄마는 로민과 함께 전단지 알바를 하고 있었고 로라는 그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쑤셔넣어야 했다.
더구나 앞뒤에 샌드위치 광고판을 붙이고 애드밸리를 돌아다니는 아버지까지.
가슴아픈 가족사인데 여기저기 부비트랩처럼 유머가 숨어있다. 밀린 관리비며 학자금대출이자까지 현실은 참담하지만 마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뭉친
독수리 5형제처럼 이 가족들의 전투력은 비장하기만 하다.
요즘 이런 현실을 '웃프다'라고 표현한다던가.
길을 나서면 어디론가 분주히 오가는 인파를 보게 된다. 얼핏 평범하고 안온하게 보이는 그들의 삶에는 피곤과 참담이 숨어있다. 마치 우아하게
헤엄치는 오리의 발처럼.
삶의 불꽃이 사그러지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해 풀무질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
몇 달의 월급을 모아야 명품 블라우스 한 벌값이 된다는데..사실 그 블라우스는 가치를 지키기위해 소각장에서 사라지곤 한단다. 소각장에서
불태워지는 브라우스 한 장 값도 못되는 인생들을 위해, 그리고 갑질의 고통을 감수하는 을들의 고군분투를 위해 작가는 이 책을 헌정하고 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알바족들을 위해 오늘 술 한잔 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게 호두 껍데기 인가요?"
가장 단단한 가구를 만들기 위해 '호두가구'라고 이름 지은 아버지를 향해 로민이 물었었다.
"작정하고 부수려고 하면 망가지지 않는 건 없지. 하지만 호두 알맹이한테는 호두 껍데기가 가장 강한 법이다.
그리고 그 것을 깨뜨리기 전에는 어쨌든 알맹이를 보호해주잖니."
반품으로 쌓인 책장을 보며 로민의 아버지는 말했다.
속에 있는 알맹이를 보호해주기 위해 가장 단단한 껍데기로 무장하고 있는 수많은 가장을 위해 건배!